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현 묘

4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석곡리 산7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둘째딸 이란은 남편이 26세에 사거하고 40여 년간 시부모를 모시고 수절한 효열부로 2016년 졸하였다. 손자 동주 동화는 종원의 소생이고 증손 복열, 성열은 동주, 헌열, 영진은 동화 소생이다. 지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선양하고 만대에 전하기 위하여 양평군청의 지원을 받아 양평마을미의병 정신현창회 주관으로 양평의병묘역 내에 분묘를 조성하고 비석을 세우다.
서기 2018년 4월 일 양평문화원 양동분원장 최봉주 근찬
愛國志士 旌善全公 錫玄 之墓 配 全州李氏 祔左
(애국지사 정선전공 석현 지묘 배 전주이씨 부좌)
전석현 애국지사의 자는 우성이고 호는 석담이며 본관은 정선으로 시조 섭의 45세손으로 명조로 고려 공민왕때 삼중대광 안경공 전보문의 19세손이고, 조부는 희보 아버지는 한말 고종 때 내직으로 통정대부 돈령부 도정 공규이며 어머니는 숙부인 연안차씨이다. 지사는 서기 1883년 계미 12월 30일에 출생하시어 인근에 한학자로 알려졌으며, 강원도 횡성군 감천면 병지방에서 은거하다가 아버지 도정공과 가족을 데리고 양평군 양동면 석곡리로 이사하여 애국국민교육 차원에서 서당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며 국민계몽을 하였다. 서기 1919년 기미에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감격하여 상중임에도 양동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동년 4월 7일 양동면 사무소 앞에 3,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이다 지사는 일본헌병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고, 경성지방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 일제의 핍박이 자심하자 부해를 결심하여 무장독립투쟁의 요람인 신흥무관학교가 있는 만주국 목단강성에 정착하여 개척도 하고 독립군도 도우며 살아가는데 고난과 참경의 나날이었다. 이곳에서 장남 종원이 행방불명 되고 여식 간난이 병사하였으며 평생 고락을 함께 하던 부인 전주이씨마저 세상을 뜨니 고난과 형극의 길이었다. 서기 1945년 을유에 갈망하던 조국 광복을 맞이하여 석곡리로 환국하여 서당을 열고 한약방을 차려 후학을 양성하고 인술을 베풀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다. 서기 1961년 신축 5월 8일에 79세 장수로 영면하였다. 면장과 군수의 표창과 감사장을 받았으나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하다가 몰후 51년만인 2012년 8월에 종손녀 영주와 종손서 경주인 김성웅의 부단한 노력으로 국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장남 종원은 실종하고 장녀는 조졸하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