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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북도 익산시 중앙동2가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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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시 중앙동2가 40-3 익산근대역사관 애국지사 삼산 김병수 선생이 운영하던 병원 삼산의원을 찾았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 변규섭(邊圭燮 1911 ~ 1945) 익산 금마면. 조선인 청년 및 노동자 단결을 촉구하는 선전격문을 금마장터에 게시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1993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서성군(徐成君 1881 ~ 1909) 우북 출신. 의병장 이기준 휘하의 의병으로 용안면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이던 중 일본순사들의 공격으로 순국했다. 의병운동가로 1996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서재석(徐載錫 1909 ~ 1968) 익산 춘포면. 1929년 광주학생운동 1주년을 기억하고 민족의식 고양을 위해 전주에서 격문을 작성하여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2008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서정만(徐廷萬 1889 ~ 1919) 익산 북일면. 3.1운동 당시 4.4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일본군의 총탄에 현장에서 순국했다. 1991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선백중(宣百仲 1890 ~ 1931) 익산 황화면. 조선독립단에 가입하여 익산군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2016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소내원(蘇來元 1890 ~ 1967) 익산 금마면. 3.1운동에 참여하여 일제에 항거하고 상해로 망명하여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제공했다. 임시정부운동가로 1992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소진석(蘇鎭碩 1897 ~ 1928) 익산 춘포면. 3.1운동 당시 3.28 금마장터 만세운동을 앞장서서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2010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소진형(蘇鎭亨 1886 ~ 1936) 익산 왕궁면. 상해임시정부 수립 후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임시정부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소홍규(蘇洪奎 1882 ~ 1960) 익산 망성면. 3.1운동 당시 대전면민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송일성(宋一成 1893 ~ 1960)익산 북일면. 3.1운동 당시 익산군 천도교도로 만세운동 확산을 위해 함열과 논산지방에 대한 연락과 군중동원 책임을 수행하다가 체포되었다. 1995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송종석(宋宗錫 1883 ~ 미상) 익산 왕궁면. 3.1운동 당시 3.18 금마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2014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송진행(宋鎭行 1870 ~ 미상) 의병장 이석용 휘하 의병으로 진안.임실.장수 일대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의병운동가로 2006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송태식(宋泰植 1884 ~ 1946) 익산 왕궁면. 의병장 유치복 휘하의 의병으로 항일전에 참가했다.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심홍택(沈弘澤 1909 ~ 1959) 익산 삼기면.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이은 동맹휴교를 주동하다가 체포되었다. 학생운동가로 2002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양중석(楊重錫 미상 ~ 1907) 제석 출신. 의병활동을 전개하였고 익산.강경.여산 일대에서 군수품 모집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총살 순국했다. 의병운동가로 1996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엄창섭(嚴昌燮 1892 ~ 1973) 익산 웅포면. 3.1운동 당시 강경읍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엄칠중(嚴七仲 1898 ~ 1961) 이리. 3.1운동 당시 강경읍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2010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유봉우(劉奉祐 1861 ~ 1947) 익산 웅포면. 3.1운동 당시 익산군 천도교도로 웅포면 일대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3월 10일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93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이강만(李康晩 1921 ~ 1956) 익산 황화면. 일제강점기 말 공주농업학교 재학 중 방학으로 고향에 내려와 민족독립의식 고취를 위한 발언으로 체포되었다. 국내 항일가로 2011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이겸중(李謙重 1912 ~ 1948) 익산 금마면. 전주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독서회를 조직하여 사회운동 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가로 2008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이권재(李權載 1922 ~ 미상) 익산 낭산면. 1940년 조선인해방투쟁동맹조직에 참여하여 일제 타도를 목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학생운동가로 2006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이규홍(李圭弘 1877 ~ 1928) 임봉 출신. 1907년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고산.진안.장수.용담 일대에서 일본군과 대항했다. 의병장으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이기영(李琪榮 1849 ~ 1922) 익산 팔봉면. 의병장 이규홍의 부친으로 재산을 매각하여 의병활동 군자금을 제공했다. 의병운동으로 2015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이병기(李秉岐 1892 ~ 1968) 익산 여산면. 조선어학회 활동과 진단학회 창립 발기인이 되어 국학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문화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엄혹한 세월, 항일독립투쟁에 몸과 마음을 바친 이리.익산의 71인 독립유공자들을 기억합니다.
