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중협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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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업성동 47-1
탐방로그
충청남도 천안에 위치한 유중협의 묘이다. 같은 장소에 유중협의 추모비가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獨立鬪爭 義士 興陽柳公 鼎浩 之墓(독립투쟁 의사 흥양유공 중협 지묘)
충남 천안시 서북구 업성동 102-16 번영로 입구 도로변 애국지사 유중협 묘소 안내판을 찾았다.
애국지사 유중협 선생 묘 / 묘소 입구 800m →
묘역의 GPS상의 주소는 천안시 서북구 업성동 47-1이다.
獨立鬪士 柳重協 先生 追慕碑(독립투사 유중협 선생 추모비)
선생은 고흥(흥양) 유씨로 고려 조 명현이신 고흥부원군 영밀공 청신 선생의 19대손이시다.
선생의 휘는 중협이시며 서기 1891년(신묘) 천안에서 탄생하시었고 배 강릉김씨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신 선생은 천품이 온순하시며 강직하시고 절의를 숭엄하신 기품이 범인을 크게 넘으시었다.
선생은 서기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라는 미명 하에 체결된 치욕적인 한일합방을 분개하시어 국권을 회복할 목적으로 서기 1913년(계축)에 비밀결사인 대한광복단에 자진 입단하시고 광복운동을 전개 중 대구의 박상진 김한종 선생 등과 합류하여 광복회라 개칭한 후 서기 1916년(병진)에는 노백린 김좌진 장군 외 수백 동지들과 광복운동을 위한 새로운 조직과 활동방안을 협의한 바 광복회를 대한광복회로 개칭 「오등은 대
한독립 국권 광복을 위하여 사로서 결의하고 구적일본을 완전구축하기로 천지신명에게 서함」이라 혈맹의 결의를 하다.
선생은 국권 광복활동 방법에 있어 충청지방을 중심으로 성달영 장두환 외 수백명 동지와 국내에서 광복투쟁을 하시었으며 밖으로는 중국 등지에 노백린 선생과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과 제휴하여 투쟁은 국내외로 전개하시면서 왜경의 핍박과 빈고에 시달리는 가족을 잊으신 채 풍우풍설 속에서 일본 구적 및 친일 흉도들과 싸우시던 중 불행이도 서기 1918년 1월 체포되시어 영어의 몸으로 공주형무소에서 각 형무소로 전전하시었으니 당시 같이 체포된 동지 성달영 장두환 선생 등 무려 70여 선생에 이르렀다.
선생은 잔인무도한 고문과 치욕 속에서도 의지을 굽히지 않으신 채 복역을 마치시고 출옥하시었으나 왜경의 가혹한 고문으로 인한 지병으로 서기 1959년 8월 24일 향년 68세를 일기로 한 많은 생애를 마치시다.
선생의 광복활동은 본래 비밀리에 이루어졌던만큼 현전하는 기록 또는 전언은 영산의 일각에 불과할 때 혁혁한 업적을 다 살피지 못하는 애석한 마음 금할 길 없으며 돌이켜 보건데
선생의 광복운동은 바로 기미 3.1운동에 효시가 되었으며 항일투쟁은 바로 광복의 저력이 되었으나
선생의 높은 충의와 대절은 자유와 자주를 갈망하는 이 민족불굴의 의지의 표상이며 나아가 불멸의 인류정의의 구현으로서
선생의 애국충절의 뜻을 남기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우노라.
서기 1981년 3월 일 천안시장 김홍식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