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성리 409-9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예산군 삽교읍 성리 409-9 예포대도소 터 안내판을 찾았다.
예포대도소 터
3만여 내포동학농민군은 보국안민 척양척왜의 기치를 들고 1894년 10월 1일(음) 2차 기포하였다. 일본침략군을 몰아내기 위한 민족자존의 반외세 항쟁이었다. 농민군 지도자 덕의대접주 박인호조직은 예포 덕포였으며 기포 후 당시 덕산군 장촌면소를 점령하고 '예포대도소'를 설치하여 지휘본부로 활용했던 곳이다. 농민군은 많은 군량미와 전투준비물을 쌓아두었으나 10월 11일 홍주 초토영의 기습으로 도소는 불탔고 군량미를 빼앗기고 후퇴하였다. 동학농민군은 해미 여미벌에서 재집결하여 전면적인 항쟁을 펼쳤다.
3만여 내포동학농민군은 보국안민 척양척왜의 기치를 들고 1894년 10월 1일(음) 2차 기포하였다. 일본침략군을 몰아내기 위한 민족자존의 반외세 항쟁이었다. 농민군 지도자 덕의대접주 박인호조직은 예포 덕포였으며 기포 후 당시 덕산군 장촌면소를 점령하고 '예포대도소'를 설치하여 지휘본부로 활용했던 곳이다. 농민군은 많은 군량미와 전투준비물을 쌓아두었으나 10월 11일 홍주 초토영의 기습으로 도소는 불탔고 군량미를 빼앗기고 후퇴하였다. 동학농민군은 해미 여미벌에서 재집결하여 전면적인 항쟁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