▶ 서성군(徐成君 1881 ~ 1909) 우북 출신. 의병장 이기준 휘하의 의병으로 용안면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이던 중 일본순사들의 공격으로 순국했다. 의병운동가로 1996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서재석(徐載錫 1909 ~ 1968) 익산 춘포면. 1929년 광주학생운동 1주년을 기억하고 민족의식 고양을 위해 전주에서 격문을 작성하여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2008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서정만(徐廷萬 1889 ~ 1919) 익산 북일면. 3.1운동 당시 4.4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일본군의 총탄에 현장에서 순국했다. 1991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선백중(宣百仲 1890 ~ 1931) 익산 황화면. 조선독립단에 가입하여 익산군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2016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소내원(蘇來元 1890 ~ 1967) 익산 금마면. 3.1운동에 참여하여 일제에 항거하고 상해로 망명하여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제공했다. 임시정부운동가로 1992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소진석(蘇鎭碩 1897 ~ 1928) 익산 춘포면. 3.1운동 당시 3.28 금마장터 만세운동을 앞장서서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2010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소진형(蘇鎭亨 1886 ~ 1936) 익산 왕궁면. 상해임시정부 수립 후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임시정부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소홍규(蘇洪奎 1882 ~ 1960) 익산 망성면. 3.1운동 당시 대전면민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송일성(宋一成 1893 ~ 1960)익산 북일면. 3.1운동 당시 익산군 천도교도로 만세운동 확산을 위해 함열과 논산지방에 대한 연락과 군중동원 책임을 수행하다가 체포되었다. 1995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송종석(宋宗錫 1883 ~ 미상) 익산 왕궁면. 3.1운동 당시 3.18 금마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2014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송진행(宋鎭行 1870 ~ 미상) 의병장 이석용 휘하 의병으로 진안.임실.장수 일대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의병운동가로 2006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송태식(宋泰植 1884 ~ 1946) 익산 왕궁면. 의병장 유치복 휘하의 의병으로 항일전에 참가했다.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심홍택(沈弘澤 1909 ~ 1959) 익산 삼기면.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이은 동맹휴교를 주동하다가 체포되었다. 학생운동가로 2002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양중석(楊重錫 미상 ~ 1907) 제석 출신. 의병활동을 전개하였고 익산.강경.여산 일대에서 군수품 모집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총살 순국했다. 의병운동가로 1996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엄창섭(嚴昌燮 1892 ~ 1973) 익산 웅포면. 3.1운동 당시 강경읍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엄칠중(嚴七仲 1898 ~ 1961) 이리. 3.1운동 당시 강경읍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2010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유봉우(劉奉祐 1861 ~ 1947) 익산 웅포면. 3.1운동 당시 익산군 천도교도로 웅포면 일대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3월 10일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93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이강만(李康晩 1921 ~ 1956) 익산 황화면. 일제강점기 말 공주농업학교 재학 중 방학으로 고향에 내려와 민족독립의식 고취를 위한 발언으로 체포되었다. 국내 항일가로 2011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이겸중(李謙重 1912 ~ 1948) 익산 금마면. 전주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독서회를 조직하여 사회운동 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가로 2008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이권재(李權載 1922 ~ 미상) 익산 낭산면. 1940년 조선인해방투쟁동맹조직에 참여하여 일제 타도를 목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학생운동가로 2006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이규홍(李圭弘 1877 ~ 1928) 임봉 출신. 1907년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고산.진안.장수.용담 일대에서 일본군과 대항했다. 의병장으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이기영(李琪榮 1849 ~ 1922) 익산 팔봉면. 의병장 이규홍의 부친으로 재산을 매각하여 의병활동 군자금을 제공했다. 의병운동으로 2015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이병기(李秉岐 1892 ~ 1968) 익산 여산면. 조선어학회 활동과 진단학회 창립 발기인이 되어 국학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문화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엄혹한 세월, 항일독립투쟁에 몸과 마음을 바친 이리.익산의 71인 독립유공자들을 기억합니다.
▶ 이병석(李秉釋 1894 ~ 1930) 익산 여산면. 3.1운동 당시 3.10 여산만세운동 계획을 수립하고 시위행진을 벌이다 체포되었다. 1992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이유상(李有祥 1876 ~ 1941) 익산 황등면. 3.1운동 당시 익산군 천도교도로 이리교구장 이중열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 옥구군 대야면과 군산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다. 2007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이재환(李載煥 1889 ~ 1951) 익산 금마면. 경술국치 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항일운동 전개. 귀국하여 군자금 모집활동 중 체포되었다. 임시정부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이정(李侹 1884 ~ 1925) 익산 여산면. 3.1운동 당시 3.1여산만세운동 계획을 수립하고 시위행진을 벌이다 체포되었다.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이중열(李仲悅 1869 ~ 1928) 익산 북일면. 3.1운동 당시 천도교 이리교구장으로 익산지역 만세운동을 촉발하기 위해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다가 체포되었다. 1992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이형우(李亨雨 1885 ~ 미상) 익산 웅포면. 3.1운동 당시 익산군 천도교도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다. 2012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임규(林圭 1863 ~ 1948) 익산 금마면. 3.1운동 당시 손병희 등이 주축이 된 거족적 독립운동계획에 참여했다.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임영택(林榮澤 1901 ~ 1957) 이리 출신. 갑자연구회. 이리청년연맹 등을 조직하고 신간회 익산지회 창립에 기여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임혁근(林赫根 1898 ~ 1934) 익산 금마면. 갑자연구회 조직과 신간회 익산지회 창립에 기여. 중외일보 이리지국장 재직시절 전북기자단 정기대회 개최로 체포되었다. 국내 항일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장경춘(張京春 1877 ~ 1919) 익산 오산면. 3.1운동 당시 4.4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군의 총탄에 순국했다. 1991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정동식(鄭東植 1850 ~ 1910)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자 포고문과 통곡문을 짓고 의관을 정제하고 공북루(拱北樓)에 올라 자결 순국했다. 1962년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 정진용(鄭晋容 1893 ~ 1965) 익산 여산면. 