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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1112
- 탐방로그
- 이재천, 이재현 형제 추모상을 찾기 위해 경기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1112 자유공원에 왔다. 동상을 가운데로 두고 형제의 일생을 새긴 비석, 그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비석, 이재현 지사의 어록을 새긴 비석이 둘러싸고 있다. 서로 손을 쥐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형제의 상을 바라보면 형님이신 이재천 선생은 젊은 청년인데 반해 동생이신 이재현 선생은 노신사의 모습이어서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두 형제가 일평생 함께한 애국정신을 느낄 수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안양지역 출신의 항일 애국지사 우봉(牛峰) 이재천, 해평(海平) 이재현 형제 추모상이다.
이재천 지사 이재현 지사
항일애국지사 해평(海平) 이재현
1917.2.2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에서 출생
1919 망명 독립지사 부친 이용환을 따라 형 재천과 중국 상해로 감
1929 중국 상해 한인 인성소학교 졸업
1934 대하민국 임시정부 특별훈련반(남경) 입대
1935 김구 선생의 특명으로 대학내의 한국인 포섭 유인 공작임무를 띄고 광동성 중산대학에 파견 안우생(Eppin) 선생에게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 사사
1936 김구가 주도하던 한국국민당 당원으로 남경에서 활동
1937 상해 지하공작을 위해 홍콩에 파견 활동 광동성 중산대학 2학년 중퇴
1939 중화민국 장개석의 인준과 김구 선생 지도하에 김인(김구의 장남)등 30여명과 중경에서 한국청년전자공작대를 조직 공작조장으로 활동
1940 중화민국 중앙간부훈련단 제4단 한국청년특별반 수료 소위 임관
1940 한국청년전지공작대 1분대장으로서 중화민국 제34군단 태행산 유격대 정훈부대에 배치 태행산전투참전, 적후(敵後)공작
1940 광복군 제2지대 창설 간부요원
1944-45 광복군제2지대 한미합동 OSS(미국방성전략정보처) 훈련 통역, 무선 조교
1945.8 광복군 국내정진군 낙하산부대 제2조장(지리산담당)
1945.10 광복군 국내정진군 북평판사처주임(교포민정 수습 및 국내송환 일본군내 한국국적 병사인수)
1946.6 조국 대한민국으로 환국, 주한미군정청 외무처 3등영사
1947 민족청년단 서무과장
1951 한미합동 미군사고문단 JSCK부대 서해지구 정보대장(6.25당시 서해 대화도에서 대북 유격전 및 첩보전 수행)
1969 「에스-국어사전」발행
1983 「국어-에스사전」발행. (사)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회장
1985 세게에스페란토협회 27번째 명예위원으로 선출
1991 제7대 한국광복군동지회장 역임
1998.2.25 09:00경 석수2동 럭키아파트 자택에서 서거
1997.2.26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 205호에 영면
1963.3.1 건국공로훈장 독립장 수훈
가족 : 미망인 김 숙 여사와 2남 3녀(형진, 명진, 여진, 혜진, 미진)
1917.2.2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에서 출생
1919 망명 독립지사 부친 이용환을 따라 형 재천과 중국 상해로 감
1929 중국 상해 한인 인성소학교 졸업
1934 대하민국 임시정부 특별훈련반(남경) 입대
1935 김구 선생의 특명으로 대학내의 한국인 포섭 유인 공작임무를 띄고 광동성 중산대학에 파견 안우생(Eppin) 선생에게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 사사
1936 김구가 주도하던 한국국민당 당원으로 남경에서 활동
1937 상해 지하공작을 위해 홍콩에 파견 활동 광동성 중산대학 2학년 중퇴
1939 중화민국 장개석의 인준과 김구 선생 지도하에 김인(김구의 장남)등 30여명과 중경에서 한국청년전자공작대를 조직 공작조장으로 활동
1940 중화민국 중앙간부훈련단 제4단 한국청년특별반 수료 소위 임관
1940 한국청년전지공작대 1분대장으로서 중화민국 제34군단 태행산 유격대 정훈부대에 배치 태행산전투참전, 적후(敵後)공작
1940 광복군 제2지대 창설 간부요원
1944-45 광복군제2지대 한미합동 OSS(미국방성전략정보처) 훈련 통역, 무선 조교
