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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항일독립유공자 추모비

유형
비석 | 안내판·표지석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성내리 616-7

사적지 지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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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개요

경상남도 산청에 위치한 산청항일독립유공자 추모비이다.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때를 같이 하여 산청, 단성, 신등, 신안 등지에서도 3월 21일 도내 장날에 수천 군중이 거사하였다. 본 비는 그때 순국한 선열을 비롯하여 항일 독립투쟁에 옥고를 치른 수많은 애국지사와 무명의 순국선열을 기리고자 1995년 건립되었다.

인물정보

성명
강갑영
한자명
姜甲永
운동계열
국내항일
생몰년도
1907 ~ 1945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대통령표창
포상년도
1995

공적개요

1931. 8. 26 부산(釜山) 전영진(田永鎭) 집에서 박귀선(朴貴先), 이인형(李麟炯)과 함께 등사판으로 일본 통치에서 벗어나 조선독립을 이루자는 내용의 격문을 인쇄하여 노동자에게 배포 선전하는 등의 활동으로 피체(被逮)되어 징역 10월 집행유예(執行猶豫) 5년을 받기까지 옥고(獄苦) 약(約)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곽종석
한자명
郭鍾錫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46 ~ 1919
본적
경상남도 거창
포상훈격
독립장
포상년도
1963

공적개요

1. 송병선(宋秉璿) 등과 같이 을사조약(乙巳條約) 파기(破棄)를 적극 주장 2. 파리평화회의(巴里平和會議)에 한국 유림(韓國儒林) 대표(代表)로 치서(致書)하다가 체포되어 대구(大邱) 옥중(獄中)에서 자결(自決) (항일순국의열사전(抗日殉國義烈士傳) p282.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하(下) 204. 매야(梅野) 382.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220, 223. 한국통사(韓國痛史) 98)

인물정보

성명
권숙린
한자명
權肅獜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77 ~ 1939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1994

공적개요

1919. 3. 21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하다 투옥된 동생 권숙봉(權肅鳳)의 석방과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김응율(金應律) 등 단성면(丹城面) 단계리(丹溪里) 주민 50여 명과 함께 우성내리(右城內里) 시장에 가서 만세시위를 하며 헌병주재소로 가서 시위운동으로 인해 투옥된 사람을 석방할 것을 촉구하다 피체되어 징역 3년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김기범
한자명
金淇範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85 ~ 1951
본적
경상남도 하동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1994

공적개요

1919. 4. 7 경남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정신교(鄭信敎) 집에서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정재옥(鄭在玉) 등과 함께 이민(里民)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할 것을 계획하고 그날 밤 태극기를 만들어 동리(同里) 광장에 세워 놓고 그곳에 모인 리민(里民)으로 하여금 그 뜻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여 군중이 모이게 하도록 한뒤 다음날 8일 위 광장에서 군중을 선두로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동면장에게도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권유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피체되어 징역 1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김동렬
한자명
金棟列
운동계열
국내항일
생몰년도
1926 ~ 미상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대통령표창
포상년도
2005

공적개요

1942년 5월 서울 돈암동(敦岩洞)에서, 한국의 독립과 공산주의 사회실현을 목적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違反)으로 옥고(獄苦)를 치르던 중 탈옥(脫獄)한 정태옥(鄭泰玉)에게 여비와 의복 등 편의를 제공하고 동인과 독립에 대한 대화를 하였다가 동년 7월에 체포되어 징역 6월에 집행유예(執行猶豫) 3년을 받기까지 4개월여의 옥고(獄苦)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김상준
한자명
金相俊
운동계열
만주방면
생몰년도
미상 ~ 1923
본적
미상
포상훈격
애국장
포상년도
1995

공적개요

통의부(統義府) 의용군(義勇軍) 제2중대(中隊) 제2소대원(小隊員)으로 1923. 10. 13 만주(滿洲) 고려성자(高麗城子)에서 일군(日軍) 및 이와 결탁한 중국군(中國軍)에 포위되어 항전(抗戰)하다가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김상호
한자명
金相顥
운동계열
국내항일
생몰년도
1901 ~ 미상
본적
경상남도 통영
포상훈격
대통령표창
포상년도
2020

공적개요

1927년 3월 경남 통영군에서 도평의원 김기정(金淇正)의 친일발언을 규탄하는 징토시민대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4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으며, 1929년 신간회 통영지회, 통영노동당에서 활동하다 노동당 파업사건에 연루되어 구류됨.

