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론 독립만세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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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1449-1
탐방로그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1449-1 부론면사무소 앞 부론독립만세운동기념비를 찾아왔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부론면 항일독립만세운동사

1910년 일제에 의한 한일합병으로 국권을 상실한 이후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 선언서의 발표를 계기로 전 민족적인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부론면은 삼엄한 시국상황 속에서도 1919년 3월 27일 노림리의 노림의숙(魯林義熟) 교사 홍남표(洪南杓) 어수갑(魚秀甲)의 영향을 받아 한범우.한돈우.한민우.한태우.김성수.정현기.김일수 등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법천리에서는 4월 8일 표광천.지천복과 수십 명의 주민이 참가하여 응봉산에서 봉화시위를 거행하였다. 또한 이 무렵 배재학당 학생이었던 이근성이 이근원.정우진과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체포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뒤이어 4월 11일에는 손곡리의 김복기.정완용.이재관.이은교 등이 거사를 결의하고 주민 수십 명을 규합하여 봉화시위를 전개했다.
부론면민들의 연속적인 만세운동으로 많은 참여자들이 일제에 의해 피체되어 탄압 받았지만 자주독립을 향한 그들의 의지는 강건했다.
기미년(1919)에 부론면민들이 보여준 자주독립을 향한 투쟁과 의지 표출은 항일독립만세운동이 원주권 전역으로 확산되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부론 독립만세기념비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1449-1 부론면사무소 앞 부론독립만세운동기념비를 찾아왔다.
부론독립만세기념비
부론독립만세기념비
건립취지문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울 때 자기 한 몸의 생명과 안위를 돌보지 않고 분연히 일어서서 자주독립을 외쳤던 선열들의 성스러운 피와 땀이 배어있는 이 곳에 그 날의 뜨거웠던 함성과 염원을 기리고자 이 비를 세운다.

2008년 11월 17일 원주시장 김기열
부론독립만세운동 유공자
노림리 김성수, 김일수, 정현기, 한돈우, 한민우, 한범우, 한태우
법천리 이근성, 이근원, 정우진, 지천복, 표광천
손곡리 김복기, 이은교, 이재관, 정완용

위의 기명된 유공자분들 중에 공훈록에서 찾을 수 없는 분들이 많다.
건립내역
건립 : 원주시
주관 : 부론독립만세운동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
후원 : 국가보훈처·광복회 항일독립운동원주기념사업회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 한기찬
위원 : 이원표 최문환 이낙영 이동교 표장배 진문환 송치호 곽후신 최무일 권승환 안태동 김관섭 이정화 김덕래 이민희 이준태 이장근 지종헌 송순이 이준학
부론면 항일독립운동사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선 우리 민족의 항일독립운동은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우리 원주가 차지하는 역할과 위상은 매우 큰 비중을 접하고 있었다.
강원도.경기도.충청북도와 인접한 부론면은 경제.교통.물류의 중심지로 이 지역민들의 현실의식과 민심은 늘 깨어있어 국권수호와 회복을 위한 항일독립운동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부론면 손곡리 출신인 이구채(李求采) 의병장은 원주에서 처음 봉기한 1895년 을미의병과 1907년 정미의병에서 크게 활약하여 132도 창의군의 주력으로 서울 진격작전을 감행하는 등 정미의병기의 투쟁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법천리 출신 정학주(丁學朱) 의병장은 1908년 유격부대를 구성하고 강원도.경기도.충청북도를 넘나들며 일본군 수비대를 끈질기게 타격하여 뛰어난 활약상을 펼쳤다. 이밖에도 많은 애국지사가 일제와 유격항전을 펼치며 국권수호를 위해 헌신했다.
이후 흥호리 출신 한기악(韓基岳)은 1919년 일본 동경의 독립만세운동에서 활약한 후 상해임시정부 수립과 신간회 창립에 업적을 남겼다.
이렇듯 부론면민들의 선각자적인 자주정신은 항일독립운동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