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상도리 471-35
- 탐방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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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박물관은 제주시 구좌읍 상도리 471-35에 위치한다.
이 곳은 제주 해녀들의 모습과 삶을 조명하는 동시에, 일제강점기 항일 투쟁에 나섰던 해녀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1차 세화리 장터 시위 요구조건
감태재에 대한것
1. 판매문제는 지금부터 2주내로 해결할것
2. 가격등급은 지정한대로 할 것
3. 계약금은 생산자에게 보관하게 할 것
4. 악덕상인에게 금후 상권 절대 불허
5. 계약을 무시하고 상인을 옹호한 서기 즉시 면직
6. 등급을 마음대로 구별한 무능한 서기 반대
7. 물품 인도 불이행
생복에 관한것
1. 금주 2주내로 완전 해결할 것
2. 지정 매수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
3. 계약금은 즉시 내어 줄 것
4. 악덕상인에게 금후의 상권 절대 불허
5. 일체의 지정 판매 절대 반대
6. 일체의 계약보증금은 생산자 보관
조합에 관한 것
1. 미성년, 40세 이하에게 조합비 부과 반대
2. 병 등으로 인하여 입어 못한 자에게 조합비 면제
3. 위선적 우량조합원 표명 철폐
4. 총대 지렵 공선
5. 조합재정 공개
2차 세화리 조재소 시위 요구조건
1. 일체의 지정판매 절대 반대
2. 일체의 계약보증금은 생산자가 보관
3. 미성년과 40세 이상의 해녀는 조합비 면제
4. 병 등으로 인하여 입어 못한 자에게 조합비 면제
5. 출가증 무료 급여
6. 총대는 리별 공선
7 조합재정 공개
8. 상인을 옹호한 서기 즉시 면직
감태재에 대한것
1. 판매문제는 지금부터 2주내로 해결할것
2. 가격등급은 지정한대로 할 것
3. 계약금은 생산자에게 보관하게 할 것
4. 악덕상인에게 금후 상권 절대 불허
5. 계약을 무시하고 상인을 옹호한 서기 즉시 면직
6. 등급을 마음대로 구별한 무능한 서기 반대
7. 물품 인도 불이행
생복에 관한것
1. 금주 2주내로 완전 해결할 것
2. 지정 매수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
3. 계약금은 즉시 내어 줄 것
4. 악덕상인에게 금후의 상권 절대 불허
5. 일체의 지정 판매 절대 반대
6. 일체의 계약보증금은 생산자 보관
조합에 관한 것
1. 미성년, 40세 이하에게 조합비 부과 반대
2. 병 등으로 인하여 입어 못한 자에게 조합비 면제
3. 위선적 우량조합원 표명 철폐
4. 총대 지렵 공선
5. 조합재정 공개
2차 세화리 조재소 시위 요구조건
1. 일체의 지정판매 절대 반대
2. 일체의 계약보증금은 생산자가 보관
3. 미성년과 40세 이상의 해녀는 조합비 면제
4. 병 등으로 인하여 입어 못한 자에게 조합비 면제
5. 출가증 무료 급여
6. 총대는 리별 공선
7 조합재정 공개
8. 상인을 옹호한 서기 즉시 면직
제주해녀항일운동과 혁우동맹
혁우동맹은 항일 비밀결사단체로서 1930년 3월 1일 결성되었다. 신재홍, 강관순, 문도배, 오문규, 김순종 등을 중심으로 한 이들은 일제 식민지 수탈정책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해녀들의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야학을 통해 해녀들을 학습시키는 등 조직적인 항일운동리 이루어지도록 제주해녀항일운동의 배후 역할을 수행하였다.