황해도 서흥군에서 비밀결사 교육자 동지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학생과 농민들에게 민족의식 고취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정판성(鄭判成 1883 ~ 미상) 우북면 출신. 의병장 이규홍 휘하의 의병으로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2015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조남헌(趙南憲 1923 ~ 1996) 이리 출신. 송정섭과 조선독립을 위한 방안을 협의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2013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조용관(趙容寬 1885 ~ 1950) 익산 함라면. 군산에서 노동 운동과 사회 운동의 지도자로 항일투쟁 전개했다. 국내 항일운동가로 2005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최윤보(崔允甫 미상 ~ 1909) 동하 출신. 의병장 이기준 휘하 의병으로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동하다가 일본순사들의 공격으로 교전 중 순국했다. 의병 운동가로 1996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최장윤(崔長潤 1916 ~ 1984) 익산 낭산면. 1945년 중국 일본군헌병대 통역으로 재직 중 체포된 이규학을 구출하고 광복군에 입대했다. 광복군운동가로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홍건표(洪建杓 1923 ~ 1975) 익산 금마면. 항일학생결사인 흑백당을 결성하고 거사를 위해 무기까지 준비하엿으나 경찰의 가택수색으로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학생운동가로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홍순갑(洪淳甲 1896 ~ 1929) 익산 금마면. 3.1운동 후 국내와 만주를 활동무대로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 복역 중 순국했다. 만주항일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홍영섭(洪永燮 1855 ~ 1922) 익산 금마면. 3.1운동 당시 천독교도로 성당면과 낭산면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독립선언서 배포했다. 1996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황염규(黃濂奎 1922 ~ 2003) 익산 함열읍. 김제 치문학교 교원시절 학생들에게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강의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1993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황정환(黃廷煥 1905 ~ 1948) 익산 망성면. 6.10만세운동을 주동하여 현장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황하규(黃河奎 1921 ~ 1950) 이리 출신. 1943년 광복군에 입대하여 대일 선전공작, 적 정보수집, 포로심문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광복군으로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엄혹한 세월, 항일독립투쟁에 몸과 마음을 바친 이리.익산의 71인 독립유공자들을 기억합니다.
▶ 이유상(李有祥 1876 ~ 1941) 익산 황등면. 3.1운동 당시 익산군 천도교도로 이리교구장 이중열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 옥구군 대야면과 군산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다. 2007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이재환(李載煥 1889 ~ 1951) 익산 금마면. 경술국치 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항일운동 전개. 귀국하여 군자금 모집활동 중 체포되었다. 임시정부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이정(李侹 1884 ~ 1925) 익산 여산면. 3.1운동 당시 3.1여산만세운동 계획을 수립하고 시위행진을 벌이다 체포되었다.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이중열(李仲悅 1869 ~ 1928) 익산 북일면. 3.1운동 당시 천도교 이리교구장으로 익산지역 만세운동을 촉발하기 위해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다가 체포되었다. 1992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이형우(李亨雨 1885 ~ 미상) 익산 웅포면. 3.1운동 당시 익산군 천도교도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다. 2012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임규(林圭 1863 ~ 1948) 익산 금마면. 3.1운동 당시 손병희 등이 주축이 된 거족적 독립운동계획에 참여했다.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임영택(林榮澤 1901 ~ 1957) 이리 출신. 갑자연구회. 이리청년연맹 등을 조직하고 신간회 익산지회 창립에 기여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임혁근(林赫根 1898 ~ 1934) 익산 금마면. 갑자연구회 조직과 신간회 익산지회 창립에 기여. 중외일보 이리지국장 재직시절 전북기자단 정기대회 개최로 체포되었다. 국내 항일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장경춘(張京春 1877 ~ 1919) 익산 오산면. 3.1운동 당시 4.4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군의 총탄에 순국했다. 1991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정동식(鄭東植 1850 ~ 1910)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자 포고문과 통곡문을 짓고 의관을 정제하고 공북루(拱北樓)에 올라 자결 순국했다. 1962년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 정진용(鄭晋容 1893 ~ 1965) 익산 여산면. 황해도 서흥군에서 비밀결사 교육자 동지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학생과 농민들에게 민족의식 고취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정판성(鄭判成 1883 ~ 미상) 우북면 출신. 의병장 이규홍 휘하의 의병으로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2015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조남헌(趙南憲 1923 ~ 1996) 이리 출신. 송정섭과 조선독립을 위한 방안을 협의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2013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조용관(趙容寬 1885 ~ 1950) 익산 함라면. 군산에서 노동 운동과 사회 운동의 지도자로 항일투쟁 전개했다. 국내 항일운동가로 2005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최윤보(崔允甫 미상 ~ 1909) 동하 출신. 의병장 이기준 휘하 의병으로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동하다가 일본순사들의 공격으로 교전 중 순국했다. 의병 운동가로 1996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최장윤(崔長潤 1916 ~ 1984) 익산 낭산면. 1945년 중국 일본군헌병대 통역으로 재직 중 체포된 이규학을 구출하고 광복군에 입대했다. 광복군운동가로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홍건표(洪建杓 1923 ~ 1975) 익산 금마면. 항일학생결사인 흑백당을 결성하고 거사를 위해 무기까지 준비하엿으나 경찰의 가택수색으로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학생운동가로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홍순갑(洪淳甲 1896 ~ 1929) 익산 금마면. 3.1운동 후 국내와 만주를 활동무대로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 복역 중 순국했다. 만주항일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홍영섭(洪永燮 1855 ~ 1922) 익산 금마면. 3.1운동 당시 천독교도로 성당면과 낭산면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독립선언서 배포했다. 1996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황염규(黃濂奎 1922 ~ 2003) 익산 함열읍. 김제 치문학교 교원시절 학생들에게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강의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1993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 황정환(黃廷煥 1905 ~ 1948) 익산 망성면. 6.10만세운동을 주동하여 현장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황하규(黃河奎 1921 ~ 1950) 이리 출신. 1943년 광복군에 입대하여 대일 선전공작, 적 정보수집, 포로심문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광복군으로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엄혹한 세월, 항일독립투쟁에 몸과 마음을 바친 이리.익산의 71인 독립유공자들을 기억합니다.
