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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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
탐방로그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 진사마을 가람 이병기 생가를 찾았다. 조선 말기 선비의 가옥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사랑채.헛간.정자 등이 남아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고향(故鄕)으로 돌아가자

고향으로 돌아가자.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암데나 정들면 못 살리 없으련마는
그래도 나의 고향이 아니 가장 그리운가.

삼베 무명 옷 입고 손마다 괭이 잡고 묵은 그 밭을
파고 파고 일구고 그 흙을 새로 걸구어 심고 걷고 합시다.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 진사마을 가람 이병기생가를 찾아가고 있다.
가람 이병기선생 생가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번지 진사동에 있는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는 한식 건물로 1973년 6월 23일 시도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시조 문학 부흥에 한 획을 그었으며, 현대시조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다. 당시 한문시조의 주류에서 한글을 사용하며, 향토적인 냄새를 풍기는 작품으로 민족을 일깨운 문학가였다. 1913년 사범학교 졸업하고 전주의 보통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으나, 3.1운동 때 서울로 가서 큰일을 도모하게 된다. 이 생가는 1901년 건축된 것으로 특별한 특징은 없으나 양반집의 배치에 따르며, 안채와 사랑채, 고방채, 정자등 여러 채의 초가로 이루어졌다. 집 입구에 있는 승운정이라는 단칸 규모의 작은 모정이 있고, 승운정기의 현판도 걸려있다. 그 옆에 아주 오래된 탱자나무가 하나 있다.
가람 이병기선생기념비
제오백오십이돌(제552돌) 한글날을 맞이하여 가람 이병기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뜻을 모아 생가에 비를 세우다.

일천구백구십팔년 시월 7일
(1998년 10월 9일)
가람 이병기(李秉岐) 선생의 살아온 길

선생은 1891년 3월 5일 여산면 원수리 진사동에서 출생하여 한학을 수학한 후 신사조에 눈을 뜨게 되어, 열아홉살에 전주공립보통학교를 거쳐 한성 사범학교를 졸업하게 되다. 그 후 전주제2보통학교, 여산보통학교, 동광,휘문고등보통학교 등에서 교직 생활 중 시조를 연구하며 창작활동을 시작하다.
1921년 「청년」지를 통해 등단하여 본격적인 시조 시인으로 활동하다. 서울대학교, 전북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국문학전사를 펴냈으며, 신시조 정립의 선구적 역할 등 선생의 업적은 국문학계의 태두로 공인 받다. 1958년 고향집 수우재(守愚齋)로 돌아와 애란(愛蘭), 애주(愛酒), 애서(愛書)의 삶을 살다가 1968년 11월 28일 사랑하던 고서와 난 그리고 애시(愛詩)를 남기고 가시다.
1998년 10월 9일
가람 이병기선생 생가
가람 이병기선생 생가(李秉岐 先生 生家)

이 집은 국문학자이며 시조 작가인 가람 이병기(1891~1968) 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이다. 조선 말기 선비의 가옥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사랑채.헛간.정자 등이 남아 있다. 소박한 안채와 사랑채 아담한 정자와 연못에서 선비 가옥의 면모를 잘 살필 수 있다. 슬기를 감추고 겉으로 어리석은 체 한다는 뜻을 간직한 수우재(守愚齋)라는 사랑채 이름에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평생을 지조있는 선비로 살아온 그의 풍취가 은은하게 느껴진다.
가람 이병기(李秉岐) 선생의 생가

이 집은 한국 현대시조의 중흥을 이룩한 시조시인이며 국문학자이신 가람 이병기(1891~1968) 선생의 생가이다.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국문학전사> 등을 펴내고 이 곳에서 말년을 보내셨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한국문인협회가 현대문학 표징사업의 일환으로 이 글을 여기에 새긴다.
1995년 11월 30일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황 명 / SBS 문재단 이사장 윤세영
가람 이병기(李秉岐) 선생의 생가

이 집은 한국 현대시조의 중흥을 이룩한 시조시인이며 국문학자이신 가람 이병기(1891~1968) 선생의 생가이다.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국문학전사> 등을 펴내고 이 곳에서 말년을 보내셨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한국문인협회가 현대문학 표징사업의 일환으로 이 글을 여기에 새긴다.
1995년 11월 30일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황 명 / SBS 문재단 이사장 윤세영
이병기 선생 생가 탱자나무

탱자나무는 낙엽 활엽 소교목으로 4~5월에 꽃이 피고 9~10월에 탱자가 열린다. 호남과 영남지방에 주로 분포하며 강화도가 북한계선이라고 하나 강원도 양양지방에서도 자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탱자나무의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있어 울타리용으로 많이 식재되었다. 이병기선생 생가의 탱자나무는 흉고둘레 60cm, 높이 5m 정도이며, 수형과 수세가 좋은 편이다. 수령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으나 이병기선생의 고조부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시기를 기준으로 보면 200년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