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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 252
- 탐방로그
-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 252에 위치한 유관순 사적지를 찾았다. 사적지 내에는 유관순의 시비, 초혼묘, 봉화탑이 함께 위치해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봉안(奉安)
순국 69주 1989년 10월 12일
건립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순국 69주 1989년 10월 12일
건립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봉화탑은 초혼묘에서 또 200여 미터를 올라가야 했다.
유관순 열사 봉화지(柳寬順烈士 烽火址) - 사적 제230호 / 소재지 : 천안시 병천면 탑원리 산31
이곳은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1919년 4월 1일 거사를 각지에 알리기 위해 3월 31일 밤에 봉화를 올렸던 곳이다. 당시 이 봉화를 신호로 목천(木川), 천안(天安), 안성(安城), 진천(鎭川), 연기(燕岐), 청주(淸州) 등 각지의 산봉우리 24곳에서도 봉화가 올려졌다. 거사 당일은 이른 아침부터 그의 동지들이 아우내 장터로 모여 감춰두었던 태극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정오에는 유관순열사가 장터 높은 곳에 올라가 독립을 호소하는 비장한 연설을 하자 수많은 군중들이 일제히 독립만세를 불렀다.
본 유적지를 길이 보존하고, 숭고한 뜻을 후세(後世)에 널리 알리고자 1977년 봉화대와 봉화탑을 건립하였다. 매년 2월 말일 봉화제를 개최하여 유관순열사와 만세운동을 기념한다.
이곳은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1919년 4월 1일 거사를 각지에 알리기 위해 3월 31일 밤에 봉화를 올렸던 곳이다. 당시 이 봉화를 신호로 목천(木川), 천안(天安), 안성(安城), 진천(鎭川), 연기(燕岐), 청주(淸州) 등 각지의 산봉우리 24곳에서도 봉화가 올려졌다. 거사 당일은 이른 아침부터 그의 동지들이 아우내 장터로 모여 감춰두었던 태극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정오에는 유관순열사가 장터 높은 곳에 올라가 독립을 호소하는 비장한 연설을 하자 수많은 군중들이 일제히 독립만세를 불렀다.
본 유적지를 길이 보존하고, 숭고한 뜻을 후세(後世)에 널리 알리고자 1977년 봉화대와 봉화탑을 건립하였다. 매년 2월 말일 봉화제를 개최하여 유관순열사와 만세운동을 기념한다.
류 관순 열사 봉화탑 찬가
정의의 상징 이 나라의 딸 류 관순
그대 매봉에 올라 높이 들었던 봉화
여섯 고을 스물 넷 산봉우리마다
내일을 약속하며 같이 타오른 봉화들
이 길로 가야 자유가 있고
이 길로 가야 평화가 있고
오직 이 길만이 사는 길이라고
애타고 일러준 거룩한 봉화였네
그대 손에 들렸던 그 정열의 봉화
민족의 끓는 피로써 기름을 삼았기에
악마의 풍우 속에서도 꺼질 리 없었고
오늘은 역사의 제단에 이리도 화사로이
무궁화 꽃송이처럼 피어 오른 봉화라
영원히 겨레의 가슴 가슴에
타오르리라 타오르리라
일천구백칠십칠년 칠원 이은상 글 김기승 씀
정의의 상징 이 나라의 딸 류 관순
그대 매봉에 올라 높이 들었던 봉화
여섯 고을 스물 넷 산봉우리마다
내일을 약속하며 같이 타오른 봉화들
이 길로 가야 자유가 있고
이 길로 가야 평화가 있고
오직 이 길만이 사는 길이라고
애타고 일러준 거룩한 봉화였네
그대 손에 들렸던 그 정열의 봉화
민족의 끓는 피로써 기름을 삼았기에
악마의 풍우 속에서도 꺼질 리 없었고
오늘은 역사의 제단에 이리도 화사로이
무궁화 꽃송이처럼 피어 오른 봉화라
영원히 겨레의 가슴 가슴에
타오르리라 타오르리라
일천구백칠십칠년 칠원 이은상 글 김기승 씀
유관순 열사 사우를 찾았다.
