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화 활동근거지(칠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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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
탐방로그
정철화 선생의 흔적을 찾으러 안성시에 도착했다. 정철화 의병장의 활동근거지였던 칠현산 칠장사의 정확한 위치는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이다. 하지만 일제와 맞서 싸웠던 사실을 알 수 있는 사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나한전

산신각
혜소국사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 애국지사 정철화 의병장 활동근거지 칠현산 칠장사를 찾았다.
七賢山七長寺(칠현산 칠장사)
일주문. 七賢山七長寺(칠현산 칠장사)
칠장사. 칠현산의 철따라 바뀌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울창한 숲에 고풍스러운 칠장사가 안겨 한적한 풍광을 연출한다.
칠장사는 손때가 묻지 않아 찬찬히 살펴봐야 할 보물들이 많다. 칠장사에서 약 200m 앞쪽 길가에 전국에 몇 개 없는 철당간이 서있고, 진흙소조로 만든 사천천왕상이 찾는 이들을 압도한다. 화려한 조각솜씨를 미루어 보면 8세기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우수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칠현산. 칠장산군의 하나로 백두대간 중 금북정맥에 속한 산이다. 높이는 높지않고 산의 폭이 크고 숲이 울창하여 안성시와 진천군의 경계를 이룬다. 칠장산과 칠현산, 덕성산은 능선상으로 연결되어 있어 세산을 이어 종주할 수도있다. 신증동국여지승라에 칠현산은 현 남쪽 15리 지점에 있다고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산기슭에는 칠장사라는 사찰의 현판. 당간에는 칠현산이라는 산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칠장사(七長寺). 칠장사는 안성시 칠현산 중턱에 자리한 절로,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처음 지었다고 전해진다.
칠장사의 내력은 고려 시대부터 잘 보존되어 있다. 고려 우왕 8년(1383)에는 왜구의 침입을 받아 충주 개천사에 있던 실록을 이곳으로 옮겨 와 보관했다 다시 가져갔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가 아들 영창대군과 아버지 김제남의 명복을 비는 원당으로 삼고 사찰을 크게 고쳐 짓고 직접 글씨를 쓴 불경과 족자를 제에 내려주었다.
이후 여러 차례 화재가 일어났으나 절을 지키려는 스님들의 노력으로 터를 옮겨 가며 다시 짓고 절을 보존했다. 특히 조선 숙종 30년(1704)에는 옛터ㅡㄹ 회복하여 56동에 이르는 전각을 지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증축등의 불사가 있었지만 고종 24년(1887)에 큰 불이 나서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 나한전, 사천왕문과 불상, 불화등만 남았다. 부속 암자로 백련암, 극락암, 명적암, 상운암 등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명적암을 제외한 다른 암자들은 폐사되거나 칠장사로 통합되었다.
칠장사에는 다양한 설화가 전해진다. 고려 초 혜소 스님이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선량하지 못한 7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고, 혜소국가사 되었으며, 입적 후에는 왕명을 받아 행적비가 조성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궁예가 19살까지 활쏘기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는 활터 이야기와 임꺽정이 스승 병해대사가 입적하자 꺽정불을 만들어 극락전에 모셨다는 이야기, 어사 박문수가 나한전에서 자다가 꿈에서 시험 문제를 보고는 장원 급제를 했다는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①대웅전
②원통전(관음전)
③국사전
④명부전
⑤열반당
⑥응향각
⑦죽향리삼층석탑
⑧극락전
⑨종무소
⑩봉업사지석불입상
⑪누각
⑫범종각
⑬사천왕문
⑭부도군
⑮약수터
⑯공덕전
⑰나옹송
⑱나한전
⑲혜소국사비
⑳비전
㉑산신각
㉒해우소

칠장사 종합안내

㉓칠장사 부도군
㉔당간
㉕사적비
㉖일주문
㉗벽응대사비
天王門(천왕문)
죽림리 삼층석탑
大䧺殿(대웅전)
원통전
국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