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23-8
- 탐방로그
- 이 안내판및 대부분의 인터넷 자료에는 가산면 방축리 80으로 나오지만, 실제 GPS의 주소는 방축리 23-8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건립위원회위원장 이명우 근수
안동후인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문학박사 김동선 근찬
진주후인 소병순 근서
안동후인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문학박사 김동선 근찬
진주후인 소병순 근서
경기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23-8 애국지사 동석 이범영 선생 공적비를 찾아왔다.
이 안내판및 대부분의 인터넷 자료에는 가산면 방축리 80으로 나오지만, 실제 GPS의 주소는 방축리 23-8이다.
이범영 선생 공적비
향토유적 제12호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80
이범영 (1890-1955) 선생은 이 고장 출신의 독립지사·교육자로서 호는 동석(東石) 본관은 전주이다.
일찍이 보성전문 법과를 졸업한 후 향리에 청성학교를 설립, 충의를 교훈으로 민족혼을 고취했고 3.1운동 후 중국에 망명, 3.1학당 설립 운동과 대동청년당 결성에 참여하여 항일지하운동을 전개했다.
1928년 민족자본의 육성을 위해 포천소비조합을 창립했고 그 후 강화학교, 김천 광명학교, 밀양 정진학교, 영등포 영창중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민족교육에 전념했다. 8.15 해방 후 한국독립당의 창당 발기, 영양군수, 병산중학교장 등을 거쳐 향리에 화산고등학교를 설립했다. 김창숙 등과 이승만의 비정을 규탄해 한 때 옥고를 치렀으며, 1963년 독립유공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이 공적비는 항일독립운동과 민족교육사업에 바친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82년 이명우를 건립위원회 위원장으로 한 포천 유지들의 정성으로 건립된 것이다. 비의 높이는 180cm, 폭 62cm, 두께 33cm의 규모이다.
이범영 선생 공적비
향토유적 제12호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80
이범영 (1890-1955) 선생은 이 고장 출신의 독립지사·교육자로서 호는 동석(東石) 본관은 전주이다.
일찍이 보성전문 법과를 졸업한 후 향리에 청성학교를 설립, 충의를 교훈으로 민족혼을 고취했고 3.1운동 후 중국에 망명, 3.1학당 설립 운동과 대동청년당 결성에 참여하여 항일지하운동을 전개했다.
1928년 민족자본의 육성을 위해 포천소비조합을 창립했고 그 후 강화학교, 김천 광명학교, 밀양 정진학교, 영등포 영창중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민족교육에 전념했다. 8.15 해방 후 한국독립당의 창당 발기, 영양군수, 병산중학교장 등을 거쳐 향리에 화산고등학교를 설립했다. 김창숙 등과 이승만의 비정을 규탄해 한 때 옥고를 치렀으며, 1963년 독립유공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이 공적비는 항일독립운동과 민족교육사업에 바친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82년 이명우를 건립위원회 위원장으로 한 포천 유지들의 정성으로 건립된 것이다. 비의 높이는 180cm, 폭 62cm, 두께 33cm의 규모이다.
愛國志士 東石 李範英 先生 頌德碑(애국지사 동석 이범영 선생 송덕비)
이범영 선생의 본관은 전주 호는 동석 ○조 세종대왕의 오사 광평대군의 17대손으로 1890년 10월 6일 포천군 가산면에서 학사 재하씨의 장남으로 탄생하셨다. 1908년 한성보광학교를 졸업하고 공주군 주사로 근무하던 중 한일합방에 비분 공직을 사퇴하고 구국의 길은 민족교육에 있다는 신념하에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시고 현 송우학교 전신인 청성학교를 설립 충의를 교훈으로 삼아 민족혼을 고취시키니 3.1운동 후 일제가 이를 폐쇄하였다. 한때 중국으로 망명하셨다가 귀국 3.1학당을 설립 운영하시였으나 또다시 일제에 의해 해체당하니 남순우 서상일 김창숙씨 등
과 대동청년단을 결성 일제에 적극 항쟁을 하시는 한편 이경희 이규갑 신채호씨 등과 지하운동을 펴시다. 1928년에는 민족자본형성의 일환으로 포천소비조합을 창립 운영 2년 만에 왜경에 의해 해체당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동지들의 후원 속에 전국을 전전하시며 사립학교 설립 강화학원 김천 광명학원 밀양 정진학교 영등포 영창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며 일제의 창씨개명도 거부하고 오로지 민족교육에 전념하시던 중 민족의 염원인 조국광복을 맞이하여 양양군수와 병산중학교장을 역임하셨고 6.25동란 중 두 영식을 국가의 수호신으로 바치시고 한편 정치파동이 격화되자 김창숙 이동하옹과 이정권의 비정을 규탄 이대통령의 하야를 권고 옥고를 겪는 우국애정을 발휘하시기도 하였다. 노후 귀향하여 현 경북중학교의 전신인 등산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시고 1955년 12월 1일 66세를 일기로 영면하실때는 병구를 의지할 초가일간도 없으셨다. 1963년 3월 1일 국가에서 독립유공표창을 추서하기에 이르렀다. 일생을 독립과 민족교육에 바치신 동석 이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포천군의 특별한 배려와 유지 여러분의 정성을 모아 이 비를 세우나니 영령이시여 고이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