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바위 동학기념공원, 동학농민혁명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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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 299
탐방로그
문바위 동학기념공원 동학농민혁명 기념비 근처에는 문암경로당 버스정류장이 있으며, 230m로, 도보로 3분 정도 소요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전국리사 류제구 사초 입석함
2013년 5월 20일 립
묘소 앞에서 보이는 처음 찾았던 김씨성씨의 묘소 방향의 사진이다.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 299 해월신사 최시형 선생의 대도소가 있었던 곳 문바위 동학기념공원을 찾았다.
문바위 동학기념공원 안내문 -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 일원
1894년 동학혁명 당시 해월 최시형 동학교 교주가 청산 한곡리 문바위 마을에 대도소(大都所)를 설치하고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곳이다. 1894년 9월 18일 이 부근에서 일본군의 침략과 조선 조정의 부패한 세력에 대항하여 전국 동학도에게 기포령(총동원령)을 내리면서 국가를 지키기 위하여 동학전쟁을 계획하고 총지휘한 역사적 장소이다. 1893년 10월 이래로 이곳 문바위에서 제자 의암 손병희와 구암 김연국 선생등 동학 수뇌부들을 포교.지도했다. 한 때 한곡리 일대에 수만 동학군이 집결했다고 전해온다. 그리고 최시형 선생이 살던 김성원 집과 문바위 바위벽에 동학군들의 이름을 새긴 글귀 등이 남아 있다. 문바위골에는 동학군의 훈련장과 해월 최시형 선생의 아들 최덕기(최봉주)의 묘소와 한국 동요의 선구자 정순철 모친인 최윤의 자취가 남아 있다. 또한 애뜻한 사랑이야기인 계화공주 전설이 깃든 장수바위 발자국, 동학전적지 등이 있는 청산 한곡리 일대는 동학혁명의 가장 중요한 사적지이다.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혁명 기념비 안내문

- 위치 :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 일원

.기념비 제작동기
힘차게 전진하는 옥천군 표현/동학혁명 횃불 형상화/개혁 민족운동 기념

한곡리는 동학혁명 당시 동학의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 선생이 청산 문바윗골에 대도소(大都所)를 두고, 전국의 동학도를 지휘하던 지역이다. 또한 1894년 9월 18일에는 일본군의 침략과 탐관오리에 대항하는 총기포령(총동원령)을 전국 동학도들에게 내리는 등, 동학농민혁명을 총지휘한 역사적 장소이다. 1893년 10월 이래로 이곳에서 제자 의암 손병희와 김연국 등 동학도들을 지도하였고, 이와 같은 힘으로 한때는 한곡리일대에 수만의 동학군이 집결했다고 전해온다. 이곳에는 해월 선생이 살던 집이 남아 잇고, 또 문바위에는 동학군들이 결의를 다지기 위해 새긴 이름 등이 남아 있다. 또 한곡리 일대와 문바윗골에는 동학군의 훈련장과 해월 선생의 아들 최덕기의 묘소, 딸 최윤(정순철 모친)의 자취, 전적지 등이 남아 있어, 이곳이 동학혁명의 가장 중요한 사적지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 큰 돌들이 문처럼 생겼다고 해서 문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동학군의 장수 이름들이 예전에는 새겨져있었다고 하는데 전혀 보이질 않는다.
안내판에 설명이 되어있는 각 유적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안내판이 없다.
위쪽으로 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가려고 한다.
동학역사 탐방길로 올라가 보았지만 아무런 안내판이 없다가, 차도가 끝나는 부근에 있는 안내도이다.

동학농민전쟁을 전후로 이곳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 밤재 동학길은 문바위마을에 이사한 해월 최시형 교주의 가르침을 받기위해 넘나들던 동학길이다. 1893년 늦겨울 해월 선생이 이곳에 머물자, 전국 동학교도 수만 명이 몰려와 한때 '작은 장안'으로 불렸다. 특히 갑오년인 1894년 문바위에 최시형 교주가 은거하며 9월 18일 인근에서 전국 동학교도 총동원령인 '재기포령'을 내려 왜적 타도와 탐관오리 숙청, 보국안민을 위해 동학농민전쟁을 총지휘하던 곳이다. 밤재 동학길에는 동학관련 유적으로 동학군이 휴식을 취했던 마당바위와 동학군 훈련장, 해월의 아들 최덕기 묘소가 있고 장수폭포에는 옥황상제의 딸인 계화공주와 용인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지는 장수발자국이 있다. 밤재계곡은 1894년 12월 중순 영동 용산 전투 후 후퇴하던 동학군과 관군이 치열하게 전투한 동학혁명 전적지이다.
그냥 내려가는 길에 마을주민을 만내서 알게 된 장수발자국으로 올라가는 길 입구
안내해주신 주민께서 이것이 장군의 발자국이라고 알려주신다.
그 위쪽에는 말이 누운 자리 표시가 있다고 알려주신다.
안내도에 표지된 해월신사의 아드님 묘소인줄 알았는데, 김씨성씨의 묘소였다.
마을 주민께서 해월신사 아들 최덕규의 묘소는 김씨성씨의 묘소 건너편이라고 알려주셨다.
김씨성씨의 묘소에서 건너편 인삼밭 위쪽에 보이는 해월신사 아드님 묘소이다. 줌으로 당겨보았지만 시간이 늦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경주최공 봉주(鳳柱)의 묘이다. 안내판에는 최덕기로 되어 있었다.
공은 해월신사의 자로서 갑오년 동학농민군과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서 병사로 졸하다.
그간 돌보는 이 없어 폐허된 묘를 전국동학농민 유족회 옥천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