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 산25-1
- 탐방로그
- 정미의병 삼산리 전투터 표지석을 찾기 위해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 산25-1에 왔다. 전투 중에 희생된 숭고한 의병들의 넋을 기리고자 본 표지석이 건립되었다. 표지석이 건립되고 삼산리 전투지였던 해당 거리는 낮은 산자락 중간에 위치하며 현재는 마을 길인 도소리길이 개설되어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정미의병.삼산리 전투터(양동면) 표석
관리번호 : 양평-9
설립일자 : 2016년 12월
관리자 : 양평군
관리번호 : 양평-9
설립일자 : 2016년 12월
관리자 : 양평군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 산25-1 정미의병 항쟁지 삼산리 전투터 표지석을 찾았다.
정미의병.삼산리 전투터 표지석
정미의병.삼산리 전투터(丁未義兵.三山里 戰鬪址) - 양동면 삼산리 일원
1907년 일제에 의해 고종황제가 강제퇴우 되고 정미7조약체결과 군대가 해산되자 전국적으로 정미의병이 일어났다. 의병장 이인영은 13도창의군을 결성하여 서울진공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2천여 병력을 이끌고 와 본부를 삼산리에 두었다. 양동면일원에 5천 여 명의 의병이 집결하자 11월 7~8일 일본군 토벌대가 공격해와 격렬한 전투를 벌여 수많은 의병이 희생되었으니 이곳은 사생취의한 의병들의 넋이 살아 숨 쉬는 역사적 공간이다.
1907년 일제에 의해 고종황제가 강제퇴우 되고 정미7조약체결과 군대가 해산되자 전국적으로 정미의병이 일어났다. 의병장 이인영은 13도창의군을 결성하여 서울진공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2천여 병력을 이끌고 와 본부를 삼산리에 두었다. 양동면일원에 5천 여 명의 의병이 집결하자 11월 7~8일 일본군 토벌대가 공격해와 격렬한 전투를 벌여 수많은 의병이 희생되었으니 이곳은 사생취의한 의병들의 넋이 살아 숨 쉬는 역사적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