태양이 타오르고 달이 차오를 때
마침내 여물지도 못한 인동초여
흔들림 없던 불꽃의 외침은 사라지지 않았다
매봉의 굵은 횃불이 하늘로 치솟았다
겨레와 민족의 앞날을 밝혀주는
평화의 무기가 상천리에 굽이쳤다
우리는 들었는가 우리는 보았는가
정의와 눈물로써 스스로 태웠던
백의의 곱디 곱던 그네들의 아우성을
분노와 울분으로 일어선 봉우리를
환희와 감격으로 상기된 강줄기를
우리는 들었는가 우리는 보았는가
천안여자 고등학교 박예숙 지음 글씨 박영옥
초혼묘로 올라가는 길에는 많은 시비들이 서 있었다.
마침내 여물지도 못한 인동초여
흔들림 없던 불꽃의 외침은 사라지지 않았다
매봉의 굵은 횃불이 하늘로 치솟았다
겨레와 민족의 앞날을 밝혀주는
평화의 무기가 상천리에 굽이쳤다
우리는 들었는가 우리는 보았는가
정의와 눈물로써 스스로 태웠던
백의의 곱디 곱던 그네들의 아우성을
분노와 울분으로 일어선 봉우리를
환희와 감격으로 상기된 강줄기를
우리는 들었는가 우리는 보았는가
천안여자 고등학교 박예숙 지음 글씨 박영옥
초혼묘로 올라가는 길에는 많은 시비들이 서 있었다.
그대
꺽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이 곳에 우뚝섰다.
아!
미치도록 그리운 조국의 독립으로
이 땅의 해맑은 웃음 이루려
씨 되어 흩날리나니.
마침내 그대는
통일의 배꽃으로 피어나소서.
이화여고 김희정 짓고 김영기 씀
꺽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이 곳에 우뚝섰다.
아!
미치도록 그리운 조국의 독립으로
이 땅의 해맑은 웃음 이루려
씨 되어 흩날리나니.
마침내 그대는
통일의 배꽃으로 피어나소서.
이화여고 김희정 짓고 김영기 씀
만세의 굽이 넘어
몸 사르온 불꽃의 외침은
못다 할 여울이 되고
그대의 장한 뜻 빛의 울림으로
몇 만 겁을 내달아
겨레 이리도 푸르른데
당신 고이 아낀 나라 불멸의 탑 위에
그리움은 바람 되어
그대 곁을 머무네
크신 사랑 바치올 제 빛이라 하오면
꽃잎처럼 스러진 당신 말씀을
잠잠히 잠잠히
줍고 살겠네
복자여고 김명희 짓고 글씨 박영옥
몸 사르온 불꽃의 외침은
못다 할 여울이 되고
그대의 장한 뜻 빛의 울림으로
몇 만 겁을 내달아
겨레 이리도 푸르른데
당신 고이 아낀 나라 불멸의 탑 위에
그리움은 바람 되어
그대 곁을 머무네
크신 사랑 바치올 제 빛이라 하오면
꽃잎처럼 스러진 당신 말씀을
잠잠히 잠잠히
줍고 살겠네
복자여고 김명희 짓고 글씨 박영옥
그저 들꽃으로 피길 원했읍니다
진정 내 조국의 땅 속을 흐르는 물기로
가슴을 채우고
진정 내 조국의 땅 위에 부는 바람으로
모질게 일어서는
들꽃으로 피길 원했읍니다
이화여고 이승희 짓고 연호 박영옥 쓰다
진정 내 조국의 땅 속을 흐르는 물기로
가슴을 채우고
진정 내 조국의 땅 위에 부는 바람으로
모질게 일어서는
들꽃으로 피길 원했읍니다
이화여고 이승희 짓고 연호 박영옥 쓰다
나는 보았소
당신의 울음을
푸른 하늘 위
진한 아픔의 소용돌이를
나는 들었고
당신의 외침을
푸른 역사를 지키며
터트렸던 한의 진서리를
아! 민족의 가슴을
울려버린
피 맺힌 그 발자취
이화여고 이명희 짓고 김영기 씀
당신의 울음을
푸른 하늘 위
진한 아픔의 소용돌이를
나는 들었고
당신의 외침을
푸른 역사를 지키며
터트렸던 한의 진서리를
아! 민족의 가슴을
울려버린
피 맺힌 그 발자취
이화여고 이명희 짓고 김영기 씀
아 그날이던가
북극성의 빛이 발하기 시작하던 날이
아 그날이던가
아오내를 팡명으로 비춰주신 것은
아 그날이던가
차디찬 창살틈으로 서럽도록 기도하신 것은
이화여고 이흥순 짓고 연호 박영옥 쓰다
북극성의 빛이 발하기 시작하던 날이
아 그날이던가
아오내를 팡명으로 비춰주신 것은
아 그날이던가
차디찬 창살틈으로 서럽도록 기도하신 것은
이화여고 이흥순 짓고 연호 박영옥 쓰다
임의 밟으신 길목 접어들며는
진달래 핏빛 붉어 온 누리 봄이 오고
소나기 한 허리에
폭염은 시들었네
임이여
조국의 영광 위에
햇살 같이 깃드소서
이화여고 최세라 짓고 박영옥 씀
진달래 핏빛 붉어 온 누리 봄이 오고
소나기 한 허리에
폭염은 시들었네
임이여
조국의 영광 위에
햇살 같이 깃드소서
이화여고 최세라 짓고 박영옥 씀
해마다 피어나는 이 산하의 꽃보라는
핏빛 영혼을 상기하기 위함인가!
