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 공적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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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정리 산53
탐방로그
이광희 선생의 공적 안내판을 탐방하기 위해 세종시 전의면 신정리 산53를 찾아왔다. 인근에 사시는 주민에게 물으니 오른쪽 그물망 너머 방향의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안내해주신대로 갔더니 '독립유공 애국지사 이광희'라고 적힌 공적 안내판을 찾을 수 있었다. 이광희 선생은 애국지사 이장희 선생과 형제관계라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인근 주민분께 여쭤보니 위 사진의 오른쪽 그물망 너머로 올라가야 공적 안내판이 나온다고 한다.
신문에서 보았던 안내판이 보였다. 언론에서는 이 안내판을 '공적기념비'라고 부르고 있었다.
GPS 상의 주소는 세종시 전의면 신정리 산 53이다.
독립유공애국지사 이광희
독립유공애국지사 이광희
관리번호 : 32650 / 성명 : 이광희 / 본적 : 충청남도 연기 全義(전의) 新井(신정) 131
1895.05.13. ~ 1943.08.01.
충남 연기(燕岐) 사람이다. (현 세종시, 2012년 7월 행정구역 개편) 그는 1919년 3월 13일 충남 연기군 전의면(全義面) 신정리(新井里)에서 이수욱(李秀郁)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신정리의 만세시위는 이수욱이 광무황제(光武皇帝) 인산(因山)을 다녀온 뒤 3월 7일부터 유상억.윤상원(尹相元) 등과 함께 계획하면서 추진되었다. 이들은 3월 13일 전의(全義) 장날에 거사하기로 정하고, 태극기와 선언서 등을 제작.인쇄하였다. 그리하여 거사 당일인 3월 13일에 이광희 등은 시장에 이르러 미리 연락하여 모인 군중들과 함께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 행진하였다. 이로써 그는 일경에 피체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19년 4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5월 9일 경성복심법원과 6월 7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