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 3.23만세운동 기념지
오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3일~24일 있었던 만세 운동이다.
이기송 선생은 오병용, 이만의, 이윤의 등과 함께 장날을 기해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으며, 군중에게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호소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일 시위군중은 무려 2,000명으로 늘어났으며, 그 이튿날까지 이어졌다.임실지역은 그 어느 곳보다도 치열했던 의거지 중에 하나이다. 3월 10일 오수초등학교 3~4학년 학생들에 의해 촉발된 3.1 만세운동은 3월 23일~24일 2,000여 명의 군중이 치열한 만세운동을 펼쳤던 곳이다. 오수면(당시 둔남면), 삼계면, 지사면은 1906년과 1914년 두 번에 걸쳐 조선시대 남원부에서 임실군으로 편입된 곳인데, 당시 오수면은 임실군의 남면과 남원부 덕과방과 둔덕방을 합하여 둔남면이라고 불렀다. 1916년 조사통계에 의하면, 둔남면(현 오수면)은 1,120호에 5,542명으로 같은 시기 임실군 전체 12,552호에 59,549명의 약 9.3%에 해당한다. 당시 오수장날을 기해서 일어나 만세운동은 800여 명으로 시작하여 2,000여 명으로 불어났고, 이날 만세운동으로 국가유공자로 추서된 사람이 44명에 이르고 있다. 그중에서 오수면은 28명, 지사면은 12명, 삼계면은 6명에 이른다. 오수면 호수와 인구대비 약 30%, 즉, 16세부터 60세에 해당하는 사람을 활동인구로 잡았을 때 1916년 오수면 인구 5,542명의 30%는 약1,660여 명 정도이다.
이를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2,000여 명과 대비한다면 둔남면 전체 활동인구를 넘는 사람들이 3월 23일 만세운동에 참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