시름으로 여윈 조국의 대지 위에
꽃잎처럼 스러진 짧은 젊음이여!
그대여 한 번 죽어 영원히 살리라.
이화여고 김영기 짓고 박영옥 씀
핏빛 영혼을 상기하기 위함인가!
시름으로 여윈 조국의 대지 위에
꽃잎처럼 스러진 짧은 젊음이여!
그대여 한 번 죽어 영원히 살리라.
이화여고 김영기 짓고 박영옥 씀
역사의 함성이
천둥처럼 터졌을 때
피로 뿌린 애국의 씨앗
여기 이렇게 푸르리니
온 계절이 다하도록
꽃이 되어 피리라
이화여고 윤수진 짓고 박영옥 쓰다
천둥처럼 터졌을 때
피로 뿌린 애국의 씨앗
여기 이렇게 푸르리니
온 계절이 다하도록
꽃이 되어 피리라
이화여고 윤수진 짓고 박영옥 쓰다
겨레의 응어리 속에 피어오른
민족의 혼으로
민족의 눈물 속에서 영롱했던
빛의 영광으로
심오한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흔들리지 않는 향기로서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이화여고 정호식 짓고 연호 박영옥 씀
민족의 혼으로
민족의 눈물 속에서 영롱했던
빛의 영광으로
심오한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흔들리지 않는 향기로서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이화여고 정호식 짓고 연호 박영옥 씀
불사른 만세 함성 오늘도
흰 옷 입은 장터 아오내에
메아리 쳐 의로운 넔 돌이
되어 번영의 조국을 받치네
목천고 류정자 짓다 글씨 김영기
흰 옷 입은 장터 아오내에
메아리 쳐 의로운 넔 돌이
되어 번영의 조국을 받치네
목천고 류정자 짓다 글씨 김영기
지금도
3월의 하늘에는
태양처럼 불타는
류관순 열사의 민족혼이
뜨겁게 숨쉰다
독립 독립을 되찾기 위해
얼어붙은 산하(山河)에
횃불을 높이 켜 들다
병천고 교사 이석구 짓고 김영기 씀
3월의 하늘에는
태양처럼 불타는
류관순 열사의 민족혼이
뜨겁게 숨쉰다
독립 독립을 되찾기 위해
얼어붙은 산하(山河)에
횃불을 높이 켜 들다
병천고 교사 이석구 짓고 김영기 씀
한껏 벌린 두 팔에
바람 벽 같은 조국을 끌어안고
흰옷 섶의 무리 앞에
다문 입술로 서신 님
님의 외침 한 조각이
못내 가슴에 남아
꽃잎 새로 눈물만 비쳤더이다
이화여고 홍인숙 짓고 박영옥 씀
바람 벽 같은 조국을 끌어안고
흰옷 섶의 무리 앞에
다문 입술로 서신 님
님의 외침 한 조각이
못내 가슴에 남아
꽃잎 새로 눈물만 비쳤더이다
이화여고 홍인숙 짓고 박영옥 씀
청자가 곱다 한들 임처럼 고을까
하늘이 높다 한들 임의 뜻만큼 높을까
가시밭 길 푸르른 길 임의 길을 따르리
목천고 주아영 짓다 글씨 김영기
하늘이 높다 한들 임의 뜻만큼 높을까
가시밭 길 푸르른 길 임의 길을 따르리
목천고 주아영 짓다 글씨 김영기
하나의 꽃잎은 천공을 쪼개어
우리의 하늘을 파랗게 하였고
하나의 꽃잎은 함께 하여서
우리를 이렇듯 자유롭게 하였고
그리고 한 꽃잎은 해마다 피어서
언니의 만세소리를 울립니다
이화여고 이영숙 짓고 김영기 씀
우리의 하늘을 파랗게 하였고
하나의 꽃잎은 함께 하여서
우리를 이렇듯 자유롭게 하였고
그리고 한 꽃잎은 해마다 피어서
언니의 만세소리를 울립니다
이화여고 이영숙 짓고 김영기 씀
역경 속에서의 이슬 빛은
