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유정리 597-1
- 탐방로그
- 전해산 기념관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휴관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한말 호남의병장 전해산
한말 호남의병장 전해산
전해산(全海山), 1879.12.1 ~ 1910.8.23
본관 천안(天安), 자 기홍(基洪), 호 해산(海山), 전북 임실(任實) 출생이다. 1907년 이석용, 1908년 조경환 의진에 참여하였다가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이어, 호남연합의병부대인 호남동의단의 대장으로 활약하다가 1909년 12월 18일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어 이듬해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전해산(全海山), 1879.12.1 ~ 1910.8.23
본관 천안(天安), 자 기홍(基洪), 호 해산(海山), 전북 임실(任實) 출생이다. 1907년 이석용, 1908년 조경환 의진에 참여하였다가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이어, 호남연합의병부대인 호남동의단의 대장으로 활약하다가 1909년 12월 18일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어 이듬해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천하의 대의(大義)가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우리의 땅은 한 치라도 왜적에게 줄 수 없다.
둘째, 우리의 백성은 한 명이라도 오랑캐가 될 수 없다.
셋째, 우리의 도의(道義)는 하루라도 땅에 떨어질 수 없다.
격문 중에서
첫째, 우리의 땅은 한 치라도 왜적에게 줄 수 없다.
둘째, 우리의 백성은 한 명이라도 오랑캐가 될 수 없다.
셋째, 우리의 도의(道義)는 하루라도 땅에 떨어질 수 없다.
격문 중에서
내가 죽은 후에 나의 눈을 배어 동해(東海)에 걸어두라. 너희 나라가 망하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리라!
- 순국 전 최후진술에서 일본인 재판장을 향해 남긴 말
- 순국 전 최후진술에서 일본인 재판장을 향해 남긴 말
전해산 의병장 제당이 기념관 옆 우측에 있다.
海山齊(해산재)
全海山記念館(전해산 기념관)
전해산 의병장 흉상
장수군 번암면 유정리 589 호남의병장 전해산 기념관을 찾았다.
전해산 기념관
한말 호남의병장 전해산
전해산(全海山), 1879.12.1 ~ 1910.8.23
본관 천안(天安), 자 기홍(基洪), 호 해산(海山), 전북 임실(任實) 출생이다. 1907년 이석용, 1908년 조경환 의진에 참여하였다가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이어, 호남연합의병부대인 호남동의단의 대장으로 활약하다가 1909년 12월 18일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어 이듬해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한말 호남의병장 전해산
전해산(全海山), 1879.12.1 ~ 1910.8.23
본관 천안(天安), 자 기홍(基洪), 호 해산(海山), 전북 임실(任實) 출생이다. 1907년 이석용, 1908년 조경환 의진에 참여하였다가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이어, 호남연합의병부대인 호남동의단의 대장으로 활약하다가 1909년 12월 18일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어 이듬해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