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장서비(덕곡마을)

4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330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파리장서 해설문
한국의 유림 대표 곽종석, 김복한 등 137명은 파리만국평화회의 여러 대표에 글을 올리노니 하늘과 땅 사이에서 만물이 생장하면서 다 함께 덕과 조화의 공을 입었지만, 쟁탈의 틈 사이에서 강약과 대소의 형세가 나위는 동시에 군사력을 남용해 인민을 혹사하고 사욕으로 나라를 홈치니 천하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던 말입니까? 오늘에 이르러 하늘이 내린 위대한 민자와 시위를 만들어서 천하가 평화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이때 실제로 덕을 입지 못한다든지 원한에 공변된 의논을 듣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어찌 여러분이 우리에게만 차별하는 것입니까?
우리 한국도 당당한 세계 각국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의 영토는 사천리요 인구는 2천만으로서 4천년의 역사를 보전하는 동시에 반도의 문명국이라 듣고 있으니 세계 어느 나라도 울의 존재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국위를 떨치지 못해 안으로는 일부 친일파들이 북새질을 하고 밖으로는 강적이 엿보면서 무력을 빙자하고 사지를 농락해 임금을 협박하고 인민을 자갈 물려 강제로 맹약을 작성하더니 이어 임금을 폐위시키고 나라를 빼앗아 우리 한국을 세계에서 말살한 것입니다.
일본의 소행을 말한다면 병자년에 우리나라와 강화에서 조약을 맺고 을미년에 청국과 조약을 맺으면서 모두 우리의 자주독립을 영원히 준수한다고 하였을 뿐 아니라 계묘년에 러시아에서 선전할 적에도 열국에 알리기를 당연히 우리 한국의 독립을 확인하는 성명을 냈던 것은 세계 만국이 모두 알고 있는 바입니다. 얼마 안 가서 안으로는 협박하고 밖으로는 보호라 속이면서 병합하고는 우리 국민의 청원이라 핑계하면서 세계만방의 뜻을 모면하려하니 이것은 우리 한국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우리 국민은 사력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음을 잘 아는지라 하늘이 우리를 돌보아 호운이 돌아 올 것만 고대하면서 치욕을 참고 박해에 신음하기 십 년에 여러분이 평화회의를 연다는 말을 듣고 우리 국민은 용기를 얻어서 만국에 평화가 오는데 어찌 만국의 하나인 우리나라에서만 평화가 없다는 말입니까?
이미 폴란드는 독립해 전 국민이 만세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평등하게 다루실 것만은 틀림없는 것이라 이것은 하늘의 뜻이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 큰 사명을 마치시면 우리는 우리나라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서 구렁에 뒹구는 백골까지라도 썩지는 못하고 눈을 감지 못하고 좋은 소식만 기다리다가 하루하루 지나가던 차에 비운은 다시 닥쳐와 우리 임금이 돌아가시니 온 국민의 비통이 하늘에 사무쳐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 국장 날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독립만세를 불러서 임금의 영혼을 위로했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성군의 유품을 받아 유교에 종사하였는데 지금 세계가 새로 거듭날 우리나라의 존재 여부가 이번에 달려있는 바 차라리 나라 없이 살아있기보다는 나라를 위하다가 죽은 것만 같지 못한 것입니다.
나라의 우면을 영원히 하소연할 희망이 없는 바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하신 대표들에게 보이지도 못하고서야 어찌 우리나라의 억울한 사정을 이해하겠습니까? 그래서 지면을 빌어 이와 같이 억울한 사실을 적어 만 리 밖에서 올리니 실로 비극의 절박한 무어라고 형헌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가엾게 살피고 더욱 공정한 판단을 내려서 빛이 두루 미치고 정의와 도덕이 이 세상에 살아있게 되니 여러분의 사명은 다한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목을 늘려서 죽을지언정 맹세고 일본의 노예는 되지 않겠으니 이천만의 생명만이 하늘과 땅의 덕을 입지 못하고 원한을 가지게 되니 한국 독립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파리장서비 건립 진주추진위원
위원장 하우송(전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위원 정보주(전 진주교육대학교 총장), 박만종(이학박사), 하장근(유족대표), 하병동(유족대표), 하주헌(유족대표), 하경철(전 진양하씨 대종회장), 하회영(전 진주시 부시장), 하동준(진수발전 대표), 류행수(영남소방 대표), 조영도(주)(진양 대표)
참여기관 진주향교, 성균관 진주유도회, 진주문화원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330 덕곡마을 덕곡서당 앞에 건립된 파리장서비를 찾아가고 있다.
독립청원 파리장서(巴里長書)

