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백운리 299-1
- 탐방로그
- 독립운동가 권태석 생가터 표지판, 독립운동가 박동희 생가터 표지판, 독립운동가 조동호 생가터 표지판은 같은 지역에 모여있으므로, 해당 지역에 방문 후 3명의 독립운동가의 생가터 표지판을 보고 싶으시다면, 박동희 > 권태석 > 조동호 순으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드리며, 총 거리는 약 600m로, 도보로 9분 정도 소요된다. 집은 소멸되고 터만 존재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독립운동가 조동호(1892~1954)
- 청산면 백운리 299번지 출생
- 여운형과 평생동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
1892년 이곳에서 출생해 1914년 평생 동지인 몽양 여운형 선생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1918년 여운형 등 6명과 함께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고 3.1만세운동을 기획했으며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모태가 된 신한청년당을 창당했다. 선생은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충청도의원과 국무위원으로 참여했으며, 독립신문 발간의 주역이기도 했다. 조선공산당 사건으로1928년 투옥되어 1932년까지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후 조선중앙일보를 인수, 여운형 선생을 사장으로 내세워 항일논설 등을 실었다. 1944년 비밀결사 건국동맹을, 8.15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다 여운형 선생 암살 후 활동을 접고, 신병치료를 하다 1954년 타계했다.
옥천문화원.옥천신문
- 청산면 백운리 299번지 출생
- 여운형과 평생동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
1892년 이곳에서 출생해 1914년 평생 동지인 몽양 여운형 선생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1918년 여운형 등 6명과 함께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고 3.1만세운동을 기획했으며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모태가 된 신한청년당을 창당했다. 선생은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충청도의원과 국무위원으로 참여했으며, 독립신문 발간의 주역이기도 했다. 조선공산당 사건으로1928년 투옥되어 1932년까지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후 조선중앙일보를 인수, 여운형 선생을 사장으로 내세워 항일논설 등을 실었다. 1944년 비밀결사 건국동맹을, 8.15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다 여운형 선생 암살 후 활동을 접고, 신병치료를 하다 1954년 타계했다.
옥천문화원.옥천신문
독립운동가 조동호 생가터 안내판을 찾아왔다
안내판은 옥천군 청산면 백운1길 7-2(백운리 299-1)에서 찾을 수 있었다.
독립운동가 조동호(1892~1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