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규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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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강동 193-3
탐방로그
박두규 선생의 추모비는 제주시 용강동 193-3에 위치한다. 추모비는 밀양 박씨 가족묘지에 1997년에 세운 것 하나, 2009년에 세운 것 하나 총 두 개가 있다. 1997년에 건립한 것은 가족들과 박두규 선생 추모비 건립위원회가 세운 것이며, 2009년에 세운 것은 선생이 2008년 애족장을 추서받은 이후 제주도 차원에서 건립한 것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박두규 선생의 추모비가 있는 곳은 제주시 용강동 193-3 밀양박씨 가족묘지에 1997년과 2009년에 세운 2개의 추모비가 있다.
1997년에 세운 〈애국지사 朴斗圭선생 추모비〉

공은 망국의 치욕에 울분을 품었던 열혈남아이다. 1919년 조천 기미 독립만세의 선도자로서 3월23일 연행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8월형이 확정되어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1월 19일 석방되어 끝내 절의를 굽히지 않고 同味會를 조직 민중계목을 통해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자 왜경의 미행 감시에 시달려 황해의 연평도로 은신 광복의 날을 고대하였다. 공의 본관은 밀양이요 아호는 常光이며, 아버지 朴熙亨과 어머니 金仲亨의 장남으로 1987년 6월14일 조천리 2755에서 태어나 제주농업학교를 6회로 졸업하고 향리의 신명사숙에서 교편을 잡아 민족교육에 열정을 쏟던 중 문도를 일으켜 조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공은 淸州韓氏 元斌과 만나 銓祐 銓祚 銓祜 銓祗 銓訓 銓秘 銓福 七雄을 낳았다. 조국이 광복되어 며칠 지나 8남을 낳자 銓擇解放이란 뜻으로 銓解라 명명하고 남하하려 하자 삼팔선이 막혀 황해도 해주군 취하면에 살았다. 1950년 한국동란의 와중에 銓解는 어머니 梁春錫의 등에 업혀 남하하였기에 조상을 위한 향화는 이었으니 천우신조가 아닌가! 아! 常光은 항상 빛나는 선각자로다. 이 땅을 사랑했길레 애국의 표상이요 후생을 가르쳤기에 애복의 본보기였네. 공의 탄신 일백주년에 즈음하여 그 위대한 생애에 고개 숙이네.
부인 梁春錫 아들 朴銓解 며느리 李美成

손 경득 경삼 손녀 경란 손녀사위 강필종

현손 강민재
애국지사 朴斗圭선생추모비건립위원회
代表 朴偉圭
아들 제주도교육청장학사 銓解 삼가 세움
서기 1997년 歲在丁丑 청명날
북제주군교육장 金燦洽 글을 짓고
대울 윤호삼은 글씨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