영원이 영롱하리니
그 빛을 발할 제
떨어지는 이슬은 섧지 않으리라
이화여고 김정은 짓고 박영옥 씀
영원이 영롱하리니
그 빛을 발할 제
떨어지는 이슬은 섧지 않으리라
이화여고 김정은 짓고 박영옥 씀
푸른 하늘을 사랑하여
영원히 마르지 않는
한 방울의 이슬이 되신 그대
겨레의 정기를 온몸으로 이어
한 줄기 빛이 되신 그대
그대의 영혼 사르며
온 누리에 자유의 빛 찬연하리라
이화여고 이현 짓고 박영옥 씀
영원히 마르지 않는
한 방울의 이슬이 되신 그대
겨레의 정기를 온몸으로 이어
한 줄기 빛이 되신 그대
그대의 영혼 사르며
온 누리에 자유의 빛 찬연하리라
이화여고 이현 짓고 박영옥 씀
겨레 위하는 오직 한 마음만이
이 계단 길을 오르시며
한 점 사사로움도 없었다
후인들이여 머리 숙여
그 뜻을 가슴에 새기소서
병천고등학교 교사 김용우 짓고 김영기 씀
이 계단 길을 오르시며
한 점 사사로움도 없었다
후인들이여 머리 숙여
그 뜻을 가슴에 새기소서
병천고등학교 교사 김용우 짓고 김영기 씀
온몸 녹아들며 붉은 피 흘리었던
순결한 촛불 타고 있으니
자유와 사랑과 평화의 의지는
님 닮은 배꽃의 향기되어
영원히 피어나리라
이화여고 안상경 짓고 김영기 씀
순결한 촛불 타고 있으니
자유와 사랑과 평화의 의지는
님 닮은 배꽃의 향기되어
영원히 피어나리라
이화여고 안상경 짓고 김영기 씀
이 몸이 죽어서
한 줌의 흙이 되어도
이 나라 독립된다면
하시던 당신
당신의 불굴의 의지로
이 땅의 무궁화는 영원하리
이화여고 김금미 짓고 김영기 씀
한 줌의 흙이 되어도
이 나라 독립된다면
하시던 당신
당신의 불굴의 의지로
이 땅의 무궁화는 영원하리
이화여고 김금미 짓고 김영기 씀
하얗고 연약한 작은 꽃
찬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시들지 않고
만 사람이 보게 하네
이화여고 김혜석 짓고 박영옥 쓰다
찬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시들지 않고
만 사람이 보게 하네
이화여고 김혜석 짓고 박영옥 쓰다
1919년 3월 1일 정오
2천만 동포와 함께 타오르던
19세 꽃봉오리
바로 나라 잃은 설움
피 맺혀 외치던 유관순이었다
그 날의 터질 듯한 외침
이제는 사라지고
고요히 이 곳에 잠들었으나
그 넋은 등불되어 영원히 빛나리라
이화여고 최진하 짓고 연호 박영옥 쓰다
2천만 동포와 함께 타오르던
19세 꽃봉오리
바로 나라 잃은 설움
피 맺혀 외치던 유관순이었다
그 날의 터질 듯한 외침
이제는 사라지고
고요히 이 곳에 잠들었으나
그 넋은 등불되어 영원히 빛나리라
이화여고 최진하 짓고 연호 박영옥 쓰다
피 끓는 외침은
창공을 가르고
가냘픈 소녀의 눈물은
꽃잎 되어 흩어진다
이화여고 주미애 짓고 김영기 씀
창공을 가르고
가냘픈 소녀의 눈물은
꽃잎 되어 흩어진다
이화여고 주미애 짓고 김영기 씀
거칠은 이 땅에
외로운 들꽃으로 피어나
굽히지 않는 기상으로
이 나라의
눈부신 아침을 열었도다
이화여고 허민림 짓고 김영기 쓰다
외로운 들꽃으로 피어나
굽히지 않는 기상으로
이 나라의
눈부신 아침을 열었도다
이화여고 허민림 짓고 김영기 쓰다
초혼묘(招魂墓)는 돌아가신 분의 사체가 발견되지 않거나 매장 장소를 알 수 없는 경우 혼을 불러 묘를 쓰는 경우를 말한다.