삼산 三山 김병수(金炳洙, 1898~1951, 독립운동가.정치가.의사) - 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회
전북 김제시 백구면 출생. 일제강점기 군산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서울의 남대문 정거장 앞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을 이끌고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19년 2월 25일 이갑성으로부터 200여 맹의 독립선언서를 전달 받고 이튿날 군산에 도착하였고 이후 영명학교 교사 박연세의 집에서 서울의 만세운동 계획을 전하고, 100여 맹의 독립선언서를 전해 준 뒤 지역민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함으로써 3월 5일 군산 지역에서 만세 운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3개월을 복역하였고 출옥 후 1921년 군산 야소교병원을 거쳐 다음해에 익산에 삼산의원을 개원하였습니다. 사재를 털어 광희여숙을 설립하는 등 여성교육에도 공헌하였으며, 28세때는 익산제일교회 장로가 되어 교회에 유치원을 설치하고 익산청년회관도 건립하였습니다. 1945년 8.15해방 후 김병수는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 같은 해 9월 건국준비위원회가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자 이에 항쟁하기 위하여 그 해 12월 이리.익산 독립촉성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에 선출되었습니다. 그 외 1946년 2월 대한독립촉성회 전북지부 부위원장 9월 세브란스 재단법인 이사에 선출되었고 1947년 3월 대한농민총연맹 전북위원장 4월 초대 이리부윤에 취임과 더불어 대한농민총연맹전국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민주국민당 이리시당 부위원장, 1949년에는 민주국민당 전북당지부 최고위원이 되었고 한국전쟁 때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동래 제5육군병원에서 군의관으로 활약하다 유엔군의 진격과 함께 고향에 돌아와 구국총력연맹 위원장으로 활약하였습니다.
전북 김제시 백구면 출생. 일제강점기 군산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서울의 남대문 정거장 앞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을 이끌고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19년 2월 25일 이갑성으로부터 200여 맹의 독립선언서를 전달 받고 이튿날 군산에 도착하였고 이후 영명학교 교사 박연세의 집에서 서울의 만세운동 계획을 전하고, 100여 맹의 독립선언서를 전해 준 뒤 지역민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함으로써 3월 5일 군산 지역에서 만세 운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3개월을 복역하였고 출옥 후 1921년 군산 야소교병원을 거쳐 다음해에 익산에 삼산의원을 개원하였습니다. 사재를 털어 광희여숙을 설립하는 등 여성교육에도 공헌하였으며, 28세때는 익산제일교회 장로가 되어 교회에 유치원을 설치하고 익산청년회관도 건립하였습니다. 1945년 8.15해방 후 김병수는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 같은 해 9월 건국준비위원회가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자 이에 항쟁하기 위하여 그 해 12월 이리.익산 독립촉성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에 선출되었습니다. 그 외 1946년 2월 대한독립촉성회 전북지부 부위원장 9월 세브란스 재단법인 이사에 선출되었고 1947년 3월 대한농민총연맹 전북위원장 4월 초대 이리부윤에 취임과 더불어 대한농민총연맹전국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민주국민당 이리시당 부위원장, 1949년에는 민주국민당 전북당지부 최고위원이 되었고 한국전쟁 때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동래 제5육군병원에서 군의관으로 활약하다 유엔군의 진격과 함께 고향에 돌아와 구국총력연맹 위원장으로 활약하였습니다.
