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계 광복의사 경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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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이동 3135
탐방로그
제주도 제주시 오라이동 3135 문연사와 조설대를 찾아왔다. 조설대(朝雪臺)는 한일 강제합방의 수치를 설욕하겠다는 의미의 마애명(磨崖銘: 암각문)을 새긴 곳이다. 이 곳에는 집의계 광복의사경모비(集義契光復義士敬慕碑)를 비롯하여 여러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조설대를 새긴 마애명은 현무암 자연석에 새겨져 있어, 현재는 보호석으로 가려져 있고 후대에 대한광복의사(大韓光復義士), 조설대(朝雪臺)라는 비석을 동산 위에 각기 따로 세웠다. 대한광복의사비는 일명 12인비라고도 하는데, 집의계를 구성한 12명의 유의 이름을 새겼다. 그 옆에 조설대 비석이 건립되어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集義契 光復義士 敬慕碑(집의계 광복의사 경모비)
集義契 宣誓文(집의계 선서문)

吾等은 半萬年 歷史를 負戴한 우리 百姓으로서 朝鮮의 確固不動한 獨立과 守古開化 兩黨紛爭과 奸臣謀利輩 爲政과 倭寇와 倭寇侵入之紛爭을 義擧로 抗拒하여 忠君愛國과 禮義道德을 萬天下百姓들에게 感心이 되도록 行動하며 倭人을 一刀一劍에 殺戮할 것을 首領代表 李膺鎬는 契員과 더불어 宣誓한다.

광무 9년 3월, 집의계 선서문

震翁 李膺鎬(진옹 이응호, 오라) 少明 金佐謙(소명 김좌겸, 오라), 柏軒 金炳潞(백헌 김병로, 이호), 蓮叟 金炳龜(연수 김병구, 도평), 石峰 徐丙壽(석봉 서병수, 대구) , 慕松齋 高錫九(모송재 고석구, 오라) , 心齋 金錫翼(심재 김석익, 이도), 摹軒 姜哲鎬(모헌 강철호, 대정), 小野 金履仲(소야 김이중, 화북), 晩覺 康錫宗(만각 강석종, 오라), 野隱 林成淑(야은 임성숙, 대정)
제주 제주시 오라이동 3135에 위치한 집의계 광복의사 경모비를 찾아왔다.
문연사(文淵社) / 소재지: 제주시 연미마을
문연사는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참판(參判)의 유적(遺蹟)과 귤암(橘巖) 이기온(李基) 선생의 유덕(遺徳)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1년 1월에 그의 제자와 지사(志士)들이 귤암의 유허인 오라동 2951(현 제주문화방송, 옛 북제주 군청 주변)에 시설하여 향사(享祀)하던 제단(祭壇)이며 귤암의 비(碑)는 면암참판 유배시 유필을 음각(陰刻)한 것이다.
귤암선생은 광해군에 직간(直諫)하다가 유배된 충신 간옹(艮翁) 이익(李瀷)의 후손으로 제주에 유배온 면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향리후진 교육에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또 귤암선생의 문하생들은 항일운동에 관여했던 조설대(朝雪臺) 집의계(集義契)의 주축이 되었다.
이 곳 문연사는 1977년 5월 신제주가 건설되면서 도시 계획에 저촉되어 이곳으로 이설 하였으며 지금도 여러 후학과 뜻있는 사람들이 음력(陰曆) 정월(丁月) 중정(中丁)에 제(祭)를 지내고 있다.

조설대(朝雪臺) / 소재지: 제주시 연미마을
이 조설대는 1905년 제2차 한일협약(乙巳條約)의 체결후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일합방)하자 이응호(李膺鎬)를 중심으로 한 12인의 소장파 유림(儒林)들이 집의계(集義契)란 모임을 결성 이곳에 모여 항의 의지를 굳히고 울분을 달래며 광복투쟁을 결의하여 석벽에 "朝朝雪臺(조설대)"를 음각(陰刻)하였다.
조설대의 뜻은 조선(朝鮮)의 수치를 설욕(辱)하겠다는 뜻이며 집의계 동지 12인은 진옹(震翁) 이응호(오라인 본관 경주), 소명(少明) 김좌겸(오라인 본관 광산), 백헌(柏軒) 김병로(이호인 본관 광산), 석봉(石峯) 서병수(대구인 본관 달성), 연수(蓮叟) 김병구(도평인 본관 광산), 모송재(慕松齋) 고석구(오라인 본관 제주), 심재(心齋) 김석익(이도인 본관 광상), 죽헌(竹軒) 김기수(영평인 본관 나주), 모헌(慕軒) 강철호(대정인 본관 진주), 소야(小野) 김이중(거로인 본관 나주), 만각(晩覺) 강석종(오라인 본관 신천), 야은(野隱) 임성숙(대정인 본관 평택) 등이다. 특히 이응호는 집의계의 대표로 활약하며 "탁라국서(乇羅國書)"와 김석익의 "탐라기년(耽羅記年)"은 민족혼을 지키려고 기술한 중요한 뜻이 담겨있는 저서이다. 또 이곳 조설대는 마을 고로(古老)들의 구전에 의하면 조선중엽 이후 국상을 당하였을시 리민들이 모여 곡하던 망곡(望哭)의 터로도 알려진 곳이다.
조설대(朝雪臺)는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로 합방 당하자 울분을 참지 못한 제주의 유림 12인이 의병 활동을 하려고 집의계(集義契)를 결성하고, “조선의 수치를 설욕하겠다”는 뜻의 마애명(磨厓銘)을 새긴 곳이다.
집의계 광복의사 경모비는 이러한 애국지사들의 독립정신과 투혼을 기리고자 건립된 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