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의사 창의탑
팔의사 창의탑은 경상남도 창원군 진동면, 진전면, 진북면 3개 면민들의 시위운동인 4.3삼진의거는 1919년 4월 3일 진동, 진전, 진북 3개면 약 5,000여 명(일부 사료 8000명)의 군중이 일본 헌병의 총칼에 맨주먹으로 맞서 벌인 크고 격렬한 만세운동으로 일제의 총격으로 8명이 숨지고 22명이 부상한 사건이 있었다. 1963년 10월 삼진면민들은 순국한 8의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 237번지 고현 마을 입구에 8의사 창의탑을 세웠다. 변상태와 권영대, 권태용, 변상헌 등은 진전, 진북, 진동 3개 면의 합동의거를 4월 3일에 대대적으로 거사할 것을 결의했다. 이들은 4월 3일이 되자 진전면의 군중들을 이끌고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시위대가 진동 장터로 진입을 하고자 하였으나, 시위대의 규모에 놀란 일본 헌병들은 마산의 주둔부대에 긴급지원을 요청하고, 헌병보조원과 재향군인까지 동원하여 진동입구의 사동교에 진을 치고 시위대의 진입을 가로막았다. 이때 진전면의 시위대에 진북과 진동면의 군중들이 합류하여 시위군중이 7000여 명으로 불어나 사동교에서 대치하였다. 일본 헌병과 군인들이 시위군중을 향해 발포하여 당시 23세인 김수동과 변갑섭이 목숨을 잃었다. 오후 3시 마산의 중포병 대대 병력이 증파되어 사망자는 모두 8명에 22명 이상의 부상자를 냈다. 목숨을 잃은 8명은 김수동, 변갑섭, 변상복, 김영환, 고앙주, 이기봉, 김호현, 홍두익 등이었다. 있었다. 또한 변상섭, 변상술, 구수서, 변상헌, 김영종, 변우범 등은 징역형을 수형하였다. 삼진면민들은 부상자에 대한 일제의 치료를 거부하고 성금을 모아 민간병원에 치료를 의뢰하여 강렬한 민족의식을 다시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