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엽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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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송산리 산38-5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코저 평소부터 뜻을 같이 하던 양재흥 김인두 제공들과 상경할 계획으로 있었으나 동월 23일 동지 노형래공이 태극기 제작을 종용하여 왔으므로 쾌히 이에 가담하여 28일까지 7천매를 완성하였다. 익 29일 하오 1시부터는 마산면 신장리 장터에서 송기면공의 선언문 낭독에 이어 유성열공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 시위에 드러가니 공은 고시상공과 함께 시종 그 선두에 서서 수천군중을 이끌고 인근 각 부락을 돌았다. 이때에 일경이 출동하야 군중에게 연설하던 송여직공 이하 6인을 체포하매 이후로는 군중의 절규가 구속자 구출운동으로 치열화하였다. 경찰출장소를 습격한 후 행렬은 한산읍에까지 이르렀으나 끝내는 피체되어 공주옥에서 2년간 복역후 간신히 출옥하시었다. 기후 위국충정을 오로지 후진양성에 치중하시다가 조국광복을 못 보신 채 1942년 임오 7월 1일 서거하시니 이곳 한산면 송산리 38번지에 계좌로 근봉되시다. 정부에서는 공의 건국공로를 기리며 1977년 12월 13일 대통령표창을 추서하다.
1980년 경신 11월 일
서천군수 박재훈 근수
서천군 한산면 송산리 산 38-5 애국지사 박재엽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高靈朴公 在燁 之墓(고령박공 재엽 지묘)
愛國志士 朴公 在燁 之墓(애국지사 박공 재엽 지묘)
공의 휘는 재엽이오 호는 상곡이시며 관은 고령이시니 시조 박혁거세왕의 59세손이 되시다. 고 휘 태하공과 강릉유씨의 장남으로 1874년 갑오 6월 14일 서천군 한산면 송산리에서 출생하시였다. 유시로부터 품성이 강직하고 절의에 투철하여 항상 일제침략과 학정에 심히 분탄하던 나머지 1919년 기미 3월 서울에서부터 우리 민족자결로 독립선언운동이 전개되자 솔선 이에 호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