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가곡리 11-3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다른 성씨의 묘소였다.
위성지도상으로는 저 묘비가 보이는 부근이었다.
하지만 이곳도 다른 성씨의 묘소였다.
아래쪽에 있는 저 묘소인것같다.
윤홍중선생의 묘소였다.
파평윤공 휘 홍중 지묘
獨立運動有功者(독립운동유공자) 惠山 尹洪重 先生 之墓(혜산 윤홍중 선생 지묘)
혜산 윤홍중선생은 시조는 고려태조와 함께 통합삼한하신 태사 윤신달이시며 29대조는 려조에 척지진국하신 유관장군이시고 부친은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추서받으신 윤이병선생이시다. 1875년 8월 18일 논산군 노성에서 출생하셨다.
약관에 한국무관학교에서 반일정신으로 삭발령과 왜인동화를 반대시위하시다가 1898년에 퇴학을 당하시고 1906년에 민족정신을 고취하가위하여 동아개진교육회에서 대중을 계몽하셨으며 1907년 서울에서 구국동우회릐 항일결사대로 활약하시다가 일본헌병대 체포되어 1개월간 구금되셨고 1916년 풍기에서 노백린 김좌진 등 동지들과 함께 광복단조직에 가입활동하셨으며 1919년 11월에는 한훈을 상해임시정부에 대표로 파견하여 이동녕 이시영 안창호 등과 협의하고 다수의 무기를 구입하여 왜정 요인과 중요기관을 암살및 폭파하려다가 사전에 대구에서 다시 왜경에 피체되어 10개월동안 혹독한 고문을 겪으시념서도 밀의계획을 끝내 실토하시지 아니하시어 동지들의 희생을 막으셨다. 1927년 서울에서 60여개 소년단체를 규합하여 조선소년연합회를 결성하시고 변세택 방정환등과 같이 회원들에게 자주독립정신을 배양하셨다. 구국의 화신으로
약관에 한국무관학교에서 반일정신으로 삭발령과 왜인동화를 반대시위하시다가 1898년에 퇴학을 당하시고 1906년에 민족정신을 고취하가위하여 동아개진교육회에서 대중을 계몽하셨으며 1907년 서울에서 구국동우회릐 항일결사대로 활약하시다가 일본헌병대 체포되어 1개월간 구금되셨고 1916년 풍기에서 노백린 김좌진 등 동지들과 함께 광복단조직에 가입활동하셨으며 1919년 11월에는 한훈을 상해임시정부에 대표로 파견하여 이동녕 이시영 안창호 등과 협의하고 다수의 무기를 구입하여 왜정 요인과 중요기관을 암살및 폭파하려다가 사전에 대구에서 다시 왜경에 피체되어 10개월동안 혹독한 고문을 겪으시념서도 밀의계획을 끝내 실토하시지 아니하시어 동지들의 희생을 막으셨다. 1927년 서울에서 60여개 소년단체를 규합하여 조선소년연합회를 결성하시고 변세택 방정환등과 같이 회원들에게 자주독립정신을 배양하셨다. 구국의 화신으로
항시 옥고를 겪으시던 부친의 감방문전에서 노숙하시면서 시종드셨으니 그 효성 또한 지극하셨다. 참혹한 왜적만행으로 인하여 1933년 6월 25일 59세를 일기로 서거하시였다. 1982년 8월 15일 정부에서 대통령표창을 추서하니 이 거룩하신 애구충절을 후세에 길이 보전하기 위하여 그 공적을 추려 군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움 정부에서 경오년에 건국공로 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음
1984년 4월 22일 논산군수
1984년 4월 22일 논산군수
논산시 노성면 가곡리 11-3 증골 애국지사 [윤홍중]의 묘소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