파리장서운동 개요
우리나라는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로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다. 우리 민족은 구국 투쟁에 나섰으며 대표적인 것아 1919년 3.1만세운동이 기독교·불교·천도교계가 선도한 국내활동이 주였다면, 독립청원운동은 유림계가 주도한 세계를 향한 국제활동으로 특징된다. 제1차 세계대전 종결과 함께 민족자결주의 세계 조류에 고무받은 유림계는 곽종석·김복한 등 전국의 유림 137인이 서명한 독립청원서를 1919년 5월 프랑스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였다.
일제의 국권강탈과 극악한 민족탄압을 세계에 알리고 대한독립의 지원을 호소한 청원서가 긴 글이라 하여 파리장서로 불리게 되었다. 유림들의 서명을 마친 파라장서를 김창숙이 중국 상하이로 가서 임시정부 김규식으로 하여금 강화회의에 제출하고 외국의 공관과 언론에 알렸다. 국내에도 전국의 향교, 단체, 언론에 일제히 배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서명인들은 일제 경찰에 체포, 투옥되고, 목숨까지 잃은 분들도 있었다. 3·1만세운동과 파리장서운동의 함성은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하였고, 불굴의 의지는 요원의 불길로 강토를 휩쓸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일제36넌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조국 광복을 쟁취하고 대한민국을 건국시킨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 독립의지를 밝히고, 일본에게는 독립을 선포한 이 역사를 영원히 기억하고 귀감으로 삼아 영광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아가자.
독립청원 파리장서(巴里長書)