익산근대역사관 - 출처 : 국립익산박물관
2019년 3월 26일 익산의 근대문화유산인 삼산의원(등록문화재 제180호)을 이전.복원하여 '익산근대역사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삼산의원은 1922년 독립운동가 김병수(金炳洙) 선생이 개원하여 조선인들을 위한 진료를 하였으며 1945년 해방 후 한국무진회사, 한국흥업은행, 국민은행으로 사용되는 등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문화재청과 관계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절단 공법 등 원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하여 근대문화유산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하였습니다. 1층 상설 전시실과 2층 기획전시실 및 교육실로 조성됐고 주변의 근대문화유산과 연계하여 익산의 근대역사의 산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2019년 3월 26일 익산의 근대문화유산인 삼산의원(등록문화재 제180호)을 이전.복원하여 '익산근대역사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삼산의원은 1922년 독립운동가 김병수(金炳洙) 선생이 개원하여 조선인들을 위한 진료를 하였으며 1945년 해방 후 한국무진회사, 한국흥업은행, 국민은행으로 사용되는 등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문화재청과 관계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절단 공법 등 원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하여 근대문화유산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하였습니다. 1층 상설 전시실과 2층 기획전시실 및 교육실로 조성됐고 주변의 근대문화유산과 연계하여 익산의 근대역사의 산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익산시 중앙동2가 40-3 익산근대역사관 애국지사 삼산 김병수 선생이 운영하던 병원 삼산의원을 찾았다.
익산근대역사관
익산 중앙동 구 삼산의원 | 등록문화제 제180호
1922년 삼산(三山) 김병수(金炳洙 : 1898~1951)가 건립하였으며, 일제강점기 번화가였던 중앙동에 지어진 큰 규모의 병원시설로 해방 후 한국무진회사(1945), 한국흥업은행(1954), 국민은행(1963)으로 사용되면서 오랫동안 지역 사람들의 향수를 기억하게 하는 건물이다.
구 삼산의원은 2층 건물로 개인이 건립한 건물 중에서는 서양의 고전적 건축양식이 적용된 보기 드문 예로 우리나라에 서양의 고전건축양식이 일제강점기를 거쳐 나타나는 과정과 고전건축양식이 근대건축양식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과도기적 건축구성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양식사적 가치가 있다.
당초 익산시 중앙동 3가 114-2번지에 위치해 있었으나, 건물 보존을 위해 조적 건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절단 해체하여 현재 위치에 이전하였다.
1922년 삼산(三山) 김병수(金炳洙 : 1898~1951)가 건립하였으며, 일제강점기 번화가였던 중앙동에 지어진 큰 규모의 병원시설로 해방 후 한국무진회사(1945), 한국흥업은행(1954), 국민은행(1963)으로 사용되면서 오랫동안 지역 사람들의 향수를 기억하게 하는 건물이다.
구 삼산의원은 2층 건물로 개인이 건립한 건물 중에서는 서양의 고전적 건축양식이 적용된 보기 드문 예로 우리나라에 서양의 고전건축양식이 일제강점기를 거쳐 나타나는 과정과 고전건축양식이 근대건축양식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과도기적 건축구성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양식사적 가치가 있다.
당초 익산시 중앙동 3가 114-2번지에 위치해 있었으나, 건물 보존을 위해 조적 건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절단 해체하여 현재 위치에 이전하였다.
등록문화재 제180호 익산 중앙동 구 삼산의원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 문화재청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 문화재청
■ 이전.복원 배경
「익산 중앙동 구 삼산의원」은 당초 중앙동3가 114-2번지 일원에 있었으나, 노후로 인한 문화유산의 훼손을 방지하고 보존하고자 문화 예술의 거리 내 현 부지로 이전.복원하였습니다. 익산시는 소중한 근대문화유산이 효율적으로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익산근대역사관」으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 해체공정
① 시공 전 삼산의원 ② 지붕 트러스 해체 ③ 폴리우레탄 벽체 보강 ④ H빔 구조 보강 ⑤ 벽체 절단(와이어 커팅) ⑥ 벽체 이동(크레인) ⑦ 벽체 운반(카고크레인) ⑧ 폐기물 정리
■ 이전.복원 공정
① 기초공사(팽이 공정) ② 벽체 조립 ③ 내부 벽체 보강 ④ 2층 벽체 조립 ⑤ 지붕 트러스 ⑥ 지붕 트러스 보강 ⑦ 외부 마감 및 가설 철거 ⑧ 이전 복원 완료
■ 추진현황
2016.05.04 구 삼산의원 보존.관리 방침 결정(이전복원)
2016.06.27 정밀실측 및 이전 복원 설계용역(300일간)
2017.01.12 삼산의원 건물 기부채납
2017.02.01 이전.복원 문화재위원회 승인
2017.03.16 이전.복원 설계심의위원회 개최(수리기술과)
2017.03.23 이전.복원 문화재청 설계승인(수리기술과)
