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 4.4 독립만세운동 기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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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군덕리 375-12
탐방로그
선장 4.4 독립만세운동 기념상은 충남 아산시 선장면 군덕리 375-12 4.4만세운동기념공원 내에 위치한다. 이 공원에는 기념상뿐만 아니라 기미년 선장 4.4 독립만세운동사 기념비, 독립 유공자의 공훈내역을 담은 부조, 유형을 받은 참여자 명단 등이 함께 구성되어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애국지사
선장면 장곳리
임천근(林千根 1890-1965)
징역 2년 6월
건국훈장 애족장
애국지사
선장면 돈포리
서몽조(徐夢祚 1881-1954)
징역 2년 6월
애국지사
인주면 도흥리
김천봉(金千鳳 1894-1970)
징역 2년 6월
건국훈장 애족장
애국지사
선장면 돈포리
오상근(吳相根 1884- )
징역 2년 6월
건국훈장 애족장
애국지사
선장면 죽산리
성배호(成培鎬 1891- )
징역 1년
건국훈장 애족장
선장면 만세운동 태형처분을 받은 참여자 명단
충남 아산시 선장면 군덕리 375-12 4.4만세운동기념공원 내 선장 4.4 독립만세운동 기념상을 찾았다.
아산 3.1운동 사적지 선장시장 만세시위 현장
1919년 4월 4일 선장 장날 선장면 주민들이 대대적인 만세시위 전개
4.4 독립만세운동 상징공간
4.4 독립만세운동 상징공간
이곳은 옛 선장 장터이면서 아산시 독립운동 중 가장 치열했던 4.4 독립만세운동의 발상지로서 역사성 및 상징성을 반영하여 지역 특화장소로 조성하였으며, 4.4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를 확대 발전시켜 즐길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고 주민 공동체 의식 함양을 도모하였다.
4.4 아산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 4일 선장면의 부두노동자를 겸한 반농반노의 주민들이 선장 장날 군덕리 시장에서 200여 명이 시위하고, 헌병주재소를 습격해 1명이 순국, 114명이 체포된 항일 독립운동이다.
1919년 선장 4.4 만세운동상
1919년 선장 4.4 만세운동상
기미년 선장 4.4 독립만세운동사
우리 고장은 마치 신선의 손과 같다 하여 선장면(仙掌面)이라 이름하였다. 삼봉산의 푸른 요람이라 하여 삼봉청람(三峰靑濫)인 선장8경 아래 선장면 소재지가 소들강문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평화로이 자리하고 있다. 옛날의 선장은 곡식과 소금을 인천과 서울로 운반하는 포구였으며 이로 인해 물류가 활발하고 세상의 소식이 빠르게 전해지는 곳이었다. 1910년에 국권을 침탈당한 뒤 나라를 되찾고자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1919년 기미년 독립만세운동도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선장 지역 만세운동은 정수길(규희)이 주도하였다. 동학농민혁명군 신창 접장 정태영의 아들인 그는 1907년 천도교에 입교하여 신창의 사립 신민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웠으며 손병희 선생의 수제자 중 한명이었다. 정수길(군덕리)은 임천근(군덕리), 서몽조(돈포리), 오상근(돈포리), 김천봉(인주 도흥리) 등 지사들과 독립만세운동을 결의하고 선장면 각 마을 주민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규합하였다. 선장과 함께 동학의 교세가 강했던 도고면 각 마을 주민들도 이 거사에 함께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4월 4일 선장 장터에서 수백 명이 참가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정수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지사들과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참가자들은 다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윽고 주동자들은 몽둥이를 들고 앞장서서 시위대를 이끌며 주재소로 몰려갔다. 일본 헌병조장 장사손삼랑이 공포탄을 쏘며 해산을 강요하였으나 시위대가 더욱 격렬하게 돌진하자 경찰은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앞장서서 맹렬히 독립만세를 외치던 최병수 열사는 총에 맞아 순국하였고 7명이 부상을 당하였으며 시위대도 해산되었다. 이날의 격렬한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정수길, 임천근, 서몽조, 오상근, 김천봉 등 5명이 일제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들은 모두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정수길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공주형무소로 이감되었고 임천근, 서몽조, 오상근, 김천봉 등은 공주형무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모두 형기 만료로 출옥하였다. 이외에 선장면의 적극 참여자 110명 중 52명은 태형 6도, 57명은 태형 40도를 맞았고 고령인 1명은 벌금 10엔을 처분받았다. 도고면의 적극 가담자 80명도 태형을 당하였다. 이후에도 정수길은 1926년 6.10만세 운동과 927년 신간회 운동에 참여하였고, 1938년 멸왜기도운동과 독립운동자금 모금활동이 발각되어 온양경찰서에서 13일 간 옥고를 치렀다. 이러한 선장면 독립만세운동의 숭고한 공적을 기리며 대한민국 정부는 최병수 열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1963년)을 추서하였다. 또한 1990년에 정수길, 임천근, 서몽조, 2007년 김천봉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하였다. 2017년 선장면 소재지 종합정비사업으로 이곳에 현충시설을 설치하고 선장 4.4독립만세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뜻을 길이 남기고자 이 기념비를 세우다.
2017년 12월 31일 / 세운이. 아산시장 복기왕, 아산시의회 의장 오안영, 추진위원장 박응진, 글. 광복회 아산.예산 연합지회장 정해곤