파리장서 해설문

한국의 유림 대표 곽종석, 김복한 등 137명은 파리만국평화회의 여러 대표에 글을 올리노니 하늘과 땅 사이에서 만물이 생장하면서 다 함께 덕과 조화의 공을 입었지만, 쟁탈의 틈 사이에서 강약과 대소의 형세가 나위는 동시에 군사력을 남용해 인민을 혹사하고 사욕으로 나라를 홈치니 천하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던 말입니까? 오늘에 이르러 하늘이 내린 위대한 민자와 시위를 만들어서 천하가 평화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이떄 실제로 덕을 입지 못한다든지 원한에 공변된 의논을 듣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어찌 여러분이 우리에게만 차별하는 것입니까?
우리 한국도 당당한 세계 각국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의 영토는 사천리요 인구는 2천만으로서 4천년의 역사를 보전하는 동시에 반도의 문명국이라 듣고 있으니 세계 어느 나라도 울의 존재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국위를 떨치지 못해 안으로는 일부 친일파들이 북새질을 하고 밖으로는 강적이 엿보면서 무력을 빙자하고 사지를 농락해 임금을 협박하고 인민을 자갈 물려 강제로 맹약을 작성하더니 이어 임금을 폐위시키고 나라를 빼앗아 우리 한국을 세계에서 말살한 것입니다.
일본의 소행을 말한다면 병자년에 우리나라와 강화에서 조약을 맺고 을미년에 청국과 조약을 맺으면서 모두 우리의 자주독립을 영원히 준수한다고 하였을 뿐 아니라 계묘년에 러시아에서 선전할 적에도 열국에 알리기를 당연히 우리 한국의 독립을 확인하는 성명을 냈던 것은 세계 만국이 모두 알고 있는 바입니다. 얼마 안 가서 안으로는 협박하고 밖으로는 보호라 속이면서 병합하고는 우리 국민의 청원이라 핑계하면서 세계만방의 뜻을 모면하려하니 이것은 우리 한국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우리 국민은 사력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음을 잘 아는지라 하늘이 우리를 돌보아 호운이 돌아 올 것만 고대하면서 치욕을 참고 박해에 신음하기 십 년에 여러분이 평화회의를 연다는 말을 듣고 우리 국민은 용기를 얻어서 만국에 평화가 오는데 어찌 만국의 하나인 우리나라에서만 평화가 없다는 말입니까?
이미 폴란드는 독립해 전 국민이 만세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평등하게 다루실 것만은 틀림없는 것이라 이것은 하늘의 뜻이 올아온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 큰 사명을 마치시면 우리는 구이나라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서 구렁에 뒹구는 백골까지라도 썩지는 못하고 눈을 감지 못하고 좋은 소식만 기다리다가 하루하루 지나가던 차에 비운은 다시 닥쳐와 우리 임금이 돌아가시니 온 국민의 비통이 하늘에 사무쳐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 국장 날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독립만세를 불러서 이믐의 영혼을 위로했던 것입니다. 우리민족은 성군의 유품을 받아 유교에 종사하였는데 지금 세계가 새로 거듭날 우리나라의 존재여부가 이번에 달려있는 바 차라리 나라없이 살아있기 보다는 나라를 위하다가 죽은 것만 같지 못한것입니다.
나라의 우면을 영원히 하소연할 희망이 없는 바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하신 대표들에게 보이지도 못하고서야 어찌 우리나라의 억울한 사정을 이해하겠습니까? 그래서 지면을 빌어 이와같이 억울한 사실을 적어 만리 밖에서 올리니 실로 비극의 절박한 무어라고 형헌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가엾게 살피고 더욱 공정한 판단을 새려서 빛이 두루 미치고 정의와 도덕이 이 세상에 살아있게 되니 여러분의 사명은 다한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목을 늘려서 죽을지언정 맹세고 일본의 노예는 되지않겠으니 이천만의 생명만이 하늘과 땅의 덕을 입지 못하고 원한을 가지게되니 한국 독립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독립청원 파리장서(巴里長書)

파리장서 건립 취지문
진주는 예로부터 호국충절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고려 시대 거란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순국한 충절신 하공진, 조선시대 진주성 전투의 김시민 및 논개 등 7만 민관군의 순의, 일제 강점기 항일독립운동으로 이어진 충절 정신은 진주 천년 역사의 표상이 되었다. 이에 독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청원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한 진주 출신 독립지사의 공적을 기리고자 한다. 독립청원서에 서명한 전국 유림 137인 중 진주인은 4명이었고, 이들 모두 나라 잃은 절망을 울분으로만 삭이지 않고 독립투쟁에 온몸을 던진 진정한 선비들이었다. 회봉 하겸진 집에서 회동한 하봉수·이수한 등이 김창숙의 입회로 결의 서명하고 활동에 나섰던 것이다. 이에 서명이 이루어진 역사의 현장이자 그 얼리 깃든 이곳 사곡에 파리장서 진주비를 세운다. 독립지사들의 고귀한 유업을 추앙하고 후대에 교육의 장이 되어 진주인의 호국 충절의 기개가 면면히 이어지길 소망한다.
진주시 파리장서기 건립 진주추진위원회

파리장서 서명 진주출신 3人
<회봉 하겸진>
진양인, 1870~1946, 진주 사곡
유학자(주어절요, 동유학안 70여권 저술)
건국훈장 애족장(1995)
덕곡서당 향례

<백촌 하봉수>
진양인, 1857~1939, 진주 사곡
유학자(문집 10책 저술, 국채보상운동 참여)
독립운동 건국포장(1995)

<매당 이수안>
재령인, 1859~1929, 진주 대곡
유학자(경설 주해 등 10책 저술)
독립운동 건국포장(1995)
매호서당 향례
파리장서 해설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