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당산리 산33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 이동해서 그 곳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찾아가고 있다.
왼쪽 멀리 보이는 저곳이 애국지사의 묘소로 추정된다.
왼쪽 멀리 보이는 저곳이 애국지사의 묘소로 추정된다.
독립유공자 정대필의 묘(1880.5.10~1938.8.19)
경상남도 거창 사람이다. 선생은 평소 성품이 강직하고 덕망이 높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으며 1919년 4월 8일 위천 고현장날 일제에 항거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여 이형준, 유희탁, 유한탁 지사들과 함께 사전 인근면을 돌면서 시위 군중들을 집결토록 하였고, 고현장날 많이 모인 군중들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앞장서서 외치며 "우리는 독립국가이니 일인들은 물러가라"는 구호와 함께 일본 헌병분견소를 투석하며 습격하다 체포된 후 감방에서도 굽히지 않고 두려움 없이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진주형무소에서 1922년 7월까지 3년간 옥고를 치루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거창군수
경상남도 거창 사람이다. 선생은 평소 성품이 강직하고 덕망이 높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으며 1919년 4월 8일 위천 고현장날 일제에 항거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여 이형준, 유희탁, 유한탁 지사들과 함께 사전 인근면을 돌면서 시위 군중들을 집결토록 하였고, 고현장날 많이 모인 군중들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앞장서서 외치며 "우리는 독립국가이니 일인들은 물러가라"는 구호와 함께 일본 헌병분견소를 투석하며 습격하다 체포된 후 감방에서도 굽히지 않고 두려움 없이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진주형무소에서 1922년 7월까지 3년간 옥고를 치루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거창군수
愛國志士 草溪 鄭公 大弼 之墓(애국지사 초계 정공 대필 지묘)
애국지사 정공 묘비문
성현의 말씀에 의를 위하여는 목숨을 바쳐라 하였고 국란에 충신이 나고 가빈에 효자가 난다고 하셨다. 우리는 5천년의 오랜 세월 속에서 숱한 국란을 겪을 때마다 민족의 방패가 되어 몸바쳐 애국애족하신 의열이 계셨기에 빛
성현의 말씀에 의를 위하여는 목숨을 바쳐라 하였고 국란에 충신이 나고 가빈에 효자가 난다고 하셨다. 우리는 5천년의 오랜 세월 속에서 숱한 국란을 겪을 때마다 민족의 방패가 되어 몸바쳐 애국애족하신 의열이 계셨기에 빛
나는 역사가 있고 오늘에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몸을 바친 지사 정공이 고이 잠들어 계신다. 공의 휘는 대필이요 호는 이우당이며 초계 정씨이다. 고는 상식 비는 안동 권씨로 서기 1880년 5월 10일에 출생 1938년 8월 19일 59세로 졸하시다. 나라를 강탈당한 지 10년만에 울분을 터뜨리고 봉기한 겨레가 3.1독립운동을 벌였을 때 공은 위천면 장기리 시장에서 대한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왜헌에 항거하다가 피체되여 사경을 넘기고 진주형무소에서 3년간의 모진 옥고를 치루었다. 공의 나라 사랑하신 뜨거운 정성과 뼈에 사무친 항일정신은 조국광복의 밀거름이 되었으며 마침내 나라를 되찾음에 1977년 12월 13일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우리는 공의 높은 뜻을 기리며 후세에 전하여 귀감삼기를 바라면서 겨레의 이름으로 이 비를 세운다.
1982년 월 일
경상남도지사 이규효 거창군수 강대의 세움
1982년 월 일
경상남도지사 이규효 거창군수 강대의 세움
思陵 參奉 草溪 鄭公 大弼 之墓(사릉 참봉 초계 정공 대필 지묘)
부군 휘 대필 초휘 봉필 호 이우당이니 초계 정씨라. 휘 배걸은 시조요. 팔계 선생 휘 전은 중시조라. 후로 명공 거경이 부절하였다. 통정대부 휘 익주는 증조요. 가선대부 팔관은 조요. 통정대부 휘 상식 ○경곡은 고요. 비는 안동권씨라. 공이 사릉참봉으로 독립운동타가 피체 유 유고 묘 위천 당산 후 계좌라. 배 은진임씨는 치가봉사에 진력하였다. 묘는 공묘 합폄이라. 계배 진양강씨는 공의 옥고 시 자녀 교육과 가도를 지켜 옥중에서 가정사만은 안심하도록 힘썼다. 묘 공묘 쌍조라. 유 1남 2녀니 남은 준상이요, 녀는 밀양 박경환과 광산 김동악 처라. 손은 연원 연재 남아 균은 연원 남이요. 정균은 연재 남아라. 여불진록이라. 오호라. 불초태타 무비하야 공의 업적을 각석 영전하라는 선고의 명을 받고 금재 수석하니 죄막중언이라. 사책에 빛나는 공의 충의 사실이 도지사 군수의 세운 비에 상기되었기에 약이불록이라.
당산리 산33을 네비게이터에 입력하고 찾아온 곳. 농공단지 뒷편이다.
길도 없고, 위성지도로 확인하면 추정되는 묘소 위치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다시 마을쪽으로 가서 위성지도를 이용해서 찾아봐야할 것 같다.
다시 마을쪽으로 가서 위성지도를 이용해서 찾아봐야할 것 같다.
다시 마을 뒤로 와서 보이는 모습. 저 대나무 숲 뒤쪽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