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로 집(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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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하리 519
탐방로그
순창군 복흥면 하리 519에 있는 가인 김병로 선생 생가터를 찾았다. 과거에는 표지석만 있었는데 생가가 복원되었다. 마을 앞 생가마을 안내석이 보이고, 과거에는 없었던 조형물도 건립되어 있다. 김병로 선생이 초대 대법원장이셨기에 법의 정신인 균형을 잡는 저울의 조형물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김병로 선생 출생지
가인 김병로 선생은 1887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면암 최익현의 문하에서 의병으로 투쟁을 하였다.
선생은 우리의 힘이 약함을 절감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법학을 공부하였고, 1919년 일정치하에서 변호사자격을 얻어 광주학생사건, 6.10만세사건등 나라잃은 동포에 관한 많은 변론을 맡음으로써 민족운동을 하였다.
해방 후 초대 대법원장으로서 국초의 혼란한 법질서를 바로잡는데 크게 기여한 공로로 선생에게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되었으면 1964년 88세로 여생을 마쳤다.
가인 김병로선생 생가터
이곳은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1887~1964)선새의 생가터이다. 조선 중기의 도학자 하서 김인후선생의 15대손인 가인 김병로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지냈으며, 변호사 시절에는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무료 변혼활동과 신간회의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내신 분이며, 1948년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법조인이자 정치가로서 우리나라 사법부 역사상 법조3성(聖)으로 한국 근대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법조인들로부터 가장 추앙받고 있다.
가인 생가는 당초 안채, 사랑채, 문간채로 이루어 졌으나 6.25 한국전쟁때 소실되어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으나, 순창군에서 후손들의 고증을 거쳐 안채와 문간채를 2014년 5월에 복원을 완료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훈몽재와 가인생가, 대법원 가인연수관을 연결하는 역사문화 탐방코스로 활용되고 있다.
가인 김병로선생 생가
순창군 복흥면 하리 519에 있는 가인 김병로 선생 생가터를 찾았다.
과거에는 표지석만 있었는데 생가가 복원되었다.
마을 앞 생가마을 안내석이 보이고, 그 앞에 과거에는 없었던 조형물도 건립되어 있다.
김병로 선생이 초대 대법원장이셨기에 법의 정신인 균형을 잡는 저울의 조형물이다.
생가마을 표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