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렴산 기미독립만세진원지 유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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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증산리 산65-1
탐방로그
주렴산 기미독립만세운동 선양사업 추진위원회는 고인들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본 비를 건립하였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마을회관 이후 아무런 안내판이 없다. 예비군 훈련장 옆으로 올라간다고 했는데...
등산로를 찾지 못해서 가파른 산을 올라오느라고 1시간이 걸렸다.
박윤화 1993년 대통령표창
임문호 1993년 대통령표창
박태현 1992년 대통령표창
김양제 1992년 대통령표창
이장규 1992년 대통령표창
이철규 1993년 대통령표창
주렴산 기미독립만세 진원지
이곳이 주렴산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진원지이다. 보령시 주산면 증산리 산65-1, 해발 351미터의 주렴산 주봉으로 국수봉이라 한다.
1919년, 기미년 3월 16일밤 지역의 18의사가 이 곳에 올라 봉화를 올리고, 징을 치면서 독립선언문에 혈서하여 낭독한 다음 독립만세를 외쳤던 독립운동의 현장이다.
민족의 자주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일제에 항거했던 선인들의 숭고한 정신과 결연한 의지를 기리면서 후세에까지 전하고자 이 곳에 표비를 세운다.
주렴산 기미독립만세운동 약사
1919년 3월 16일 밤을 기하여 우리 고장 출신 18의사가 주렴산 국수봉에 올라 태극기를 꽃고 봉화를 올리며 징을 치고 독립선언문에 혈서하여 낭독한 다음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일제식민 통치에 항거했던 만세운동이 주렴산 기미독립만세운동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을사보호조약(1905)으로 일제에 주권을 빼앗기고 경술년(1910년) 한.일합방조약으로 치욕스런 식민통치가 시작되자 잠가고 있던 민족혼이 깨어나면서 자주독립을 갈망하는 염원을 기미년 3.1독립만세운동으로 폭발하게 되었다. 이때 우리고장 출신으로 서울 배재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이철원(정부수립후 2대 공보처장)은 학생 전위 대원으로 시위를 하다가 왜경의 감시를 피해 고향으로 내려와 유림선대들을 규합하여 3.15일 간재 장날에 만세운동을 계획하였으나 사전누설로 왜경의 감시가 삼엄하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날 저녁에 거사를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주렴산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웅천방면으로 진출을 히도했지만 충동한 왜경에 저지되었고 주모자급은 거의 체포되어 태형과 옥고를 치루고 온갖 수모를 당했으며 일생을 불편한 몸으로 지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난 의사들이 많았다.
보령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직접 만세를 부른 독립운동으로 주동 18의사는 다음과 같다.
이철원 박윤화 임문호 박태현 김양제 이철규
이창규 이성규 이성수 이관규 윤기호 이홍규
이항규 윤용원 최봉규 박성하 윤천영 신도휴
하산할때는 안내판을 따라가니 손쉬웠다.
이곳이 예비군훈련장이다.
GPS상의 주소는 보령시 주산면 주야리 648이다.
올라오는 길에 안내판을 하나 세워주었으면 좋을텐데....
보령시 주산면 증산리 산65-1주렴산 국수봉 기미독립만세진원지 유적비를 찾아왔다.
주야리 273-2 주야1리 마을회관 뒤에서 보이는 모습. 저 산의 정상이 국수봉이다.
'주렴산기미독립만세진원지기념비'가는 길
해발351m의 주렴산 국수봉은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진원지이다. 1919년 3.1운동이 서울에서 일어나자 주산면 증산리 출신 이철원은 배재학당에 다니던 중 서울의 만세운동을 알리기 위해 고향에 내려 왔다가 고향에서도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야 한다고 동지를 모았다. 그는 3월 16일 거사하여하였으나 사전에 누설되어 다음날인 3월 17일 주렴산에 올라가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마을 사람들이 독립만세 소리를 듣고 산으로 올라가 합세하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웅천시내 2km지점까지 행진하다 일경의 제지로 18명의 주모자가 잡혀갔다. 3월 18일 밤에는 박윤화가 주산면 야룡리 북개봉 상봉에 태극기를 꽂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보령시에서는 그 날의 만세사건을 기념하고 그 항일정신을 후세에 영구히 기리기 위해 1997년 5월 주렴산 기미독립만세운동 선양사업추진위원회를 지원하여 기념비를 주렴산 국수봉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