인물정보

성명
김선명
한자명
金善明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61 ~ 미상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2008

공적개요

1919년 3월 경남(慶南)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 성내리 시장(城內里市場)에서 이호용(李好用)등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조선독립만세를 고창(高唱)하였고 단성 헌병 주재소(丹城憲兵駐在所) 헌병(憲兵)에게 이전에 유치(留置)된 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逮捕)되어 징역 2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김영숙
한자명
金永淑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76 ~ 1952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대통령표창
포상년도
1993

공적개요

경남(慶南) 산청(山淸)지방의 덕망 높은 한학자로서 서울의 3.1만세운동소식을 전해 듣고 시위운동을 계획하여 1919.3.18 밤 각 부락에 통지하고 1919.3.19 아들 김상준(金相峻)등 5명이 일경에 피검되자 정태륜(鄭泰侖)등과 함께 재거의할 것을 약정하고 1919.3.20 오후 2시 산청군(山淸郡) 신등면(新等面) 단계리(丹溪里) 시장에 모인 6백~7백여명의 군중과 더불어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단성군(丹城郡) 성내리(城內里) 시장으로 시위행진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5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김영호
한자명
金英鎬
운동계열
만주방면
생몰년도
1907 ~ 1931
본적
함경북도 명천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2011

공적개요

1928년 중국(中國) 길림성(吉林省) 용정(龍井)에서 재동만청년총동맹(在東滿靑年總同盟)의 상무서기(常務書記)로 활동하고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동만도(東滿道) 용정군(龍井郡) 간부로서 표현단체인 근북회원(槿北會員)을 지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을 받고 복역 중 폐병으로 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출옥하여 1931년 3월 21일 사망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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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김용환
한자명
金用煥
운동계열
국내항일
생몰년도
1924 ~ 1944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대통령표창
포상년도
2005

공적개요

1942년 5월 12일 서울 돈암동(敦岩洞)에서 한국의 독립과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복역하던 중 탈옥한 정태옥(鄭泰玉)에게 음식, 옷, 여비를 건네주는 등 편의를 제공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에 집행유예(執行猶豫) 3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김천석
한자명
金千錫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84 ~ 1919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애국장
포상년도
1991

공적개요

1919. 3. 21. 경남(慶南)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 성내(城內)장날의 거사(擧事)에 수천 명(數千名)에 달(達)하는 시위 군중(示威群衆)이 집결(集結)되어 독립만세(獨立萬歲)를 고창(高唱)하며 구속(拘束)된 인사(人士)의 석방(釋放)을 요구(要求)하며 일병(日兵)들의 병기(兵器)를 탈취(奪取)하고 헌병 주재소(憲兵駐在所)로 몰려갈 때 일군(日軍) 수비대(守備隊)의 무차별(無差別) 발포(發砲)로 전사(戰死)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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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민용호
한자명
閔龍鎬
운동계열
의병
생몰년도
1869 ~ 1922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독립장
포상년도
1977

공적개요

1896년 1월 강릉(江陵) 관동동구군도창의소 의병대장으로서 원산(元山) 침공을 비롯 고성(高城), 양양(襄陽) 등지를 점령하는 한편 영남 열읍에 대한 격문발송 등의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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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민치방
한자명
閔致方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73 ~ 1925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1998

공적개요

1919. 3. 22 경남(慶南) 산청군(山淸郡) 산청읍(山淸邑) 장날 만세시위시 큰 태극기를 들고 선두 에서 군중을 지휘하다가 일병(日兵)이 총검으로 겨드랑을 찔러 그후 평생동안 팔을 못쓰는 불구로 여생을 마친 사실이 인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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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권세
한자명
朴權世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미상 ~ 미상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애국장
포상년도
2014

공적개요

1919년 3월 21일 경남(慶南) 산청군(山淸郡) 신등면(新等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활동 하다 피살(被殺),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박규호
한자명
朴圭浩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50 ~ 1930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건국포장
포상년도
1995

공적개요

1919. 3월 파리강화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김창숙(金昌淑) 등이 유림대표(儒林代表)가 되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유림(儒林)의 한 사람으로 서명(署名)한 특수 공적(特殊功績)이 인정(認定)됨.