2017.03.28 이전.복원 문화재위원회 보고(근대분과)
2017.04.11 이전.복원 원가심사 승인(전라북도)
2017.05.10 공사 입찰 및 공사 착공
2017.06.08 1차 기술 지도(건물 해체 및 이동 관련)
2017.09.26 해체 공사 완료
2017.09.29 2차 기술 지도(건물 해체 및 이동 관련)
2017.12.29 설계 변경을 위한 공사중지
2018.02.20 3차 기술 지도(건물 조립 및 이동 관련)
2018.03.08 4차 기술 지도(건물 조립 및 이동 관련)
2018.09.17 5차 기술 지도(건물 조립 및 이동 관련)
2019.03.26 익산 근대역사관으로 개관
등록문화재 제180호(지정:2005.6.18.) / 「익산 중앙동 구 삼산의원」 이전.복원 현황
「익산 중앙동 구 삼산의원」은 당초 중앙동3가 114-2번지 일원에 있었으나, 노후로 인한 문화유산의 훼손을 방지하고 보존하고자 문화 예술의 거리 내 현 부지로 이전.복원하였습니다. 익산시는 소중한 근대문화유산이 효율적으로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익산근대역사관」으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 해체공정
① 시공 전 삼산의원 ② 지붕 트러스 해체 ③ 폴리우레탄 벽체 보강 ④ H빔 구조 보강 ⑤ 벽체 절단(와이어 커팅) ⑥ 벽체 이동(크레인) ⑦ 벽체 운반(카고크레인) ⑧ 폐기물 정리
■ 이전.복원 공정
① 기초공사(팽이 공정) ② 벽체 조립 ③ 내부 벽체 보강 ④ 2층 벽체 조립 ⑤ 지붕 트러스 ⑥ 지붕 트러스 보강 ⑦ 외부 마감 및 가설 철거 ⑧ 이전 복원 완료
■ 추진현황
2016.05.04 구 삼산의원 보존.관리 방침 결정(이전복원)
2016.06.27 정밀실측 및 이전 복원 설계용역(300일간)
2017.01.12 삼산의원 건물 기부채납
2017.02.01 이전.복원 문화재위원회 승인
2017.03.16 이전.복원 설계심의위원회 개최(수리기술과)
2017.03.23 이전.복원 문화재청 설계승인(수리기술과)
2017.03.28 이전.복원 문화재위원회 보고(근대분과)
2017.04.11 이전.복원 원가심사 승인(전라북도)
2017.05.10 공사 입찰 및 공사 착공
2017.06.08 1차 기술 지도(건물 해체 및 이동 관련)
2017.09.26 해체 공사 완료
2017.09.29 2차 기술 지도(건물 해체 및 이동 관련)
2017.12.29 설계 변경을 위한 공사중지
2018.02.20 3차 기술 지도(건물 조립 및 이동 관련)
2018.03.08 4차 기술 지도(건물 조립 및 이동 관련)
2018.09.17 5차 기술 지도(건물 조립 및 이동 관련)
2019.03.26 익산 근대역사관으로 개관
등록문화재 제180호(지정:2005.6.18.) / 「익산 중앙동 구 삼산의원」 이전.복원 현황
근대문화유산 기증 안내문 - 기증하신분 성명 : 정봉교
여기 근대문화유산은 1922년 익산시 중앙동 3가 114-2번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삼산의원」이라 불렀습니다.
그 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100년동안의 수많은 풍상을 겪어오면서 풍화산화작용 등으로 심하게 훼손되었으나 우리의 근대문화유산을 후대에 남기고자 한 소유주 정봉교님께서 익산시에 기증한 덕에 「익산 근대역사관」으로 새로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德振四隣덕진사린, 집을 옮겨 이름을 남겼으니 100년의 역사가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익산시는 정봉교님의 아름다운 뜻을 기리기 위하여 여기에 이 글을 새겨두고자 합니다.
익산시
여기 근대문화유산은 1922년 익산시 중앙동 3가 114-2번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삼산의원」이라 불렀습니다.
그 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100년동안의 수많은 풍상을 겪어오면서 풍화산화작용 등으로 심하게 훼손되었으나 우리의 근대문화유산을 후대에 남기고자 한 소유주 정봉교님께서 익산시에 기증한 덕에 「익산 근대역사관」으로 새로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德振四隣덕진사린, 집을 옮겨 이름을 남겼으니 100년의 역사가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익산시는 정봉교님의 아름다운 뜻을 기리기 위하여 여기에 이 글을 새겨두고자 합니다.
익산시
삼산의원 97년의 역사와 삼산 김병수 선생
삼산의원은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인 삼산(三山) 김병수가 1922년에 개원했다. 연면적 289.26㎡의 2층 건물로 건축 벽면을 코니스(Cornice) 장식으로 둘러 당시로서는 규모가 크고 파격적이면서도 멋진 건물로 꼽혔다.
1945년 해방 뒤에는 한국무진회사.한국흥업은행.국민은행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 왼쪽 벽면에 남아있는 금고는 당시 사용했던 실제 금고이며, 1층과 2층의 유리창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했다. 2005년 6월 18일에 등록문화재 180호로 지정했다.
김병수(金炳洙, 1898~1951) 선생은 세브란스 의전 재학 중이던 1919년 2월 26일 군산에 도착 영명학원 교사인 박연세 등에게 독립선언문을 전달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 3월 5일 남대문의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된 후 '보안법위반' 혐의로 약 1년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뒤, 학교를 졸업하고 이리에 삼산의원을 개원했다.
