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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산10-4
- 탐방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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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에 위치한 박승하의 묘이다.
같은 장소에 박승하의 추모비가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바로 아래에는 지사님의 아드님 묘소가 있었다.
도로변에서 묘소로 걸어와야하는 길의 모습이다.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산10-4 애국지사 [박승하(박승복)]의 묘소를 찾았다.
저 위쪽에 묘비들이 보이는데 올라가는 길이 없다.
저 위쪽에 묘비들이 보이는데 올라가는 길이 없다.
다시 도로변으로 나가서 언덕을 올라왔다.
면장 박승복 3.1독립운동 추모비
추모문. 공의 자는 충백 1900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에서 출생하시어 유년기부터 영민하시며 신언서판이 출중한 준재로 3.1운동이 있었던 기미년 청농재학시에는 독립운동의 일역을 담당 활동하시다 옥고를 치루신 위국독립투사이시다. 해방후에는 초대와 3대에 걸쳐 10유년간 초평면민선면장으로 목민행정에 많은 업적을 남기시고 하세하시니 향년 72세이시고 이곳 상영후사록이 수장지지이다. 공은 반남박문 평도공 18세손 휘 일양의 장남으로 1910년에 강릉인 최인식공의 장녀 연애와 결혼 2남3녀를 두셨다. 선비께서는 원래 성품이 단아인자
하시고 상봉하솔 범절이 훌륭하셨으며 법도있는 가풍진작과 자녀육영에 주력하시어 가문의 내훈의 본이 되시다가 66년에 타계하시니 향년 67세이시고 걸위부우 합폄하시다. 공은 영년 3세부터 수학 진천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학하여 1년만으로 졸업 당년 17년에 청주농업학교에 입학한 수재이시다. 재학중 3.1독립운동에 투신 동년 3월 7일 청주장날 만세운동에 용약 그로인하여 6월형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복역하셨으며 즉시 출학당하셨다가 광복후 명예졸업장을 받으셨다. 공은 학생의 몸으로 분연히 항일운동에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선봉에 섰던 청농학생 항일구국투사 11명중 한분이시고 이는 1982년에 청농 교정에 건립된 학생독립운동 기념탑이 고증하는 바이다. 출옥후도 가진 고초를 무릅쓰고 향이레 강당을 설치 구국일념 민족정신교육에 정려하셨으며 해방후 공직 13년에 걸처 국리민복을 위한 애국충일한 지방행정에 여생을 바치셨다. 공은 효제충신이라는 신념 드높은 생애를 누리셨교 스스로 생의 의의를 바르게 체득하시고 이상과 목표를 세워 그를 위하여 평생 일관정진하심으로서 한 인생을 값있고 보람되게 영위하시다 이에 조상의 충효유풍과 선고의 청정고매한 인품 특히 애국애족의 근본으로 한 신념과 정열의 고귀한 생을 누리신 거룩한 행적이 자손들은 영원히 추모하오며 후손에게 물리기 위하여 건비수묘하옵고 모든 자손들은 존영앞에 업드려 명복을 기리기리 비나이다.
지사의 독립유공자 표창장과 지사의 좌우명 효제충신 애국애족을 아드님꼐세 비로서 세우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