인물정보

성명
박동의
한자명
朴東儀
운동계열
의병
생몰년도
미상 ~ 1896
본적
강원도 평창
포상훈격
애국장
포상년도
2001

공적개요

1895. 12월 민용호(閔龍鎬) 의병장(義兵將)의 초빙을 받고 관동창의진(關東倡義陣)에 입진(入陣)하여 군사(軍師)의 직책을 맡아 강원도(江原道) 강릉(江陵)을 활동근거지로 삼을 것과 원산(元山)을 공략한 후 양서(兩西)지역(평안(平安), 함경도(咸鏡道))의 군사를 모아 청국(淸國)과의 연합작전을 전개할 것을 헌책(獻策)하는 등 군사전략을 주도하다가 1896. 2월 원산(元山)으로 진격하던 중 함남(咸南) 안변(安邊)의 선평전투(仙坪戰鬪)에서 전사 순국(戰死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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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해근
한자명
朴海根
운동계열
국내항일
생몰년도
1911 ~ 1975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2022

공적개요

1928년 3월경 경남 산청 성환목(成煥穆)의 집 사랑방에 걸린 일본 천황 부부의 사진에 불량하다고 조롱하는 낙서를 하다 불경죄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음.

인물정보

성명
손기혁
한자명
孫琪赫
운동계열
의병
생몰년도
1878 ~ 1946
본적
경상남도 하동
포상훈격
독립장
포상년도
1992

공적개요

1908.6월 경남(慶南) 하동군(河東郡)에서 기의(起義)하여 의병진(義兵陣)을 편성(編成)한 후(後) 김용이(金龍伊) 외(外) 수십명(數十名)의 의병(義兵)들과 함께 총검(銃劍)으로 무장(武裝)하고 동군(同郡) 가종면(加宗面) 월횡동(月橫洞)과 동면(同面) 동월동(東月洞)에서 군자금(軍資金)을 모집(募集)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12년을 받고 복역(服役) 중 8년 5월 27일간의 옥고(獄苦)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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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신몽상
한자명
申夢相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94 ~ 1972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대통령표창
포상년도
1993

공적개요

1919. 3. 18 경남(慶南) 산청군(山淸郡) 산청면(山淸面)에서 동경유학생(東京留學生) 오명진(吳明鎭)의 주도로 ‘민족(民族) 자결주의(自決主義)에 따라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결의한 후 산청읍(山淸邑) 의거(義擧)를 동년(同年) 3. 22 장날에 단행하기로 약정하고 산청면사무소(山淸面事務所) 등사판으로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 결의서(決意書) 및 태극기(太極旗)를 약 2천여 매 인쇄하였으며 동지(同志)를 규합하던 중 1919. 3. 21 산청군(山淸郡) 친일군수(親日郡守) 홍승균(洪承均)의 고발로 다른 주동인물들과 함께 피체되어 징역 3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유경환
한자명
柳璟煥
운동계열
임시정부
생몰년도
1892 ~ 미상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2021

공적개요

1919년 2월 일본 동경에서 중앙대학(中央大學) 재학중 '2.8독립선언'에 참가함. 동년 4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재무위원, 경상도 대의원, 산청군 조사원, 국제연맹 제출안 기초위원, 대한민국청년단 부단장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1921년 9월 ‘대정8년제령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음.

인물정보

성명
유명국
한자명
柳明國
운동계열
의병
생몰년도
1869 ~ 1937
본적
경상남도 진주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1995

공적개요

의병장(義兵將)으로서 1908. 4월 부하 400여명과 함께 경남(慶南) 진주(晋州) 지리산 부근(智異山附近)을 점령하는 등 활동하다가 동년 8월 30일 일군(日軍) 덕산(德山) 수비대(守備隊)에게 피체(被逮)되어 옥고(獄苦)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윤규현
한자명
尹圭鉉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94 ~ 1965
본적
경상남도 합천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1998

공적개요

1919. 2월말(月末) 부친(父親)의 지시를 받고 상경하여 고종 인산(高宗因山)과 서울 3·1만세 시위(萬歲示威)에 참가한 후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를 지참하고 귀향하여 동년 3월 23일 합천군(陜川郡) 삼가읍(三嘉邑)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이관
한자명
李瓘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60 ~ 1928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1990

