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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 649
- 탐방로그
-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 649에 위치한 애국지사마을 표지석(규암면 합송리)를 찾았다. 애국지사마을 표지석 (규암면 합송리)은 합송2리 마을회관 앞에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 196-1 금지1리마을회관옆 애국지사마을 표지석이 건립되었다고 하여 찾았다.
애국지사 마을
애국지사 마을
애국지사 마을
성명 : 문재동(文在東, 남, 1868~미상) / 본적 : 충남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 404 / 운동계열 : 국내항일
문재동 애국지사는 1919년 3월 6일 부여군 임천시장(林川市場) 등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공(公)은 황우경(黃宇京)·박성요(朴性堯)·황금채(黃金彩)·박용화(朴容和)·최용철(崔容澈)·정판동(鄭判同) 등과 함께 경성(京城)에서 손병희(孫秉熙) 등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을 전해 듣고 일제에 빼앗겼던 국권을 다시 되찾고자 독립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6일 오전 7시경 임천 소재지에 도착한 문재동 등 7인의 애국지사는 내산면 지티리 김종석(金鍾錫)에게 받은 독립선언서를 붙이고 독립운동에 관한 연설을 하였으며, 군중 다수와 집단을 이루어 임천시장, 면사무소, 공립 보통학교 등지에서 "우리조선은 독립할 것이니 너희들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공은 그해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공의 공적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11. 27. 부여군 내산면 금지1리 민선7기 부여군수
성명 : 문재동(文在東, 남, 1868~미상) / 본적 : 충남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 404 / 운동계열 : 국내항일
문재동 애국지사는 1919년 3월 6일 부여군 임천시장(林川市場) 등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공(公)은 황우경(黃宇京)·박성요(朴性堯)·황금채(黃金彩)·박용화(朴容和)·최용철(崔容澈)·정판동(鄭判同) 등과 함께 경성(京城)에서 손병희(孫秉熙) 등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을 전해 듣고 일제에 빼앗겼던 국권을 다시 되찾고자 독립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6일 오전 7시경 임천 소재지에 도착한 문재동 등 7인의 애국지사는 내산면 지티리 김종석(金鍾錫)에게 받은 독립선언서를 붙이고 독립운동에 관한 연설을 하였으며, 군중 다수와 집단을 이루어 임천시장, 면사무소, 공립 보통학교 등지에서 "우리조선은 독립할 것이니 너희들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공은 그해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공의 공적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11. 27. 부여군 내산면 금지1리 민선7기 부여군수
성명 : 이창호(李昌鎬, 남, 1883.12.26~1927.6.7) 본적 :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 657 운동계열 : 국내항일 1919년 고향에서 3·1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고 한다. 1920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김좌진(金佐鎭)사령관의 무장항일투쟁에 협력하여 국권을 회복할 결심으로, 윤상기(尹相起)·이치국(李致國)·백남식(白南式)·윤태병(尹太炳)·김영진(金瑛鎭)·조병채(趙炳彩)·노재철(盧載喆) 등과 함께 충남 및 전북 일대에서 군자금 수천원을 조달하였다. 그리고 임시정부 경리국 고문, 유고(諭告) 등의 격문을 배포하는 등 항일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이창호는 결국 1922년 9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성명 : 김형제(金亨濟,남,1888.1.23~1945.12.23) 본적 :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 944 운동계열 : 국내항일 만주 길림(吉林) 군정부 군무독판 겸 총사령관인 김좌진(金佐鎭)이 충남지방에 파견한 김영진(金瑛鎭)이 동지를 규합할 때 노재철(盧載喆)·김백순(金伯順) 등과 여기에 찬동하여 가담하였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충남 지방의 부호들에게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1920년 8월 3일 일경에 체포되어 1922년 4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제령(制令) 7호 및 총포 화약류 취체령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성명 : 김형제(金亨濟,남,1888.1.23~1945.12.23) 본적 :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 944 운동계열 : 국내항일 만주 길림(吉林) 군정부 군무독판 겸 총사령관인 김좌진(金佐鎭)이 충남지방에 파견한 김영진(金瑛鎭)이 동지를 규합할 때 노재철(盧載喆)·김백순(金伯順) 등과 여기에 찬동하여 가담하였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충남 지방의 부호들에게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1920년 8월 3일 일경에 체포되어 1922년 4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제령(制令) 7호 및 총포 화약류 취체령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애국지사마을
2021.11.23
부여군 규암면 합송2리
민선7기 부여군수
2021.11.23
부여군 규암면 합송2리
민선7기 부여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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