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송백리 733-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경남 밀양시 산내면 송백리 양송정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는 독립의사 경암 밀성손공 휘 호 건국훈장 애국장 사적비를 찾아왔다.
獨立義士 敬庵 密城孫公 諱 滸 建國勳章 愛國章 事蹟碑(독립의사 경암 밀성손공 휘 호 건국훈장 애국장 사적비)
독립의사 경암선생 손공의 휘는 호요 일휘 허는 독립운동당시 봄녕을 숨기기 위한 가명이요 자는 목여며 경암은 자호이다. 공은 성균진사 송오공 진수의 아들로서 1897년 정유에 밀양군 산내면 양송정리제에서 출생하니 비는 권학산삼변후 기의 녀 이다. 세계는 신라시인 출천대효 순 이 시조이고 고려 개국공신 긍훈이 득관조이며 조선중엽 도호부사 오한선생 기양이 공의 10대조 선조가 되며 4세를 지나 6대조 처사공 수국이 양송정으로 택리이거하니 즉 오한선생의 의거지인 호거산하 석동마을과 근
접한 곳이다.
공은 이와같은 충효세족과 또한 유서깊은 지령을 이어 받아 천자영명하여 소시부터 의리에 엄정하고 특히 애국사상이 투철하였다. 불우하게도 국파망으로 분연히 독립운동에 투신하니 때눈 1922년 임술 공과 뜻을 같이한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신간회에 가입하여 당시 영남일대에서 민족자결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신민부중앙집행 위원장 김좌진장군으로 부터 일제의 고관과 친일분자 암살및 일제의 중요시설물 폭파를 위한 군자금 모집등의 밀령을 받고 가명 이경숙인 이병묵과 가명 신석암인 신현규 손봉현 윤창선등과 대구지방에서 활약하다가 1928년 무진5월에 일경에 체포되어 1929년 기사 9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경 제8호 위반 죄명으로 징역 10년형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모진고문으로 1936년 병자 음 7월 7일에 옥사순국하니 시년이 39세였다.
오호라 공의 회적이 1979년 기미 12월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간행한 독립운동사 7권 의열투쟁사 548면및 1987년 정유12월 국가보훈처가 간행한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4권 706면에 상세히 기록되고 40년만에 광명한 햇빛을 보게됨에 때 늦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내리고 동시에 광복회의 후원과 향사람의 공의로 이 비를 세우니 산악도 빛나고 초목도
공은 이와같은 충효세족과 또한 유서깊은 지령을 이어 받아 천자영명하여 소시부터 의리에 엄정하고 특히 애국사상이 투철하였다. 불우하게도 국파망으로 분연히 독립운동에 투신하니 때눈 1922년 임술 공과 뜻을 같이한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신간회에 가입하여 당시 영남일대에서 민족자결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신민부중앙집행 위원장 김좌진장군으로 부터 일제의 고관과 친일분자 암살및 일제의 중요시설물 폭파를 위한 군자금 모집등의 밀령을 받고 가명 이경숙인 이병묵과 가명 신석암인 신현규 손봉현 윤창선등과 대구지방에서 활약하다가 1928년 무진5월에 일경에 체포되어 1929년 기사 9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경 제8호 위반 죄명으로 징역 10년형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모진고문으로 1936년 병자 음 7월 7일에 옥사순국하니 시년이 39세였다.
오호라 공의 회적이 1979년 기미 12월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간행한 독립운동사 7권 의열투쟁사 548면및 1987년 정유12월 국가보훈처가 간행한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4권 706면에 상세히 기록되고 40년만에 광명한 햇빛을 보게됨에 때 늦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내리고 동시에 광복회의 후원과 향사람의 공의로 이 비를 세우니 산악도 빛나고 초목도
기뻐하노라.
이어 명하노니, 석골산에 서린 선조의 얼이 송백에 다시 푸르러 의혈로 전통이어 피 흘려 거름되고 뼈깍아 흙이 되니 조선광복 맺은 열매 독립의사 장하도다.
대한민국 66년(서기 1984년) 갑자 2월 21일
안동 손태규 근찬
진주 류창목 근서
이어 명하노니, 석골산에 서린 선조의 얼이 송백에 다시 푸르러 의혈로 전통이어 피 흘려 거름되고 뼈깍아 흙이 되니 조선광복 맺은 열매 독립의사 장하도다.
대한민국 66년(서기 1984년) 갑자 2월 21일
안동 손태규 근찬
진주 류창목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