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두성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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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남도 사천시 서포면 금진리 산62-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묘소입구
보훈번호 48000906호
독립유공포상 대통령 제89030호
義士 龍坡 辛公斗星之墓(의사 용파 신공두성지묘)
보훈번호 22359521호
국가유공 대통령 제4027239호
梁山 辛公鍾浩之墓(양산 신공종호지묘)
소재지 : 경남 사천 서포 오곡산 / 보훈번호 : 48000906호 / 독립유공포상 대통령 제89030호
義士 龍坡 辛 斗星(의사 용파 신 두성)
우리나라는 섬 오랑캐의 침략을 당하자 義士(의사)들이 원수에 대한 적개심 충성심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울분의 피를 뿌리며 일어났다. 義士(의사)이신 龍坡(용파) 辛(신) 斗星公(두성공)이 그중 한분이시다. 신씨의 본관은 영월인데 평장사 벼슬을 지냈고 시호가 정의인 鏡(경)이란 분이 시조이시다.(중략)
대대로 많은 관직에 모두 문학과 덕행을 갖추시다. 公(공)께서는 고종 경인년(1890년) 2월 17일에 동래구 정관면 용수리 가동에서 태어나 호걸다웠다. 고종황제가 승하하시자 왜적의 침략이 흉악, 잔혹하여 우리 동포의 통분과 적개심이 들끓었다. 다음해 을미년 3월 오 진환, 김 윤희, 정 지모, 박 일봉 등 義士(의사)들과 동지를 규합, 조룡산에 올라 하늘에 천제를 지내고 죽음을 불사 나라를 구하고자 결성하다. 다음날 좌천장날 구름과 같이 모인 군중의 선봉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복창하는 군중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다. 결국 왜경에 잡혀 옥에서 참혹한 고문과 혹독한 형벌을 받았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이 거사는 내가 주도함이니 법에 저촉이 있다면 기꺼이 감수하리라. 그런 속에서 목숨만을 지켰음은 오직 하늘의 뜻이렸다. 광복 후 14년 기해년 8월 23일 서거하시다.
애국지사의 묘소였다.
義士 龍坡 辛公 斗星 之墓(의사 용파 신공 두성 지묘)
옆에 또 다른 묘비가 있었다.
義士 龍坡 辛公 斗星 之墓(의사 용파 신공 두성 지묘)
우리나라는 섬 오랑캐의 침략을 당하자 義士(의사)들이 원수에 대한 적개심 충성심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울분의 피를 뿌리며 일어났다. 義士(의사)이신 龍坡(용파) 辛斗星公(신두성공)이 그중 한분이시다. 公(공)의 아드님 鍾浩(종호)가 조상 대대로의 세보와 업적을 기록하고 적게 되다.
辛氏(신씨)의 본관은 영월인데 평장사 벼슬을 지냈고 시호가 정의인 鏡(경)이란 분이 시조이시다(중략)
대대로 많은 관직에 모두 문학과 덕행을 갖추시다. 공께서는 고종 경인년(1890년) 2월 17일에 동래구 정관면 용수리 가동에서 태어나 호걸다웠다. 고종 임금이 승화하시자 왜적의 침략이 흉악, 잔혹하여 우리 동포의 통분과 적개심이 들끓었다. 다음해 을미년 3월 오진환, 김윤희, 정지모, 박일봉 등 의사들과 동지를 규합, 조룡산에 올라 하늘에 천제를 지내고 죽음을 불사 나라를 구하고자 결성하다. 다음날 좌천장날 구름과 같이 모인 군중의 선봉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복창하는 군중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다. 결국 왜경에 잡혀 옥에서 참혹한 고문과 혹독한 형벌을 받았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이 거사는 내가 주도함이니 법에 저촉이 있다면 기꺼이 감수하리라. 그론 속에서 목숨만을 지켰음은 오직 하늘의 뜻이렸다. 광복후 14년 기해년 8월 23일 서거하시다. 부인에 김금순, 김귀련에 자로는 주현, 주협, 기호, 종호를 낳으시고 장성호, 송백이는 사위이며 손자는 동렬, 동수, 영만, 태선, 태주, 경주이며 증손자는 재혁, 혁진이다.
산소는 경남 사천 서포 오곡산 인좌방
사천시 서포면 금진리 산62-1 애국지사 신두성선생의 묘소를 찾다가 만난 묘소 안내판
안내판
의사 용파 신두성선생 묘소
경남 사천시 서포면 오곡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