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항일 독립 만세 운동 기념비(옥녀봉)
강경 지역의 3.1운동은 3월 10일 오후 3시경 엄창섭(嚴昌燮)의 주도 아래 500여 명의 군중으로 시작하였다. 엄창섭은 부여군 세도면의 창영학교의 교사였으며 고상준, 추병갑, 김종갑, 추성배, 서삼종, 윤동만 등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고 옥녀봉으로 운반하였다. 태극기를 나눠받은 군중들은 다 함께 옥녀봉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하산하며 일본인이 거주하는 본정통(本町通)을 경유하여 강경시장을 일주하며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였다. 일본 경찰은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하였고, 이 일로 엄창섭은 징역 2년, 고상준과 추병갑은 각각 징역 1년, 강세형·윤동만·정기섭은 각각 징역 8월, 김종갑·추성배는 각각 징역 6월, 서삼종·한규섭은 각각 태형 90의 형을 받았다. 이후 3월 15일 장날 다시 거사하려다가 태극기 55매를 압수당하였고, 제2차 옥녀봉 만세운동이 3월 20일 오후 5시경에 발생하였다. 주동자 이근석(李根奭)은 송재기(宋在紀), 이봉세(李鳳世). 이근오(李根五) 등과 함께 태극기 360본을 제작하고 오후 5시경 옥녀봉에 모여든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행진을 하였다. 시위 군중들이 강경 상시장을 거쳐 서정(西町) 방면으로 진행할 때에는 장꾼들이 합세하여 시위군중은 1천여 명이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