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산16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동학혁명모의탑(동학혁명모의탑)
各里 里執鋼 座下(각리 리집강 좌하)
위와 같이 격문을 사방에 전하니 여론이 물끓듯하였다. 매일같이 난망을 부르던 민중들은 곳곳에 모여서 말하되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되었지 그냥 이대로 지나서야 백성이 한사람이나 어디 남어 있겠나'하며 그날이 오기만 기다리더라.
이때에 도인들은 선후책을 토의 결정하기 위하여 고부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가에 도소를 정하고 매일 구름같이 모여 차례를 결정하니 그 결의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一. 고부성을 점령하고 조병갑을 목 베어 죽일 것.
一. 군기고와 화약고를 점령할 것.
一. 군수에게 아부하여 백성을 침탈한 탐리를 엄하게 징벌할 것.
一. 전주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나아갈 것.
위와 같이 격문을 사방에 전하니 여론이 물끓듯하였다. 매일같이 난망을 부르던 민중들은 곳곳에 모여서 말하되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되었지 그냥 이대로 지나서야 백성이 한사람이나 어디 남어 있겠나'하며 그날이 오기만 기다리더라.
이때에 도인들은 선후책을 토의 결정하기 위하여 고부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가에 도소를 정하고 매일 구름같이 모여 차례를 결정하니 그 결의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一. 고부성을 점령하고 조병갑을 목 베어 죽일 것.
一. 군기고와 화약고를 점령할 것.
一. 군수에게 아부하여 백성을 침탈한 탐리를 엄하게 징벌할 것.
一. 전주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나아갈 것.
里 里執鋼 座下(각리 리집강 좌하)
위와 같이 격문을 사방에 전하니 여론이 물끓듯하였다. 매일같이 난망을 부르던 민중들은 곳곳에 모여서 말하되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되었지 그냥 이대로 지나서야 백성이 한사람이나 어디 남어 있겠나'하며 그날이 오기만 기다리더라.
이때에 도인들은 선후책을 토의 결정하기 위하여 고부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가에 도소를 정하고 매일 구름같이 모여 차례를 결정하니 그 결의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一. 고부성을 점령하고 조병갑을 목 베어 죽일 것.
一. 군기고와 화약고를 점령할 것.
一. 군수에게 아부하여 백성을 침탈한 탐리를 엄하게 징벌할 것.
一. 전주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나아갈 것.
위와 같이 격문을 사방에 전하니 여론이 물끓듯하였다. 매일같이 난망을 부르던 민중들은 곳곳에 모여서 말하되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되었지 그냥 이대로 지나서야 백성이 한사람이나 어디 남어 있겠나'하며 그날이 오기만 기다리더라.
이때에 도인들은 선후책을 토의 결정하기 위하여 고부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가에 도소를 정하고 매일 구름같이 모여 차례를 결정하니 그 결의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一. 고부성을 점령하고 조병갑을 목 베어 죽일 것.
一. 군기고와 화약고를 점령할 것.
一. 군수에게 아부하여 백성을 침탈한 탐리를 엄하게 징벌할 것.
一. 전주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나아갈 것.
동학혁명 지도자들의 이력이 새겨져 있다.
전봉준선생
송두호선생
정종혁선생
송대화선생
김도화선생
송주옥선생
송주성선생
황홍모선생
최○열선생
이봉근선생
황자옥선생
김응칠선생
○○○선생
이문형선생
송국섭선생
이성하선생
손여옥선생
최경선선생
임○○선생
송인호선생
전봉준선생
송두호선생
정종혁선생
송대화선생
김도화선생
송주옥선생
송주성선생
황홍모선생
최○열선생
이봉근선생
황자옥선생
김응칠선생
○○○선생
이문형선생
송국섭선생
이성하선생
손여옥선생
최경선선생
임○○선생
송인호선생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산16 마을입구 동학혁명 모의탑
동학혁명모의탑
조선 후기에 이르러 탐관오리의 수탈과 폭정이 극에 달해 사회 질서가 문란해지고, 외세의 침탈마저 노골화되니 백성은 의지할 데 없는 처지가 되어 원성이 하늘에 이르렀다. 1893년 11월, 이곳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에 전봉준등 20명이 모여 평등사회 건설과 우국충정의 불타는 마음으로 사발통문 거사계획을 세우며 새로운 세상을 결의하였다. 그 결과 1894년 1월 10일 고부봉기를 단행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지평을 연 민족사의 대사건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러한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을 널리 기념하기 위하여 1969년 4월 '동학농민혁명 모의탑 건립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이 탑을 세웠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탐관오리의 수탈과 폭정이 극에 달해 사회 질서가 문란해지고, 외세의 침탈마저 노골화되니 백성은 의지할 데 없는 처지가 되어 원성이 하늘에 이르렀다. 1893년 11월, 이곳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에 전봉준등 20명이 모여 평등사회 건설과 우국충정의 불타는 마음으로 사발통문 거사계획을 세우며 새로운 세상을 결의하였다. 그 결과 1894년 1월 10일 고부봉기를 단행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지평을 연 민족사의 대사건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러한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을 널리 기념하기 위하여 1969년 4월 '동학농민혁명 모의탑 건립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이 탑을 세웠다.
동학혁명모의탑(동학혁명모의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