혁우동맹은 항일 비밀결사단체로서 1930년 3월 1일 결성되었다. 신재홍, 강관순, 문도배, 오문규, 김순종 등을 중심으로 한 이들은 일제 식민지 수탈정책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해녀들의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야학을 통해 해녀들을 학습시키는 등 조직적인 항일운동리 이루어지도록 제주해녀항일운동의 배후 역할을 수행하였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의 해녀 대표 5인
제주해녀항일운동은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고순효(본명 고차동), 김계석 5인의 해녀 대표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혁우동맹 산하 하도강습소 1기 졸업생들로 야학을 통해 민족교육을 받았으며, 청년 민족운동가들과 연계하여 제주해녀항일운동을 단순한 생존권 투쟁의 차원에서 항일운동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공헌하였다. 이들은 일제 경찰의 폭력 진압에 의해 동료 해녀 30여 명과 함께 구속된 이후에도 자신들이 주모자임을 자임하여 동료 해녀들을 석방시키는 등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이끈 해녀 대표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고순효(본명 고차동), 김계석 5인의 해녀 대표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혁우동맹 산하 하도강습소 1기 졸업생들로 야학을 통해 민족교육을 받았으며, 청년 민족운동가들과 연계하여 제주해녀항일운동을 단순한 생존권 투쟁의 차원에서 항일운동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공헌하였다. 이들은 일제 경찰의 폭력 진압에 의해 동료 해녀 30여 명과 함께 구속된 이후에도 자신들이 주모자임을 자임하여 동료 해녀들을 석방시키는 등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이끈 해녀 대표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다.
온평초등학교 해녀공로비
해녀박물관
해녀의 집
제주의 초가는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 흙, 나무, 띠를 이용해서 집을 지었다.
강한 비바람을 이겨내기 위하여 초가지붕을 띠줄로 동여 메었고,
벽도 돌을 이용하여 지붕까지 쌓았으며, 울타리 역시 돌담으로 에워 쌓았다.
초가의 내부구조는 방, 상방(마루), 정지(부엌), 고팡(광), 굴묵(난방시설)으로 나누었으며,
마당에는 장독대, 통시(화장실), 우영(텃밭)이 있다.
*제주의 전통 초가는 안거리(안채), 밖거리(바깥채), 쇠막(외양간, 창고)이 분리된
'ㄷ'자 형태로 부모와 결혼한 자식이 함께 거주하면서도, 서로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독특한 주거 형태이다.
제주의 초가는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 흙, 나무, 띠를 이용해서 집을 지었다.
강한 비바람을 이겨내기 위하여 초가지붕을 띠줄로 동여 메었고,
벽도 돌을 이용하여 지붕까지 쌓았으며, 울타리 역시 돌담으로 에워 쌓았다.
초가의 내부구조는 방, 상방(마루), 정지(부엌), 고팡(광), 굴묵(난방시설)으로 나누었으며,
마당에는 장독대, 통시(화장실), 우영(텃밭)이 있다.
*제주의 전통 초가는 안거리(안채), 밖거리(바깥채), 쇠막(외양간, 창고)이 분리된
'ㄷ'자 형태로 부모와 결혼한 자식이 함께 거주하면서도, 서로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독특한 주거 형태이다.
제주해녀의 물옷과 물질도구
불턱
동그렇게 돌담을 쌓아 바람을 막고 노출을 차단한 곳으로, 해녀들이 잠수복을 갈아입근 노천 탈의장이다. 이곳에서는 불을 지펴 추위를 녹이며, 동네 소식을 전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물질기술을 전수하거나 해녀회의를 하는 등 해녀 공동체를 형성하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 1980년도부터 목욕시설을 갖춘 현대식 탈의장이 지어지면서 해녀들의 불턱 이용은 줄어 들었다.
동그렇게 돌담을 쌓아 바람을 막고 노출을 차단한 곳으로, 해녀들이 잠수복을 갈아입근 노천 탈의장이다. 이곳에서는 불을 지펴 추위를 녹이며, 동네 소식을 전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물질기술을 전수하거나 해녀회의를 하는 등 해녀 공동체를 형성하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 1980년도부터 목욕시설을 갖춘 현대식 탈의장이 지어지면서 해녀들의 불턱 이용은 줄어 들었다.
제주 해녀들은 예로부터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혹독한 노동과 과다한 조세로 인해 힘겨운 삶을 이어왔다. 그러나 제주 해녀들은 억척스럽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삶을 지켜왔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 오랜기간동안 투쟁을 거듭해왔다. 제주 해녀들의 항일운동은 일제의 경제수탈에 맞선 생존권수호를 위한 투쟁인 동시에, 일제의 수탈정책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항일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