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익산시 주현동 105-19
- 탐방로그
- 전북 익산시 주현동 105-19 솜리장터 3.1운동만세시위지 순국열사비를 찾았다. 오른쪽은 성당이고, 뒤쪽에는 화교 학교가 있는 곳이었다. 비문이 많이 훼손되어 있어서 순국열사비의 비문 판독은 어려운 상태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순국열사의 비. 1919년 3월 1일 우리 온 겨레가 부른 대한민국 독립만세는 한일합방에 항거하는 통렬한 민족의 함성이요. 자주독립을 찾으려는 비장한 절규요.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국권을 유지 계승하려는 당당한 주장이었으며 남녀노소 구별없는 한 덩어리로 뭉쳐진 거대한 불길의 폭발이었다. 이와 같은 함성은 삽시간에 삼천리 방방곡곡에 요원의 불길처럼 타 올랐다. 이러한 정당한 평화적인 궐기에 대하여 왜적은 잔인하고 악독한 살육과 탄압을 가하였다. 이해 4월 4일 이리시에서는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 박도현, 서정만을 중심으로 이곳 장터에 모인 수천명의 군중앞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지휘하던 중 무자비한 왜적의 총칼 아래 장렬한 순국의 영령이 되었다.
이 숭고한 3.1정신을 이어받아 애국심으로 승화시킨 순국열사의 고귀한 정신을 자손만대에 전하고저 1949년 4월 29일 이리 시민 일동의 명의로 이 비를 건립하여 보존하고 있다.
이 숭고한 3.1정신을 이어받아 애국심으로 승화시킨 순국열사의 고귀한 정신을 자손만대에 전하고저 1949년 4월 29일 이리 시민 일동의 명의로 이 비를 건립하여 보존하고 있다.
순국열사비. 우남 이승만 서
비문의 판독이 매우 힘든상태이다.
인류평등의 대의에 의한 전 민족적 항생의 첫 걸음이요, 조국의 독립을 사해에 선포하여 민족불멸의 정의를 내세운 기미 3.1운동은 우리 청사(靑史)에 빛나고 있도다. 단기 4252년 3월 1일 선열 손병희 선생 등 33인이 우리 조선민족을 대표하여 한국의 독립국임과 우리겨레의 자유민임을 세계만방에 외치자, 경술실국 이래 자유를 빼앗기고 국가를 잃은 백성의 비애와 울분은 화산같이 터져 독립만세의 소리 지축을 흔들며 태극기의 물결 하늘을 가리울때, 우리 이리에서 문용기선생께서 이에 호응하여 동년 4월 4일 이리시장에서 성거(聖擧)를 지휘하던중 포악한 왜적의 총검에 무찔리어 이 땅에서 장렬한 순국의 길을 떠나셨으나, 아아! 거룩하도다! 품으신 이 뜻 3천만 민족의 빛이 될지며, 장하도다! 밟으신 이 길 우리겨레의 거울이 되오리다.
위대한 선열의 흘리신 의혈(義血)의 값은 37년후 오늘에 당당한 대한민국으로 자유의 독립을 다시 찾게 되었도다. 이에 우리는 성지에 이 비를 세워 자손만대의 추모의 표가 되도록 하노라.
1948.3.1 대통령 이승만
위대한 선열의 흘리신 의혈(義血)의 값은 37년후 오늘에 당당한 대한민국으로 자유의 독립을 다시 찾게 되었도다. 이에 우리는 성지에 이 비를 세워 자손만대의 추모의 표가 되도록 하노라.
1948.3.1 대통령 이승만
전북 익산시 주현동 105-19 솜리장터 3.1운동만세시위지 순국열사비를 찾아가고 있다.
오른쪽은 성당이고, 뒤쪽에는 화교학교가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