1945년 해방 후 건국과정에서 민족주의 계열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1947년 초대 이리부윤에 취임하기도 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김병수의 아들 김신기는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한센인 마을에서 평생을 의사로 봉직하며 대를 이어 뜻있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삼산의원은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인 삼산(三山) 김병수가 1922년에 개원했다. 연면적 289.26㎡의 2층 건물로 건축 벽면을 코니스(Cornice) 장식으로 둘러 당시로서는 규모가 크고 파격적이면서도 멋진 건물로 꼽혔다.
1945년 해방 뒤에는 한국무진회사.한국흥업은행.국민은행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 왼쪽 벽면에 남아있는 금고는 당시 사용했던 실제 금고이며, 1층과 2층의 유리창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했다. 2005년 6월 18일에 등록문화재 180호로 지정했다.
김병수(金炳洙, 1898~1951) 선생은 세브란스 의전 재학 중이던 1919년 2월 26일 군산에 도착 영명학원 교사인 박연세 등에게 독립선언문을 전달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 3월 5일 남대문의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된 후 '보안법위반' 혐의로 약 1년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뒤, 학교를 졸업하고 이리에 삼산의원을 개원했다.
1945년 해방 후 건국과정에서 민족주의 계열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1947년 초대 이리부윤에 취임하기도 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김병수의 아들 김신기는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한센인 마을에서 평생을 의사로 봉직하며 대를 이어 뜻있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 김근배(金根培 1847 ~ 1910) 이리 모현리.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충절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돌을 안고 우물에 빠져 순절했다.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강인성(姜仁聲 1897 ~ 1930) 익산 웅포면. 군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시가행진을 벌이고 구속자들의 석방 요구 시위를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3.1운동 계열로 1992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고총권(高寵權 1867 ~ 1959) 익산 황화면. 익산군 천도교도로 여산읍에서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고 군중을 규합하다가 체포되었다. 3.1운동 계열로 1992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김광덕(金光德 1885 ~ 1945) 익산 왕궁면. 1919년 3.1운동 당시 3.18 금마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2006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김병호(金秉鎬 1865 ~ 미상) 익산 낭산면. 1919년 3.1운동 당시, 익산군 천도교도로 여산읍에서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고 군중을 규합하다가 체포되었다. 2013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김봉우(金鳳友 1882 ~ 미상) 익산 남일면. 의병장 이원호 휘하의 의병으로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의병운도가로서 1995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김시복(金時福 1885 ~ 미상) 익산 남일면. 완주군 고산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고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발하기 위한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의병운동가로 1995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김용덕(金龍德 1926 ~ 1995) 익산 오산면. 광주사범학교 재학 중 무등독서회를 조직하고 민족의식 고취와 연합군 상륙작전에 호응하여 행동대원으로 활동할 것을 계획하다가 체포되었다. 학생운동으로 2017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김용성(金龍成 1911 ~ 1943) 익산 북일면. 김제청년동맹 백산지부에 가입하여 농민운동을 전개. 사회주의 운동을 펼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으로 2009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김치옥(金致玉 1879 ~ 1934) 익산 오산면. 3.1운동 당시 문용기 열사 등과 함께 4.4만세운동을 기획하고 현장에서 독립선언서 낭독. 일본 헌병대의 고문으로 석방 후 사망했다.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김한규(金漢奎 1900 ~ 1961) 익산 북일면. 고산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동료가 체포되어 순국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수했다. 국내항일가로 2014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김화곤(金華坤 1899 ~ 1944) 익산 금마면. 1927년 신간회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금과 항일의식 고취 활동 수행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김흥여(金興汝 1889 ~ 미상) 익산 출신. 의병장 이원호 휘하의 의병으로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의병운동으로 1995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노환(盧桓 1916 ~ 1994) 익산 황등면. 전주북중학교 교원시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제의 패망을 학생들에게 교육하다가 체포되었다. 문화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문용기(文鏞祺 1878 ~ 1919) 익산 오산면. 3.1운동 당시 4.4만세운동을 주동하였으며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가지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순국했다.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박관옥(朴寬玉 1880 ~ 미상) 우북 출신. 의병장 김경섭 휘하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군자금 모금활동 중 체포되었다. 의병운동으로 2015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박도현(朴道玄 1865 ~ 1919) 익산 춘포면. 3.1운동 당시 4.4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일본군의 총탄에 현장에서 순국했다. 1994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박복순(朴福淳 1888 ~ 미상) 두남 출신. 의병장 유지명 휘하 의병으로 일본군과 무장투쟁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의병운동가로 1995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박사국(朴士國 1888 ~ 1934) 익산 여산면. 1919년 3.1운동 당시 3.10 여산 만세운동 계획을 수립하고 시위행진을 벌이다 체포되었다.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박수문(朴水文 1897 ~ 1937) 익산 용안면. 3.1운동 당시, 서울에서 유학 중 서울의전 학생 김병수와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4.4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4월 8일 용안면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다가 체포되었다. 3.1운동으로 2015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박영오(朴永五 1874 ~ 미상) 익산 서일면. 의병장 이규홍의 부장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 이규홍 의진 해산 후 독자적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의병운동가로 2015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박영진(朴永鎭 1856 ~ 1928) 익산 황화면. 3.1운동 당시 천도교 여산교구장으로 교구임원들과 만세운동 계획을 수립하고 황화면과 여산읍 등지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다. 1992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박이환(朴駬桓 1873 ~ 1953) 익산 북일면. 의병장 이규홍의 부장으로 일본군과 항전하다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자진해산 후 광복까지 지하에 은신했다. 의병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엄혹한 세월, 항일독립투쟁에 몸과 마음을 바친 이리.익산의 71인 독립유공자들을 기억합니다.
