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식 집
조동식(1873-1949)은 충청북도 청원 사람으로,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3월 23일부터 3일간에 걸쳐 밤마다 강내면(江內面) 대성리(臺城里)에 있는 대성산상(?)에서 부락민 수십 명과 함께 횃불을 올리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사기를 올렸다. 첫날인 23일에는 면내의 18개 부락과 인접한 강외(江外), 옥산(玉山), 남이면(南二面) 등지에서도 호응하여 횃불을 올리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에 일제는 청주와 조치원 등지의 경찰과 헌병, 수비대까지 동원시켜 시위행렬을 제지하고 총기를 휘두르며 여러 사람을 잡아 연행하여 새벽 1시경에야 시위가 끝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튿날인 24일과 26일에도 횃불시위는 계속되어 충남 연기군(燕岐郡) 동면(東面) 응암리(應岩里)에서 이에 호응하였고, 27일에도 동면의 예양리(禮養里)에서 횃불시위가 전개되었으며, 4월 1일에는 청주, 오창, 강의, 부용면에서 횃불시위가 벌어지고, 또한 북일, 북이, 강내, 오산면에서도 일어남으로써 도합 8개 면, 즉 청주군의 서북쪽 태반이 모두 불바다와 만세 소리로 진동케 되었다. 또한 조동식은 3월 25일 김재형이 보낸 사람으로부터, 독립만세운동을 고취시키는 비밀 격문 약 50매를 받아서 허영대로 하여금 화정리(華亭里) 일대에 배포시키는 등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그해 6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을 확정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