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설 묘
이현설(1894 - 1952)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 성내동 시장 시위와 병곡면 읍내 시위 소식을 접한 후, 다음날 창수 경찰 주재소 부근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당시 신리에는 도로공사로 전답을 강제 수용당하여 일제에 불평을 가진 주민들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시위에 동참하였다. 3월 19일 이현설(李鉉卨)은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창수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오후 4시경, 주재소 앞에는 인근 마을 주민까지 약 2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선두에서 군중을 이끌고 주재소를 점거한 후, 청사(廳舍) · 객사(客舍) 및 기숙사 등을 파괴하고 공문서를 훼기(毁棄)하였다. 뿐만 아니라 비치된 대검, 총, 기타 집기까지 완전히 파괴하였다. 저녁 7시까지 시위를 계속한 후 군중들과 함께 귀가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 방해, 건조물 손괴(損壞),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항소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52년 5월 24일 사망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