▶ 강인성(姜仁聲 1897 ~ 1930) 익산 웅포면. 군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시가행진을 벌이고 구속자들의 석방 요구 시위를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3.1운동 계열로 1992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고총권(高寵權 1867 ~ 1959) 익산 황화면. 익산군 천도교도로 여산읍에서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고 군중을 규합하다가 체포되었다. 3.1운동 계열로 1992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김광덕(金光德 1885 ~ 1945) 익산 왕궁면. 1919년 3.1운동 당시 3.18 금마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2006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김병호(金秉鎬 1865 ~ 미상) 익산 낭산면. 1919년 3.1운동 당시, 익산군 천도교도로 여산읍에서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고 군중을 규합하다가 체포되었다. 2013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김봉우(金鳳友 1882 ~ 미상) 익산 남일면. 의병장 이원호 휘하의 의병으로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의병운도가로서 1995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김시복(金時福 1885 ~ 미상) 익산 남일면. 완주군 고산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고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발하기 위한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의병운동가로 1995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김용덕(金龍德 1926 ~ 1995) 익산 오산면. 광주사범학교 재학 중 무등독서회를 조직하고 민족의식 고취와 연합군 상륙작전에 호응하여 행동대원으로 활동할 것을 계획하다가 체포되었다. 학생운동으로 2017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김용성(金龍成 1911 ~ 1943) 익산 북일면. 김제청년동맹 백산지부에 가입하여 농민운동을 전개. 사회주의 운동을 펼치다가 체포되었다. 국내항일운동으로 2009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김치옥(金致玉 1879 ~ 1934) 익산 오산면. 3.1운동 당시 문용기 열사 등과 함께 4.4만세운동을 기획하고 현장에서 독립선언서 낭독. 일본 헌병대의 고문으로 석방 후 사망했다.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김한규(金漢奎 1900 ~ 1961) 익산 북일면. 고산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동료가 체포되어 순국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수했다. 국내항일가로 2014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김화곤(金華坤 1899 ~ 1944) 익산 금마면. 1927년 신간회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금과 항일의식 고취 활동 수행했다. 국내항일운동가로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김흥여(金興汝 1889 ~ 미상) 익산 출신. 의병장 이원호 휘하의 의병으로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의병운동으로 1995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노환(盧桓 1916 ~ 1994) 익산 황등면. 전주북중학교 교원시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제의 패망을 학생들에게 교육하다가 체포되었다. 문화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문용기(文鏞祺 1878 ~ 1919) 익산 오산면. 3.1운동 당시 4.4만세운동을 주동하였으며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가지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순국했다.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박관옥(朴寬玉 1880 ~ 미상) 우북 출신. 의병장 김경섭 휘하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군자금 모금활동 중 체포되었다. 의병운동으로 2015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박도현(朴道玄 1865 ~ 1919) 익산 춘포면. 3.1운동 당시 4.4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일본군의 총탄에 현장에서 순국했다. 1994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박복순(朴福淳 1888 ~ 미상) 두남 출신. 의병장 유지명 휘하 의병으로 일본군과 무장투쟁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의병운동가로 1995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박사국(朴士國 1888 ~ 1934) 익산 여산면. 1919년 3.1운동 당시 3.10 여산 만세운동 계획을 수립하고 시위행진을 벌이다 체포되었다.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박수문(朴水文 1897 ~ 1937) 익산 용안면. 3.1운동 당시, 서울에서 유학 중 서울의전 학생 김병수와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4.4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4월 8일 용안면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다가 체포되었다. 3.1운동으로 2015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 박영오(朴永五 1874 ~ 미상) 익산 서일면. 의병장 이규홍의 부장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 이규홍 의진 해산 후 독자적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의병운동가로 2015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박영진(朴永鎭 1856 ~ 1928) 익산 황화면. 3.1운동 당시 천도교 여산교구장으로 교구임원들과 만세운동 계획을 수립하고 황화면과 여산읍 등지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다. 1992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 박이환(朴駬桓 1873 ~ 1953) 익산 북일면. 의병장 이규홍의 부장으로 일본군과 항전하다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자진해산 후 광복까지 지하에 은신했다. 의병운동가로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엄혹한 세월, 항일독립투쟁에 몸과 마음을 바친 이리.익산의 71인 독립유공자들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