독립선언서(이희승 선생 한글풀이 본)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5천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역사가 있은 지 몇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압제에 뼈아픈 괴로움을 당한 지 이미 10년이 지났으니,
그동안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영예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나 될 것이냐?
슬프다! 오래 전부터의 억울을 떨쳐 펴려면, 눈앞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협을 없애려면, 눌러 오그라들고 사그라져 잦아진 민족의 장대한 마음과 국가의 체모와 도리를 떨치고 뻗치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아들딸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끌어대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의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어 굳게 결심하고,
인류 공통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를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라는 무기로써 도와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취하매 어느 강자인들 꺾지 못하며,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수호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배반하였다 하여 일본의 배신을 죄 주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닦아 물려 온 업적을 식민지의 것으로 보고 문화 민족인 우리를 야만족같이 대우하며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현 사태를 수습하여 아물리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그것은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개척함일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에 희생된, 불합리하고 부자연스러움에 빠진 이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서,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올바르고 떳떳한,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던 두 나라 합방이었으므로, 그 결과가 필경 위압으로 유지하려는 일시적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함께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정을 보라!
날래고 밝은 과단성으로 묵은 잘못을 고치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그 기초를 둔 우호적인 새로운 판국을 타개하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빠른 길인 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원한과 분노에 쌓인 2천만 민족을 위력으로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서 동양의 안전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굴대(軸)인 4억만 지나 민족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두려워함과 시새움을 갈수록 두텁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붙들어 지탱하는 자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잊지 못할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리오?
아!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도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도다.
과거 오랫동안 갈고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적 정신이 이제 막 새 문명의 밝아 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도다.
새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구나.
혹심한 추위가 사람의 숨을 막아 꼼짝 못 하게 한 것이 저 지난 한때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천지의 돌아온 운수에 접하고 세계의 새로 바뀐 조류를 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 온 권리를 지켜 온전히 하여 생명의 왕성한 번영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수하고 빛나는 민족 문화를 맺게 할 것이로다.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활발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어 내게 되도다.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로다.

《 공약 3장 》

1.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1.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

1.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 하게 하라.

- 조선 나라를 세운 지 사천이백오십이년 되는 해 삼월 초하루

- 조선 민족 대표 -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 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순국열사
선장면 대정리
최병수(崔炳秀 1876-1919)
시위현장 총살
건국훈장 독립장
애국지사
선장면 군덕리
정규희(수길)(丁奎熙 1895-1979)
징역 2년 6월
건국훈장 애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