1945.8 광복군 국내정진군 낙하산부대 제2조장(지리산담당)
1945.10 광복군 국내정진군 북평판사처주임(교포민정 수습 및 국내송환 일본군내 한국국적 병사인수)
1946.6 조국 대한민국으로 환국, 주한미군정청 외무처 3등영사
1947 민족청년단 서무과장
1951 한미합동 미군사고문단 JSCK부대 서해지구 정보대장(6.25당시 서해 대화도에서 대북 유격전 및 첩보전 수행)
1969 「에스-국어사전」발행
1983 「국어-에스사전」발행. (사)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회장
1985 세게에스페란토협회 27번째 명예위원으로 선출
1991 제7대 한국광복군동지회장 역임
1998.2.25 09:00경 석수2동 럭키아파트 자택에서 서거
1997.2.26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 205호에 영면
1963.3.1 건국공로훈장 독립장 수훈
가족 : 미망인 김 숙 여사와 2남 3녀(형진, 명진, 여진, 혜진, 미진)
항일 애국지사 우봉(牛峰) 이재천
1913.5.10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에서 출생
1919 망명 독립지사 부친 이용환을 따라 동생 재현과 중국 상해로 감
1930 임정 국무위원 조소앙 선생 지도하에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화랑사를 조직, 기관지 「화랑보」를 발행 상해 교포들에게 애국사상 고취
1931 김구 선생 지도하에 상해 소년동맹조직위원장(단원 약200명)에 취임 무력항일투쟁 전개 월간지 「새싹」을 발간하여 상해 및 조선내각지로 발송. 3.1절에는 '3.1기념일을 경축함'이란 격문 700~800매를 상해에 배포하고 조선으로 발송
1932 상해 중국가 침례예배당에서 거행된 8.29기념식에서 연설(한일합방 경술 국치일)
1935 중앙군관학교 졸업
1935.10 임시정부의 밀명을 받고 인천으로 입국 중 일본경찰에 체포
1936.2.21 김구일파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선고
1936.2.28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1941.2.26~2000.12 일제가 패망시 버리고 간 수형기록표에 5년 만기 복역 기록이 있으나 행방불명됨. 일본경찰 자료 공개거부로 대한민국 정부는 고문에 의한 옥사로 추정. 사망일자 확인불가 및 시신이 없어 순국선열로 위패조차 모실 수 없었음
2000.12.10 동작동 국립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위패 봉안
1963.3.1 대통령표창(건국공로) 추서
1991.8.15 건국공로훈장 애국장 추서
가족 : 직계 없음
1913.5.10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에서 출생
1919 망명 독립지사 부친 이용환을 따라 동생 재현과 중국 상해로 감
1930 임정 국무위원 조소앙 선생 지도하에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화랑사를 조직, 기관지 「화랑보」를 발행 상해 교포들에게 애국사상 고취
1931 김구 선생 지도하에 상해 소년동맹조직위원장(단원 약200명)에 취임 무력항일투쟁 전개 월간지 「새싹」을 발간하여 상해 및 조선내각지로 발송. 3.1절에는 '3.1기념일을 경축함'이란 격문 700~800매를 상해에 배포하고 조선으로 발송
1932 상해 중국가 침례예배당에서 거행된 8.29기념식에서 연설(한일합방 경술 국치일)
1935 중앙군관학교 졸업
1935.10 임시정부의 밀명을 받고 인천으로 입국 중 일본경찰에 체포
1936.2.21 김구일파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선고
1936.2.28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1941.2.26~2000.12 일제가 패망시 버리고 간 수형기록표에 5년 만기 복역 기록이 있으나 행방불명됨. 일본경찰 자료 공개거부로 대한민국 정부는 고문에 의한 옥사로 추정. 사망일자 확인불가 및 시신이 없어 순국선열로 위패조차 모실 수 없었음
2000.12.10 동작동 국립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위패 봉안
1963.3.1 대통령표창(건국공로) 추서
1991.8.15 건국공로훈장 애국장 추서
가족 : 직계 없음
우봉(牛峰)과 해평(海平)을 그리며
강 옆 비옥한 땅에 메마른 풀만 돋아나기에
마음을 풀어 강물에 적셨더니 그리움만 묻어납니다.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우봉(牛峰)과 해평(海平)의 인생이 흘러갑니다.
