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개남 처형지 곤지산 안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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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 산1-9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천주교 순교터 안내문에서 길 건너편
곤지산
곤지산은 고덕산의 산세가 전주의 남동방향으로 뻗어나 멈춘 봉우리이다. 전주부서을 에워 싼 산세가운데 건지산과 대응되는 산이다.
곤지산은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이 산에는 전주천에 깊숙하게 내려 뻗은 지형으로 깍아지른 절벽과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 있었고, 빛깔이 푸르스름하여 이름 붙여진 초록바위가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됬던 순교지였으며 동학농민군 지도자 김개남 장군이 참형당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곤지산은 희귀종인 이팝나무 군락지로 해마다 5월이면 이팝나무의 하얀 꽃이 피어 오른다.
곤지산 초록 바위
곤지삭 끝자락이 전주천과 만나는 곳.
싸전다리 남서쪽 남부시장 건너편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의 무성한 속에
초록바위가 숨어 있다. 1936년 홍수로 재방공사를 하며서 상당부분 깍여서 현재로서는
완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없지만, 기록에 의하면 초록바위는 깍아자른 절벽으로 그 산세가
갈마음수격으로 '말이 풀밭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초록바위라 명명했다고 한다.
5월마다 200살이 넘은 이팝나무 24그루의 하얀 꽃구름에 덮이는 이 바위는 조선시대 죄인들의
형을 집행하던 형장이었다.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던 곳이기도 하다.
전주천 외쪽으로 도로가 나기 전, 초록바위는 전주천변에 솟은 높은 낭떠러지였다.
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 산 1-9 초록바위 건너편 김개남 장군 처형지 곤지산 안내석을 찾았다.
천주교 순교터 초록바위
이곳은 1867년 가을 천주교 신자인 15세 두 소년 남명희와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홍봉주의 아들이 처형된 순교터이다. 흥선대원군은 집권하여 쇄국정책을 폈는데, 천주교 신자들이 프랑스 세력과 통한다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종교박해인 병인박해를 일으켜 신도 만 여명이 처형되었다. 흥선대원군은 승지 남홍삼(요한)성인과 진사 홍봉주(토마스)를 천주교 괴수로 꼽아 1866년 3월 7일 서울 서소문밖에서 목을 베어 죽였다. 또한 나라 법 대로 남종삼과 홍봉주의 가족을 처벌하였는데 돈령부동지사를 지낸 남종삼의 바어지 남송교(아우구스티노)는 그해 4월17일 공주 옥에서 순교하고, 14세된 남명희(명숙)와 홍봉주의 아들을 처형할 수 있는 법적 나이인 15세가 될 때까지 전주 옥에 잡혔다. 전라감사는 남명희를 살려주고자 배교하라고 타일렀으나 믿음의 근본은 오로지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데 있습니다. 천주님은 천지의 대군대부이신데 어찌 배교할 수 있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전라감사는 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이 나이가 차자 1867년 가을 쯤 차마 목을 베어 죽일 수 없어 초록바위에서 전주천 물속으로 떠밀어 죽였다. 순교자 홍 소년은 1801년 서울에서 순교한 진사 홍낙민(루가) 전주에서 순교한 홍재영 아버지 홍봉주에 이어 4대째 순교자였고, 남명희의 가문은 3대가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