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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산19
- 탐방로그
-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산 19 애국지사 윤기영의 묘를 찾았다. 매우 넓은 지번이라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다행스럽게 묘소 안내판이 바로 보였다. 윤기영 선생 묘소에는 묘비도 없고, 상석도 없다. 오로지 봉분이랑 안내판만이 존재했는데, 안내판이 없었더라면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산 19 애국지사 윤기영의 묘를 찾았다.
애국지사 윤기영 선생 묘지 안내판.
실제로는 300m가 남았지만 안내판에는 1Km로 되어있다.
애국지사 윤기영 선생 묘지 안내판.
실제로는 300m가 남았지만 안내판에는 1Km로 되어있다.
매우 넓은 지번이지만 다행스럽게 묘소 안내판이 바로 보였다.
애국지사 회당 윤응선의 묘소
윤응선 선생 묘소가 보이는 곳에서 오른쪽 저 수풀 뒤에 묘소가 보였다.
묘비도 없고, 상석도 없다. 안내판이 없었더라면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애국지사 윤기영 선생의 묘
애국지사 윤기영 선생의 묘
성명 : 윤기영(尹璣榮) / 생존기간 : 1871~1941 / 출생지역 : 경기도 양평 / 서훈 : 대통령 표창
1919년 3월 31일 강하면, 4월 1일 양서면, 4월 3일 옥천면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그는 망국의 통한을 가누지 못하고 있던 중 서울에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좌시할 수 없다며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 일로 인해 1919년 10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의 죄목으로 혹독한 고문과 태형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평생 병고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하였다. 후손으로 윤광선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도지사
성명 : 윤기영(尹璣榮) / 생존기간 : 1871~1941 / 출생지역 : 경기도 양평 / 서훈 : 대통령 표창
1919년 3월 31일 강하면, 4월 1일 양서면, 4월 3일 옥천면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그는 망국의 통한을 가누지 못하고 있던 중 서울에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좌시할 수 없다며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 일로 인해 1919년 10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의 죄목으로 혹독한 고문과 태형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평생 병고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하였다. 후손으로 윤광선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