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 478-1
- 탐방로그
-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 478-1 비석거리 안산 3.1운동 기념탑 '위대한 투쟁'을 찾았다. 1919년 3월 30일 수암면 비석거리,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사태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고 그 장면을 본 일제 경찰은 "마치 눈사태가 덮친 것 같다"고 표현할 정도였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1919년 3월 29일
군자면 장곡리 만세시위
군자면 장곡리 만세시위
1919년 3월 30일
수암면 수암리 비석거리 만세시위 유익수.윤병소.홍순칠.윤동욱.김병권.이봉문 외 2천여 명 참여
※ 시흥지역 최대의 만세운동
수암면 수암리 비석거리 만세시위 유익수.윤병소.홍순칠.윤동욱.김병권.이봉문 외 2천여 명 참여
※ 시흥지역 최대의 만세운동
1919년 3월 31일
군자면 선부리 만세시위
군자면 선부리 만세시위
1919년 4월 1일
반월면 만세시위 유익수 외 600여 명 참여
대부면 만세시위 김윤규.노병상.홍원표 주도
반월면 만세시위 유익수 외 600여 명 참여
대부면 만세시위 김윤규.노병상.홍원표 주도
1919년 4월 4일
군자면 만세세위 강은식.김천복 외 1,000여 명 참여
군자면 만세세위 강은식.김천복 외 1,000여 명 참여
1919년 4월 5일
독립운동 주동자 일제 검거때 수암면 3.1운동을 주도한
유익수.윤병소.홍순칠.윤동욱.김병권.이봉문 등 체포
독립운동 주동자 일제 검거때 수암면 3.1운동을 주도한
유익수.윤병소.홍순칠.윤동욱.김병권.이봉문 등 체포
1919년 4월
4월 4일 군자면 시위를 주도한 강은식.김천복과
4월 6일 구 장터만세운동을 모의한 권희.장수산 등이 체포
4월 4일 군자면 시위를 주도한 강은식.김천복과
4월 6일 구 장터만세운동을 모의한 권희.장수산 등이 체포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 478-1 비석거리 안산 3.1운동 기념탑 '위대한 투쟁'을 찾았다.
위대한 투쟁
위대한 투쟁
평범한 이들의 위대한 투쟁
안산만세운동
안산만세운동
태극의 4괘가 표현되어 있다.
'마치 눈사태가 덮친 것처럼
1919년 3월 30일 수암면 비석거리,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사태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고 일제 경찰이 표현할 정도였다.
인근 지역 18개리에서 모여든 군중은 2000여명. 당시 수암면 인가가 8000명 남짓이니 어린이와 노인 여성을 제외하고 활동하던 주민 대부분은 만세시위에 참여한 것이다.
1919년 3월 30일 수암면 비석거리,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사태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고 일제 경찰이 표현할 정도였다.
인근 지역 18개리에서 모여든 군중은 2000여명. 당시 수암면 인가가 8000명 남짓이니 어린이와 노인 여성을 제외하고 활동하던 주민 대부분은 만세시위에 참여한 것이다.
안산 독립운동의 역사
안산지역 주민들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을 계기로 우리나라 내정 간섭을 한 시기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다양한 형태로 저항운동을 전개하였다. 1895년 을미개혁.을미사변.단발령 등에 반대하여 안산 지역 주민들이 안산 관아를 습격하고, 관리들의 주택 8채를 공격하여 파괴시켰다. 안산의 경우 당시 행정구역 상 시흥.부천.수원군에 속하였는데, 이 지역에서는 경기도 지역 중 가장 많은 횟수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안산지역에서도 도시로부터 점차 농촌지역으로 파급되며 3월 하순부터 농민이 시위의 주역을 이루었다. 또한 이곳의 시위 주동자들도 어떤 특정한 지도 사상이나 정치결사체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지도된 운동이 아니라, 다양한 민중이 스스로의 사상과 투쟁방법을 통하여 일으킨 만세운동이었다. 1919년 3월 30일 오전 10시 시흥군 수암면 비석거리에는 18개 리에서 모인 2,000여 명의 주민이 만세시위를 했다. 3월 31일 부천군 대부면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고, 4월 4일 시흥군 군자면에서는 만세 운동 주도자들이 군자면 내의 구 시장 터에서 시위를 모의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주모자들이 체포되었다.
안산 3.1운동의 주역들
윤병소, 홍순칠, 윤동욱, 김병권, 이봉문, 유익수, 김윤규, 노병상, 홍원표, 권희, 장수산, 강은식, 김천복
안산지역 주민들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을 계기로 우리나라 내정 간섭을 한 시기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다양한 형태로 저항운동을 전개하였다. 1895년 을미개혁.을미사변.단발령 등에 반대하여 안산 지역 주민들이 안산 관아를 습격하고, 관리들의 주택 8채를 공격하여 파괴시켰다. 안산의 경우 당시 행정구역 상 시흥.부천.수원군에 속하였는데, 이 지역에서는 경기도 지역 중 가장 많은 횟수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안산지역에서도 도시로부터 점차 농촌지역으로 파급되며 3월 하순부터 농민이 시위의 주역을 이루었다. 또한 이곳의 시위 주동자들도 어떤 특정한 지도 사상이나 정치결사체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지도된 운동이 아니라, 다양한 민중이 스스로의 사상과 투쟁방법을 통하여 일으킨 만세운동이었다. 1919년 3월 30일 오전 10시 시흥군 수암면 비석거리에는 18개 리에서 모인 2,000여 명의 주민이 만세시위를 했다. 3월 31일 부천군 대부면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고, 4월 4일 시흥군 군자면에서는 만세 운동 주도자들이 군자면 내의 구 시장 터에서 시위를 모의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주모자들이 체포되었다.
안산 3.1운동의 주역들
윤병소, 홍순칠, 윤동욱, 김병권, 이봉문, 유익수, 김윤규, 노병상, 홍원표, 권희, 장수산, 강은식, 김천복
1919년 3월 1일
일제의 만행에 항거하여 독립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
일제의 만행에 항거하여 독립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