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중락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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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 산46-17
탐방로그
유중락 묘의 GPS상의 주소는 춘천시 남면 가정리 산 46-17이다. 길을 찾기 어려우므로 가정중학교 뒷편 산길로 올라가는 편이 좋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토적 복수하게 되었다. 이 때에 춘천의병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게 되었는데 선생은 습재 이소응 족제 항와 유중악 족질 외당 유홍석 경와 유봉석 등 제공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미구에 의병이 흐터지게 되었다. 그 후 정미년에 왜적이 고종황제를 강제로 페위하고 적부의 군대를 해산케 하자 각지에서 다시 격력한 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때에 선생은 외당 항와 경와 및 유영석 유제곤 박선명 박화지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춘천 진병산과 의암 소가 평주 길리 등지에서 싸웠으나 왜병의 우세한 무력을 감당할 수가 없었고 각처 의병이 모두 해산하게 되었다. 선생은 의병 재거의 기회를 기대하였으나 이미 국세가 기울어 뜻을 이룰수 없었으며 이로부터 선생은 후진양성과 위선보족의 일에 성력을 다하다가 임술년 12월5일에 춘천의 본산리 거제에서 돌아가니 향년이 81세로 본산리의 가지동 후록 간좌에 안장하였다. 선생의 국권수호를 위한 의병활동에 대하여 국가에서는 광복 후 임술년 8월 15일에 건국포장을 추서한 바 있다. 선생의 배는 죽산박씨니 교관 성요의 녀이다. 헌종 5년 기해에 출생하여 신유년 9월 8일에 돌아가니 선생과 합폄하였다. 1남 2녀를 두었으니 남 구석은 종백부 중숙
에게 출계하였고 계자 의석은 수제의 자이며 2녀는 경주 이익래와 신창 맹의재이다. 구석은 제갑 제철 제만 제인 4남을 두었는바 제만은 본 종숙부 의석에게 출계하여 본생 조고인 선생을 계통하게 되었으며 한식 화식 2남을 두었고 한식은 남 연한을 두었다. 후 을축년 음 6월 14일에 선생 묘소를 가정리 주산 손좌원으로 이폄하였다. 춘성군수 김승규 입석함

단기 4318년 8월 일 강원대학교 교수 박한설
단기 4318년 8월 일 족손 제생 근서
서기 1985년 8월 일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후원
같은 장소에 여러 비석이 있다.
춘천시 남면 가정리 1226-1 도로변에 묘 입구 표지석이 있다.
'의병훈련장, 오천 유중락 의병장 묘소 입구'라고 새겨져 있다.
표지석 뒷면에
'단기 4332년 8월 15일
강원애국선열추모사업회
남면 후원회 번영회 건립'이라고 새겨져 있다.
묘로 가기 위해서 가정중학교 뒷편 산으로 들어가야 한다.
GPS상의 주소는 춘천시 남면 가정리 산 46-17이다.
義士 高興柳公 重洛之墓(의사 고흥유공 중락지묘)
선생의 휘는 중락이요 자는 사원이요 호는 오천이니 고흥인이다. 원조는 고려시중 휘 탁이요 조선조에 휘 숙은 부제학이니 선생의 9대조이다. 고조는 휘 득한이니 통덕랑이요 증조는 휘 원이요 조는 휘 영택이요 고는 휘 호요 비는 함양박씨니 휘 헌규의 녀이다. 선생이 헌종8년 임인4월 18일에 춘천 가정리에서 출생하니 어려서부터 의모가 헌앙하고 담론이 쇄락하여 화서 중암 성재 3선생 문하에서 수학하매 크게 학문이 성취하였고 특히 위정척사의 뜻을 품게 되었다. 고종 을미년에 왜적이 국모 민씨를 시해하는 대변이 일어나매 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