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두옥 묘

4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 337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 3374 애국지사 양두옥의 묘를 찾았다.
愛國志士 梁斗玉 之墓(애국지사 양두옥 지묘)
공은 서라 개국왕이신 시조 양을나의 후손으로 제주 양씨 천호공 가령파 제23세손이시며 해방 후 3대 한림면장을 지냄. 고는 류향별감 휘 공백 비는 숙부인 남평문씨이시다. 배는 양천허씨 관아이시며 자는 종구 종찬 종석 종철 종대 종오 녀는 금자 청자 종희 종숙 종순 종심 1남 손 선정 윤택 2남 손 정훈 선희 3남 손 지영 은성이다.
양두옥 지사는 1914년 1월 27일 한경면 신창리에서 부 양공 백모 문숙부의 3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으며 1928년 2월 신창야광소년 단에 입단 동년 3월에 구우보통학교 제 6학년을 졸업하여 동년 제주공립농업학교에 입학 1931년 3월 제3학년의 전과정을 수료하였지만 일본국가와 동방요배를 제대로하지 않자 성행불발량으로 다른 동급생은 퇴학 지사는 유급시키자 이에 분개한 동급생 10여 명과 같이 일본인 교사에게 실력으로 항의하다 일경에 피체되어 1932년 3월 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언도받아 귀향하였으나 동년 3월 하순 항일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본적지에서 5인조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농민부를 담당하고 동년 5월 1일에는 노동자 농민의 단결력 과시를 위하여 서당학생 백여명을 인솔 용수리를 향하여 시위행진을 하다 일경에 해산되고 8월에는 신창서당의 공립보통학교 승격을 통한 식민지 교육에 항거하는 연설과 1933년 1월 제주농민조합 창립준비위원회가 결성되자 동지 획득에 힘쓰다
1934년 일경에 피체되어 1937년 4월 1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고 1965년 2월 25일 타계하셨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서기 1996년 4월 일 북제주군수 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