유관순 열사 초혼묘(柳寬順烈士 招魂墓) - 소재지 : 천안시 병천면 탑원리 산 31-2
초혼묘는 유관순(1902-1920) 열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의 5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이소제이다. 이화학당에 다니던 중 서울의 3.1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1919년 4월 1일 3천 여 군중이 참여한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운동인 아우내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경성복심법원 최종 판결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 끊임없는 옥중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갖은 폭행과 고문에 못이겨 1920년 9월 28일 순국하였다. 유관순열사는 이화학당 주선으로 이태원공동묘지에 안장하였으나 일제의 의해 열사의 유택은 흔적없이 망실되었다. 이에 열사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1989년 10월 12일 초혼묘를 봉안하였다.
초혼묘는 유관순(1902-1920) 열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의 5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이소제이다. 이화학당에 다니던 중 서울의 3.1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1919년 4월 1일 3천 여 군중이 참여한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운동인 아우내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경성복심법원 최종 판결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 끊임없는 옥중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갖은 폭행과 고문에 못이겨 1920년 9월 28일 순국하였다. 유관순열사는 이화학당 주선으로 이태원공동묘지에 안장하였으나 일제의 의해 열사의 유택은 흔적없이 망실되었다. 이에 열사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1989년 10월 12일 초혼묘를 봉안하였다.
소녀 유관순 열사의 기원
오오 하나님이시여 이제 시간이 임박하였습니다. 원수 왜(倭)를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 민족의 행복한 땅이 되게 하소서. 주여 같이 하시고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1919년 3월 31일(음력 2월 그믐) 매봉에서 기도하며
오오 하나님이시여 이제 시간이 임박하였습니다. 원수 왜(倭)를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 민족의 행복한 땅이 되게 하소서. 주여 같이 하시고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1919년 3월 31일(음력 2월 그믐) 매봉에서 기도하며
어록문(語録文)
나는 대한사람이다. 우리나라를 위해 독립만세를 부른 것도 죄가 되느냐! 너희들은 나에게 죄를 줄 권리가 없고 나는 너희 왜놈들에게 재판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재판을 거부하며)
선생님! 저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칠 각오를 했습니다. 2천만 동포의 십분의 일만 순국할 결심을 하면 독립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박인덕 선생님에게...옥중에서)
나는 대한사람이다. 우리나라를 위해 독립만세를 부른 것도 죄가 되느냐! 너희들은 나에게 죄를 줄 권리가 없고 나는 너희 왜놈들에게 재판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재판을 거부하며)
선생님! 저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칠 각오를 했습니다. 2천만 동포의 십분의 일만 순국할 결심을 하면 독립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박인덕 선생님에게...옥중에서)
열사의 관향(貫鄕)은 고흥(高興)이며 성은 유(柳)씨이다. 이곳 아우내 기미독립만세운동 의거에서 순국하신 유중권(柳重權) 선생의 5남매 중 둘째딸이며 어머니는 이소제(李少悌) 여사이다. 1902년 12월 16일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났으며 이화학당 학생의 몸으로 서울 3.1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고향에 돌아와 아우내 기미독립만세운동 주역으로 선봉에서 강렬한 항쟁을 전개했다.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무거운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온갖 고문과 악형 끝에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항거를 거듭했다. 1920년 9월 28일 '너희들은 반드시 망하고야 만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순국하시니 고금에 유례없는 구국의 독립투쟁 열사이시다. 잔인무도한 왜(倭) 관헌에 의하여 시신과 묘소마저 흔적없이 파헤쳐진 채 오늘에 이르렀다. 열사의 순국 69주기와 3.1독립선언 70주년을 맞이하여 의거의 현장 이곳에 겨레의 이름으로 정성을 모아 초혼묘를 봉안하고 고이 잠드시기를 삼가 비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