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진 공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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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충청남도 계룡시 신도안면 정장리 172-617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이상룡 김대락 김동삼 윤세복등과 이주 교민의 정착을 협의하고 황지지개척과 청년교육에 활약하시었으며 1914년 만주 영춘현에서 황의영과 영춘학교를 설립한후 마록구에서 다시 4년 협창학교를 창립하고 인근 청년들에게 신구학문교육에 전념하면서 한족회의 연락책임을 맡고 활약하셨고 1919년 3월 국내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주에서 이에 호응하여 군중동원 태극기를 만들어 독립만세운동에 활동하시다 신병으로 이국땅에서 향년 56세로 서거하시었다. 배 진성이씨와의 사이에에 홍직 경직 형제가 있어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형가 둔후곡에 자좌로 안장하였으나 홍직이 종숙에게 출옥하고 경경직이 대를 이은 독립운동으로 내래 고국으로 봉환치 못하다가 효손 중환이 본향에 설단 발향키에 이르렀음 정부에서는 1983년 8월 31일 대통령표창을 추서하니 이 거룩하신 애국충절의 정신을 후세에 기리 보전하기위하여 그 공적을 추려 군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溫雅其文謹拙規
一生韜晦不求知
風潮漲渼新時代
孤笑群中亦自奇
周栗焉能凂熱腸
十年遼野飽風霜
時機漸到身先逝
未見嵩呼入漢陽
悲歡榮辱劇紛忙
此世元非久滯場
老別何須兒女泣
丁寧冥會後期長

공훈록에 나와있는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은 '곡 배영진(哭裵永進)'이 비석과 차이가 있어서 추가,수정하였습니다.
애국지사 백봉선생 공적비
백봉 배영진애국지사는 신라 한기부장 배공 휘 기타가 시조이며 임란시 창의향병장군 승지 호 금이당은 선생의 10대조이시다. 휘 선우공과 비 한양조씨의 3자로 서기 1864년 갑자 8월 26일 경북 안동부 예안면 등현리에서 출생하셨다. 공은 지덕이 외탕(巍蕩)하고 용략이 유열하여 일찌기 항일구국운동을 만주에서 활동하시었다. 1912년 1월 국치이후 비분을 참지못하여 고향인 안동에서 유인식 이강호등 10가구와 같이 만주로 망명하여 통화현 왕거 우제에 정착하였고 1912년 만주 동삼성에서 한족회를 조직 지방연락책을 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