공적개요

1919. 2월 천도교전도사(天道敎傳道師) 및 편집원(編輯員)으로 손병희(孫秉熙), 이종일(李鍾一)과 함께 3.1운동봉기에 뜻을 같이하고 33인명의 독립선언서를 지방으로부터 상경한 대표에게 배부하며 활동하다가 격문기초자로서 피체되어 징역 7월, 3년간 집행유예를 받아 미결로 8월 6일간 옥고를 치루었으며 1921년 미국(美國)「워싱턴」에서 군축문제를 다룰 열강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승인케 하고저 태평양회의 독립청원서에 국민대회 대표의 자격으로 서명하므로서 2년 7월간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이만용
한자명
李萬龍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98 ~ 1975
본적
충청남도 청양
포상훈격
대통령표창
포상년도
2019

공적개요

1919년 4월경 충남 청양군 정산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군중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태 70도를 받음.

인물정보

성명
이병곤
한자명
李炳坤
운동계열
광복군
생몰년도
1921 ~ 1979
본적
평안북도 용천
포상훈격
애국장
포상년도
1990

공적개요

1939.7. 중국(中國)에서 적후방공작(敵後方工作) 및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 활동 1940.9.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1지대 제3구대(區隊)(9전구(戰區)) 입대 1945.2.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1지대 제3구대장(區隊長) 임명

인물정보

성명
이병홍
한자명
李秉弘
운동계열
만주방면
생몰년도
1898 ~ 미상
본적
평안북도 초산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2021

공적개요

1920년 음력 7~8월경 대한독립단에 가입하고 검찰보로 활동하면서 동년 10월 석환옥(石煥玉) 등과 함께 평북 초산군 남면사무소 공격,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음.

인물정보

성명
이병희
한자명
李丙禧
운동계열
국내항일
생몰년도
1918 ~ 2012
본적
서울 서울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1996

공적개요

1932년 부친 이경식(李京植)이 장진홍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가족들이 모두 만주로 이주하려고 하였으나 조부의 연로 등으로 부친만이 중국으로 망명한 후 학업을 중단하고 1933. 5월 경부터 서울에서 종연방직(鍾淵紡織)주식회사의 여공(女工)으로 근무하면서 1936년 김희성(金熙星), 박인선(朴仁善) 등과 회합하여 여성동지를 획득하고 공장노동운동을 하는 등 활동하다가 피체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2년 4월의 옥고를 치른 후 북경으로 망명하여 이육사(李陸史) 및 의열단원 등의 연락활동을 지원하는 등 계속 활동하다 피체되어 이육사와 북경감옥에 함께 수감되었다가 1944. 1월 석방된 후 계속 복역 중이던 이육사가 옥사하자 시신과 유품을 정리하여 국내유족에게 인도한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이용운
한자명
李龍雲
운동계열
학생운동
생몰년도
1911 ~ 미상
본적
함경북도 명천
포상훈격
건국포장
포상년도
2021

공적개요

1930년 1월 함북 경성공립고등보통학교(鏡城公立高等普通學校)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는 만세시위를 계획하여 태극기를 제작하고 시위행진을 벌이다 체포되어 징역 8월을 받음.

인물정보

성명
이철주
한자명
李鐵柱
운동계열
학생운동
생몰년도
1922 ~ 1988
본적
서울 서울
포상훈격
건국포장
포상년도
2005

공적개요

1940년 11월 경기중학교 재학중 동창생 송원박(松原博)과 공모해서 동급생 박승유(朴勝裕), 이순복(李洵馥), 동교 3년생 민성기(閔成基) 등과「MH회」의 조직에 관해 협의하고 동년 12월 동급생 고원석(高元錫)의 집에서 조선독립의 필요성을 말하며 이들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발각되어 1942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執行猶豫) 5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이학로
한자명
李學魯
운동계열
의병
생몰년도
1867 ~ 1933
본적
경상북도 영천
포상훈격
애국장
포상년도
1990

공적개요

의병장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이호용
한자명
李好用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93 ~ 1951
본적
경상남도 고성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1995

