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3.1독립운동 항일투쟁공훈종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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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화계리 산39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충남 홍성군 장곡면 화계리 산39에 있는 기미3.1독립운동 및 항일투쟁 공훈 종합비를 찾았다.
이 기념비는 홍성군 장곡면 화계리 출신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신 파평윤씨 네분(건국훈장 애국장 윤익중, 건국훈장 애족장 윤형중, 건국훈장 애족장 윤낙중(기순)등 3형제 애국지사와 그분들의 강질 헌국훈장 애족장 윤의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2001년 10월 26일 파평윤씨 화계종친회에서 건립한 것이다. 윤익중 선생은 1919년 중앙고보 시절 김상옥이 주도하던 혁신단에 가입 '혁신공보'를 발간하였는데, 주요 기사로는 국내외에서 취재되는 독립운동 전선의 소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논설 등을 게재하고 1회에 등사판 1천 부씩 찍어냈다. 1920년 3월 20일 구국민단 사건에 연루되어 피체되었으나, 10월 26일 예심 종결로 풀려났다. 1921년 김상옥이 주도하는 암살단에서 활약하다가 피체되어 같은 해 11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윤낙중(기순)선생은 경신고보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형중, 익중과 뜻을 같이하고 고향인 홍성군 작곡면에 내려와 구국 유지 인사와 인근 주민들에게 독립만세 시위의 취지를 설명하고 같이 참가할 것을 역설하였다. 맏형 윤형중, 당질 윤의석 등과 함께 1919년 4월 7일 장곡만세운동에 참가한 500여 명의 시위 군중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시위 행진으로 도산리에 이르러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를 습격하고 기둥등을 파괴하며 격렬한 시위를 계속하다가 체포되었다. 선생은 이해 10월 18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고, 맏형 윤형중은 동법 위반으로 징역 8월 형에 벌금 20원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당질 윤의석은 이해 5월 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았고, 8월 1일 경성 복심법원에 공소하여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았으며, 10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의열기
폭악무도한 일제의 침략으로 우리나라가 식민지화 되어갈때 우리 조국의 영걸 문숙공 윤권장군의 28대손 참봉 윤태병은 부유강직한 유학자로서 평소 애국정신이 투철하여 구국을 위한 항일독립운동을 적극적 후원하는 정신적 물질적 지주로서 그 공이 지대하였다.
슬하에 문무겸전한 3형제는 일가친척과 연합하여 역사적인 장곡면 기미3.1독립만세운동사건을 주도하여 홍성군내에서 가장 치열하게 성공적으로 감행한 창의적 큰 공훈을 이룩하였으며 3형제중 윤익중은 연이어지는 항일투쟁에 혁혁한 공훈을 남겼다. 우리는 영구불멸의 그 숭고한 공훈과 유방에 대하여 삼가 기리고 윌의 민족정기와 애국정신 함양에 귀감이 될수 있는 산 교육장으로 승화시키고저 문중일동이 선열영전에 엄숙히 종합비명을 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