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명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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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금당리 산47-6
탐방로그
서천군 화양면 금당리 산47-6에 위치한 조남명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금당하리 마을회관에서 애국지사 조남명의 묘까지는 884m로, 도보로 13분 정도 소요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논리 정연한 항변과 독립만세 고창하자 판사도 방청객도 경외감에 숙연해진다. 수형 중 독립만세 연발하자 "이 자는 살려두면 큰 화근이 될 인물이다" 단정, 태형 90대에 30대를 추가 절명케하다. 검시관 확인, "아직 살아있다!:" 피맺힌 절규와 응급조치로 꺼져가는 생명의 부활은 하나님 은총이셨다. 의식불명 3년차에 소생, 재활치료 2년만에 보호자 부축으로 부활절예배 드리다. 1923년 장로 장립, 신축 예배당 헌당예배 드리는 영광 누리시다. 일제는 내선일체 주창과 민족정신 말살하고자 왜경들 예배당 침입 시도하자 "이곳은 하나님 계신 곳 신성불가침의 성전이다" 뇌성벽력 호통에 줄행랑친다. 이윽고, 최후 진술 유훈의 승리로 조국 광복의 환희 속에 태극기 그려주고 애국가 가르쳐 준 민중들의 환호성에 천지가 진동하다. 선조님은 남북 분단의 한을 품고 1947년 7월 2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 후손들은 애국선열의 기독교 정신과 위국충절 유훈의 참뜻을 받들어 그 은덕에 보답할지어다.
이 추모비는 선조님의 유훈과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손자 성기와 성은 목사, 증손자 육군 준장 용희가 서거 70주년을 추념하며 2017년 7월 2일 근립 함.
제 87806호 표창장 - 조남명(趙南明)
위는 숭고한 애국정신을 발휘하여 조국의 자주독립운동에 헌신노력함으로써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므로 이에 표창함
1993년 3월 1일 대통령 김영삼 이 증을 대통령 표창 후에 기입함
제23-4295호 국가유공자증서 조남명
우리 대한민국의 오늘은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위에 이룩된 것이므로 이를 애국정신의 귀감으로서 항구적으로 기리기 위하여 이 증서를 드립니다. 2007년 9월 12일
대통령 노무현 국가보훈처장 김정복 서기 2008년 11월 17일 세움
長老 趙公 南明 義士 之墓(장로 조공 남명 의사 지묘)
장로 조남명의사 묘표음기
장로님의 휘는 남명 자는 중철 호는 청하이시다. 관은 풍양인 고려개국공신 맹의 후손 회양부사 휘 신의 19세손이시다. 호서아성에 낙향하신 근안공 창우의 7세손이시다. 고의 휘는 찬구이시니 한학을 통달 하시고 덕망높으신 선비이시며 비는 남양홍씨니 재완의 녀이시다. 장로님은 1874년 갑술 9월 24일 서천군 화양면 금당리에서 출생하시다. 천자영재이신 장로님은 한학에 정통하시고 학당을 설립 인재양성에 열중하셨다. 특히 문장재질이 탁월하여 경향에 명성이 높아 세인의 추앙이 대단하였다. 배는 경주이씨
종현이시고 1871년 신미8월 13일 출생하시다. 품성이 인자하여 부모님께 효성이 지극하시고 부군을 정성으로 보필하며 4남 2녀를 주 안에서 양육하고 진실한 신앙인으로 1947년9월 22일 소천하시다. 장로님은 한말의 격동기에 개화문명의 신사조와 기독교를 적극적 수용하고 1907년 추 금당장로교회를 창립 복음전파에 전력하든차 소명을 받아 1916년 평양신학교에서 수학하시며 전도사로 시무하셨다. 1923년 좀 금당교회 초대자로장립을 하시고 1924년 3월 예배당을 신축봉헌하고 강도사로 사회에 진력하셨다. 장로님은 한일합방의 민족적 울분을 금치못한 차제 기미3.1운동에 적극참여하여 3월 4일 독립선언서를 입수하고 비장한 각오로 3월 6일과 7일 기독교 동지를 규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 추진중 8일 기밀누설로 왜경에게 체포되였다. 압송도중 삼산사장에서 군중을 향해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여 민중을 감동 의분케함은 실로 통쾌한 거사로서 기 의인의 기개와 애국애정에 감탄할뿐이다. 공주법원에 수감중 극심한 고문을 당하고 4월 1일 판결 징역2년에 해당되는 조선태형 90대를 수형하시다. 이는 죽음을 뜻하는 극형으로서 평생 여독으로 고생하셨다. 장로님은 체포로 인해 의분한 동지들은 3월 29일 마산 새장터에서 독립만세 민중시위를 강행하셨다. 장로님은 일제감시하 박해를 당하면서 신사참배반대운동등 불굴의 항일투사로 조국독립에 이바지하시다. 환희의 조국광복을 맞아 손수 태극기를 만드시고 만소소리 드높은 승리의 기쁨도 촌시뿐 애석하게도 1947년 5월 14일 천국에 가시다. 후세는 기 사적을 약술하고 이 비를 건립하면서 장로님의 숭고한 민족정화와 기독교의 신실한 신앙을 기리 받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나이다.
서천군 화양면 금당리 산 47-6 애국지사 조남명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세기 12장 2절)
최후 진술 유훈의 승리
나는 조선인이다! 일본이 강탈한 조국의 독립운동은 백성의 의무이다. 일본 법치하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 즉시 석방하라. 나는 나라 잃은 죄인이다! 굳이 벌을 주려면 조선법의 태형을 받겠다.
애국지사 조남명 장로 1919.4.1. 공주지방법원 법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