공적개요

1919. 3. 20 경남(慶南)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 단계리(丹溪里)에서 시장에 모인 군중과 더불어 독립만세를 고창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2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장영수
한자명
蔣英洙
운동계열
국내항일
생몰년도
1909 ~ 1969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1995

공적개요

1932. 10. 13 경남(慶南) 의령군(宜寧郡) 대의공립보통학교(大義公立普通學校) 교사로 재직(在職) 중 김두영(金斗榮), 정두명(鄭斗明) 등과 함께 경남 교육 노동조합의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민족교육의 실시에 노력하였으며 1933. 5. 22에는 아동 60명을 인솔하여 산 위에 올라 독립만세’(獨立萬歲)를 고창(高唱)한 후 아동과 동민 수명에게 따라 부르도록 하는 등 활동하다 피체(被逮)되어 징역 2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정문용
한자명
鄭文鎔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79 ~ 1919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애국장
포상년도
1991

공적개요

1919년 3월 21일 경남 산청군 단성면(丹城面) 성내(城內) 장날의 거사에 수 천명에 달하는 시위군중이 집결되어 독립만세를 고창하여 구속된 인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일병들의 병기를 탈취하고 헌병 주재소(憲兵駐在所)로 몰려갈 때 일군(日軍) 수비대(守備隊)의 무차별 발포로 사살 순국한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정태륜
한자명
鄭泰侖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88 ~ 1923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1993

공적개요

1919. 3. 18 경남(慶南) 산청군(山淸郡)에서 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통고문(通告文)」·「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격문(檄文)」 등과 "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歲)"라고 대서특필(大書特筆)한 기(旗)를 제작한 후 산청군(山淸郡) 신등면(新等面) 등 각 요소에 붙여 군중의 분기(憤起)를 촉구하고 1919. 3. 20 신등면(新等面) 단계리(丹溪里) 장터에서 600∼700명의 군중을 규합·항일 연설(抗日演說)을 하고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수천명으로 불어난 시위군중을 선도하여 단성면(丹城面) 성내리(城內里) 시장까지 만세시위를 벌였으며 이튿날인 3. 21에도 1,000여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헌병주재소로 쇄도하며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2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조덕삼
한자명
趙德三
운동계열
의병
생몰년도
1885 ~ 미상
본적
전라북도 부안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2017

공적개요

1909년 음력 윤 2월 전북(全北) 부안군(扶安郡)에서 김보배 의진(金寶倍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7년을 받음.

인물정보

성명
조현규
한자명
趙顯珪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77 ~ 1950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건국포장
포상년도
1995

공적개요

1919. 3월 파리강화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김창숙(金昌淑) 등이 유림대표(儒林代表)가 되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유림(儒林)의 한 사람으로 서명(署名)한 특수 공적(特殊功績) 사실이 있음을 확인됨.

인물정보

성명
주쇠이
한자명
朱釗伊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89 ~ 1919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애국장
포상년도
1991

공적개요

1919.3.21. 경남(慶南)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 성내(城內) 장날의 거사(擧事)에 수천 명(數千名)에 달(達)하는 시위 군중(示威群衆)이 집결(集結)되어 독립만세’(獨立萬歲)를 고창(高唱)하며 구속(拘束)된 인사(人士)의 석방(釋放)을 요구(要求)하며 일병(日兵)들의 병기(兵器)를 탈취(奪取)하고 헌병 주재소(憲兵駐在所)로 몰려갈 때 일군(日軍) 수비대(守備隊)의 무차별(無差別) 발포(發砲)로 사살(射殺) 순국(殉國)함

인물정보

성명
최덕인
한자명
崔德仁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95 ~ 미상
본적
충청남도 아산
포상훈격
대통령표창
포상년도
2021

공적개요

1919년 4월경 충남 아산군 선장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태 60도를 받음.

