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섭 독립만세 고창유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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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창촌리 265-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탐방로 안내판에서 심호섭 선생 독립만세고창유지비도 표시가 되어있다.
개천의 반대쪽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개천의 반대쪽으로 돌아오자 멀리 비석이 보였다. 반가워서 먼저 멀리서 원경을 촬영한 후에
하지만 아니었다.
인터넷에 나와있는 사진을 보면 큰 나무 밑에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심호섭 선생 독립만세고창유지비는 이곳에서 약 2Km 거리에 있다고 한다.
GPS상으로 확인된 주소는 경남 진주시 수곡면 창촌리 265-1 진주농민항쟁 기념탑 부근이었다.
심호섭 선생 독립만세 고창유지비 -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43-1-42 / 관리자: 문중대표
이 유지비는 심호섭(沈護燮: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2년 8월 15일에 건립되었다. 심호섭 선생은 초대 수곡면장으로 재직시 서울에서 3·1독립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사재(私財)로 격문과 태극기를 만들면서 면내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1919년 3월 22일 수곡면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이해 5월 20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그 후 1926년경에는 일본의 동경(東京)·명고옥(名古屋) 등지를 무대로 친일 한국인단체인 상애회(相愛會)와 근로조합(勤勞組合)을 상대로 투쟁하여 민족의식과 항일애국정신을 고취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심호섭(沈護燮) 선생 독립만세고창유지비
이곳은 향리(鄕里) 사곡에서 출생한 심호섭 선생의 독립만세 고창유지(高唱遺址)이다. 선생은 수곡면장으로 재직 중 1919년 3월 22일 이곳 창촌무실장터에서 면민다수를 규합(糾合)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여 시위하다가 일경(日警)에 피체(被逮)되어 동년 5월 20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미결기간을 합하여 1년간의 옥고(獄苦)를 치렀다. 이에 대한민국은 1990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建國勳章 愛族章)을 추서(追敍)하였기로 그 애국정신을 영원토록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운다.
1992년 8월 일
진양군
경남 진주시 수곡면 창촌리 670 에 있다는 심호섭 선생 독립만세고창유지비를 찾아왔다.
하지만 해당 번지는 개천의 가운데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