치떨리던 일제 36년의 세월을 온 몸 핏덩이 되어 견디어내던
결의에 차던 두 형제의 삶이 흘러갑니다.
굴욕의 욕사 속에서 모진 고문을 온 마음으로 끌어안은
우봉(牛峰)의 스물 일곱 해 불꽃같던 인생이 흘러갑니다.
그 순결했던 정신이 흘러갑니다.
조국의 생명을 바칠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우리의 영혼을 울리던 해평(海平)의 말씀이 흘러갑니다.
모든 살아 있는 자들이 살아 있음으로 해서 즐거움을 삼음에도
살아 있는 자로서 죽음을 즐거움으로 삼았던 영혼의 사랑이 흘러갑니다.
내 마음의 강으로 흘러갑니다.
메마르고 갈라진 우리들의 마음으로 흘러옵니다.
메마른 이 땅을 넘어 망각의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잊었던 당신의 삶을 마음 깊이 새기며 이제야 가까스로 당신 앞에 섭니다.
일제 36년 길었던 치욕의 역사, 친일의 역사, 대립과 증오의 역사를 넘어
당신이 꿈꾸던 참 평화와 하나돔을 위해 부끄러움으로 당신 앞에 섭니다.
이제 우리 하나되어 섭니다.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진정한 독립과 자유, 통일과 평화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수천 수만의 우봉(牛峰)과 해평(海平)으로 섭니다.
당신의 죽음을 딛고 섭니다.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섭니다.
여든 네 돌 삼일절 아침에 사람을 그리워하며 최창남 지음
강 옆 비옥한 땅에 메마른 풀만 돋아나기에
마음을 풀어 강물에 적셨더니 그리움만 묻어납니다.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우봉(牛峰)과 해평(海平)의 인생이 흘러갑니다.
치떨리던 일제 36년의 세월을 온 몸 핏덩이 되어 견디어내던
결의에 차던 두 형제의 삶이 흘러갑니다.
굴욕의 욕사 속에서 모진 고문을 온 마음으로 끌어안은
우봉(牛峰)의 스물 일곱 해 불꽃같던 인생이 흘러갑니다.
그 순결했던 정신이 흘러갑니다.
조국의 생명을 바칠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우리의 영혼을 울리던 해평(海平)의 말씀이 흘러갑니다.
모든 살아 있는 자들이 살아 있음으로 해서 즐거움을 삼음에도
살아 있는 자로서 죽음을 즐거움으로 삼았던 영혼의 사랑이 흘러갑니다.
내 마음의 강으로 흘러갑니다.
메마르고 갈라진 우리들의 마음으로 흘러옵니다.
메마른 이 땅을 넘어 망각의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잊었던 당신의 삶을 마음 깊이 새기며 이제야 가까스로 당신 앞에 섭니다.
일제 36년 길었던 치욕의 역사, 친일의 역사, 대립과 증오의 역사를 넘어
당신이 꿈꾸던 참 평화와 하나돔을 위해 부끄러움으로 당신 앞에 섭니다.
이제 우리 하나되어 섭니다.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진정한 독립과 자유, 통일과 평화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수천 수만의 우봉(牛峰)과 해평(海平)으로 섭니다.
당신의 죽음을 딛고 섭니다.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섭니다.
여든 네 돌 삼일절 아침에 사람을 그리워하며 최창남 지음
투사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La patrioto ne postulas sian porcion
- 故 海平(고 해평) 이재현 지사의 말씀 중에서 -
La patrioto ne postulas sian porcion
- 故 海平(고 해평) 이재현 지사의 말씀 중에서 -
경기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1112 자유공원
항일애국지사 이재천, 이재현 형제 추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