인물정보

성명
하용제
한자명
河龍濟
운동계열
3.1운동
생몰년도
1854 ~ 1919
본적
경상남도 산청
포상훈격
애족장
포상년도
1995

공적개요

1919. 3월 파리강화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김창숙(金昌淑) 등이 유림(儒林) 대표(代表)가 되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유림(儒林)의 한 사람으로 서명(署名)하는 등 활동(活動)하다가 피체(被逮)된 후 옥고여독(獄苦餘毒)으로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3.1운동

사건설명

3.1운동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기미년) 3월 1일 전후로 일으킨 거족적인 독립 만세운동이다.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일본 도쿄의 2.8 독립선언, 고종의 인산일 등을 계기로 계획되어, 마침내 3월 1일 서울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에 의한 독립선언서 낭독과 더불어 탑골공원에서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시위행진을 벌이며 거행되었다. 이날의 거사는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만주, 북미 등 해외 등지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세계에 우리 민족의 실상을 알림과 동시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자주 독립사상 고취 등의 의의를 거두었으나, 동시에 일제가 민족 분열을 위해 무단통치 방법을 문화통치로 바꾸는 원인이 되었다.

애국계몽운동

사건설명

애국계몽운동은 교육과 산업, 언론 진흥을 통해 민족의 실력을 키워 국권을 수호하려는 운동으로, 지식인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단체로는 대한자강회, 대한협회, 신민회가 있다.
이와 같은 애국계몽단체의 활동으로는 <제국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 신문과 <대한자강회월보>, <대한협회회보> 등 기관지 또는 학회지 발간을 통한 민중계몽운동이 있다. 또한 보광학교, 한남학교 등 학교 설립과 <보통교과동국역사>, <동국사략>, <대동역사략> 등 교과서 편찬을 통한 교육계몽운동, 그리고 국채보상운동 등의 경제구국운동 등을 펼치며 국력을 키우고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한국 광복군

사건설명

한국광복군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 군대로, 1919년부터 군사조직법 제정을 통해 임시정부의 군대를 창설하려는 노력이 존재했으나 마침내 임시정부가 중국 충칭에 정착하면서 김구 등의 주도하에 1940년 창설되었다. 총사령에 지대형, 참모장에 이범석, 총무처장에 최용덕 등이 임명되었다. 창설 당시 병력은 30여 명에 불과했으나 병력 모집에 몰두하고 1942년 조선의용대의 편입을 거쳐 1945년 4월경에는 564명으로 확대되었다. 1945년, 임시정부의 주석이던 김구는 미국전략사무국 책임자와 공동작전을 협의하여 한국광복군을 국내에 침투시키는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기 전,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며 한국광복군의 진공작전은 무산되었고, 1946년 해체되었다.

한말 의병운동

사건설명

항일의병운동에는 을미의병, 을사의병, 정미의병이 있다.
1895~1896년의 을미의병은 조선 말기 최초의 대규모 항일의병으로, 을미사변 후 왕후폐위조칙 발표, 단발령 시행을 계기로 일어났다.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여 대개 그 지방의 유명한 유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대표적으로 유인석, 이필희, 서상렬을 비롯하여 춘천의 이소응, 이천과 여수의 박준영과 김하락, 강릉 여주의 민용호 등이 활약하였다.
1905~1906년의 을사의병은 러일전쟁 발발, 한일의정서 체결 등으로 고조된 항일의식이 1905년 을사늑약 강제 체결을 계기로 폭발한 구국항일의병이다.
대표적으로 최익현 의병진, 신돌석 의병진과 더불어 민종식과 안병찬 등이 주축이 된 홍주의병, 그리고 정환직, 정용기 부자의 산남의진 등이 있다.
1907~1910년의 정미의병은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7조약 체결, 대한제국군대 강제해산 등을 계기로 발생하였다. 특히 1907년 8월 강제로 해산된 군인들의 대일항전에서 비롯되었고, 1906년 후반으로 접어들며 기세가 누그러졌던 을사의병이 이를 계기로 하여 거국적으로 확대 및 발전하였다. 원주진위대 해산군인 민긍호와 박준성, 경상북도의 이강년과 신돌석, 경기도의 허위와 연기우, 장성의 기삼연, 함평의 김태원과 심남일, 무주의 문태수, 임실의 이석용 등이 활약하였다.

