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414
- 탐방로그
- 이교직의 묘는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414에 있다. 화도읍 월산리 405에 있는 '기쁨의 교회'를 지나서 가면 좋다. 1985년 7월에 국가보훈처 지원으로 후손에 의해 묘 옆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록 제창하든 중 왜적의 무차별 발사한 총탄으로 인도에서 선생이 순국하시였고 기외 수인이 순국하였으며 적탄에 관통 부상자 및 체형자 다수는 불능진기라. 기 사실은 화도면민 일동이 건립한 순국선열 합동 추모비에 상재되였기 불진기하며 시조 호 장공 휘 윤경을 위시 19대조 문효공 휘 곡 호 가정은 려조 관 광정대부 도첨의 찬성사 우문관 대제학 감 춘추관사 상호군으로 중원조 제과에 과갑한 문장이요. 18대조 휘 색 호 목은은 려관 추충보절 동덕찬화 보리공신 벽상 삼한 삼중대광 문하시중 예문관 춘추관 사우 문관 대제학 상호군 한산부원군 익 문정공은 고려 삼은의 1인이요. 성리학의 비조로서 당대 문학 저명하셨으며 17대조 휘 종선은 자헌대부 지중추원사 정통 증 순충 적덕 병의 보조공신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한산부원군 익 양경공 16대조 휘 계순 호 존양제세 종조 친시 문과 선 집현전 정란 좌익공신 관령 중추 겸 성균관사 한성군 증 영의정 익 문열공이요. 15대조 휘 봉 호 소은 세조 문과 장원 직제학 자헌대부 형조판서 증 이조판서 익 헌평공이요. 14대조 휘 덕단 세마공 음죽현감이요. 13대조 휘 양 문과 한림공 조졸하셨으며 공의 문은 대대로 명문이었으나 공의 15대조 헌평공의 중백 휘 파 호 명헌공께서 연산조 갑자사화 시에 연루되어 후손이 위축되어 현지에 낙향 음거하였음. 공의 증조 휘 희정조의 휘 운재 고 휘 승학이시다. 제 훈직 후일 종족 돈목과 종사를 관장하였으며 자에는 태규(구명 만수) 은규이며 질에는 봉규 손 성구 흥구 홍구 동구 영구 종구요. 증손 진복 영복 정준 정복 정상 재학 태복 손서에 고령인 신창호 선생의 문은 려말로부터 대대 명문이요. 15대 방조 휘 개백옥헌은 사육신의 1인이시다. 선생의 순국지충은 목은의 후예로 유천의 실유감응하사 충신열사 출어함이로다. 자 태규 서기 1977년도에 국가에 상신하여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추모비를 상념지사로 있어 인근 유지가 동성 제응하여 국가보훈처 및 경기도의 지원을 받어 자 태규 효우 돈독하여 근구입비를 지어일신함은 대효증자가 상응여시 고 청구 비문함으로 선생의 위덕 열공을 영구 불후지사하여 후세 자손에 무궁지창운
서기 1985년 을축 7월 일
무부 산하 지방행정 사무관 족질 용규 찬
국가보훈처 지원으로 건립
무부 산하 지방행정 사무관 족질 용규 찬
국가보훈처 지원으로 건립
이교직 선생의 묘는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414에 있다.
사진 속 보이는 묘를 지나야 한다.
이 봉분이 이교직 선생의 묘이다.
殉國先烈 韓山李公 敎稙 追慕碑
(순국선열 한산이공 교직 추모비)
(순국선열 한산이공 교직 추모비)
殉國先烈 韓山李公 敎稙 追慕碑
(순국선열 한산이공 교직 추모비)
(순국선열 한산이공 교직 추모비)
순국선열 한산이공 교직 추모비
공 추선생의 성은 이요 관은 한산이요 휘는 교직이시고 세거 양주군 화도면 월산리러니 생어 임오하시고 기미3월에 졸하시니 수는 38이라 묘는 동리 안산 경좌요 배 평창이씨는 함폄이라 천품이 건후하시고 의기담대 문화숙취라 수신이도이인하며 위선지사에 극진기효하시고 돈목종족에 우애우독하시며 강보사린에 상부상조하시고 자질제위에 중위유훈하시니 평생지훈을 우국충정으로 상시일념하시고 경술 한일합병 국치 이래 수제조적이 침답조야함으로 불승분탄하던 중 기미 3월 1일 독립선언문이 선포되자 실위선발지기로 수창발론하여 문중문장이신 족조 덕재 종손 형재 재당숙 승보 이달용씨 등과 동심합력하여 월산 답내리 수백인을 인솔하여 화도중앙지인 마석 병참 앞에서 선두 지휘 대한독립만세를 전치가 진동토
공 추선생의 성은 이요 관은 한산이요 휘는 교직이시고 세거 양주군 화도면 월산리러니 생어 임오하시고 기미3월에 졸하시니 수는 38이라 묘는 동리 안산 경좌요 배 평창이씨는 함폄이라 천품이 건후하시고 의기담대 문화숙취라 수신이도이인하며 위선지사에 극진기효하시고 돈목종족에 우애우독하시며 강보사린에 상부상조하시고 자질제위에 중위유훈하시니 평생지훈을 우국충정으로 상시일념하시고 경술 한일합병 국치 이래 수제조적이 침답조야함으로 불승분탄하던 중 기미 3월 1일 독립선언문이 선포되자 실위선발지기로 수창발론하여 문중문장이신 족조 덕재 종손 형재 재당숙 승보 이달용씨 등과 동심합력하여 월산 답내리 수백인을 인솔하여 화도중앙지인 마석 병참 앞에서 선두 지휘 대한독립만세를 전치가 진동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