의열단/의열투쟁

사건설명

의열투쟁이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제를 상대로 벌인 무력 투쟁을 일컫는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이어졌고, 한국 독립운동사의 매우 중요한 항일 투쟁 방식 중 하나이다.
의열단은 의열투쟁을 전개한 대표적인 단체이다.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된 항일 무력독립운동 단체로, 김원봉, 윤세주, 황상규 등이 활동하였다. 1919년의 거족적인 3.1운동을 겪은 뒤, 해외로 독립운동기지를 옮긴 애국지사들은 강력한 일제의 무력에 대항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보다 조직적이고 강력한 독립운동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계기로 1919년 11월 의열단이 조직되어 1920년대에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조국 독립을 위해 과격한 적극 투쟁과 희생정신을 강조하였다.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조선총독부 투탄의거, 종로경찰서 폭탄누척의거 등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건설명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기 전부터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요구가 존재했으나, 3.1운동과 동시에 임시정부 수립 운동이 일어나면서 마침내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되었다. 각료에는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 국무총리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 외무총장 김규식, 법무총장 이시영, 재무총장 최재형, 군무총장 이동휘, 교통총장 문창범 등이 임명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하는 등 외교활동과 더불어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와 같은 의열투쟁, 육군무관학교 및 비행사양성소 설립, 한국광복군 창설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학생독립운동

사건설명

우리 민족이 1945년 독립을 이루기까지 학생들은 조국 독립을 위해 여러 투쟁을 계속하였다.
구한말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국권 수호를 위한 투쟁의 선봉에 섰으며, 농촌계몽 및 야학 등의 활동으로 국민의 자주 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 2월 8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그 영향을 받은 3.1운동 또한 유관순, 어윤희 등 학생들을 주체 세력으로 전개되었다. 1926년에는 학생 중심의 6.10만세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전문학교 학생 이병립, 이병호, 이천진, 박두종 등과 중앙고보와 중동학교 학생 박용규, 곽대형, 김재문 등의 학생들이 주도하여 전개되었다. 1929년 10월에는 나주역에서 일본인 학생들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박기옥, 이금자, 이광춘 등을 희롱하는 사건을 계기로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났고, 이것이 확산되어 대구, 부산 등 주변 지역에서도 학생항일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밖에도 부산의 노다이사건, 대구사범학교 왜관사건 등 학생들이 주도하여 일어난 여러 항일운동으로 하여금 학생들의 조선독립정신은 지속되어 왔다.

동학농민혁명

사건설명

동학농민혁명은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에 기초를 둔 반봉건, 반외세적 성격의 농민민중항쟁이다. 1894년에 전라도 고부의 동학 접주 전봉준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켰다. 총 2차에 걸쳐 전개되었는데, 1차 봉기는 전라도 고부 지방의 관리 조병갑의 횡포와 동학교도 탄압에 대항하여 발생하였고, 이후 동학군의 해산에도 불구하고 일제가 내정간섭, 청일전쟁, 갑오개혁 등을 강행하자 반외세를 외치며 2차로 봉기하였다. 그러나 결국 우금치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에 패하고 1895년 1월 전봉준에 이어 손화중 등 동학농민 지도부 대부분이 체포되고 교수형에 처해지면서 동학농민혁명은 실패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은 후에 일어난 항일의병항쟁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국내 항일 운동

사건설명

조선 땅에 잔혹한 일제의 지배가 드리워진 암울한 시기에도 우리 민족은 독립을 목적으로 주력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독립지사들은 국내 독립운동을 위한 여러 단체를 조직하였는데, 기독교 등 종교와 결합하거나 농민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는 등 성격이 다양했다. 그들은 친일부호를 처단하고 독립군을 양성함과 동시에 3.1운동의 계획을 세우거나 군자금을 모집하여 국내 독립운동단체의 존속을 지원하였다. 더불어 선전물을 배포하고 야학을 설치하여 식민지 수탈의 실상과 독립 달성을 역설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해외 항일 운동

사건설명

독립운동을 위한 열망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들끓었다. 우리 민족은 구주(유럽), 노령(러시아의 시베리아 일대), 만주, 미주,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등에서 활동하며, 위치한 곳과 상관없이 오직 조국 독립의 목적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독립지사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항일의식교육을 펼치고 독립군 양성을 도모하였다. 또한 프랑스의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고 유럽 등지에 우리 민족의 참혹한 실상을 알리는 등, 여러 방면에서 조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기타

사건설명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시작으로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은 오직 정의롭고 자주적인 국가를 위해 힘써왔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목숨을 바쳐 투쟁하고 희생된 애국지사들의 넋을 기리고 그 흔적을 기억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