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 149-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유한의사 추모비 서
선배(先輩)는 우뚝한 행실과 높은 절개를 들쳐 천추(千秋)에 전함은 후진(後進)으로 하여금 미풍양속을 권장함이니 그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리요? 그러나 입언(立言)을 할 때 적합한 사람이 아니면 족히 후인에게 믿음을 얻지 못하나니 부덕한 사람으로 감히 이 책임을 감당하리오마는 세도(世道)는 날로 어둑어둑하여가는 이때에 선열의 우뚝하고 높은 절개와 행실을 듣고야 참지 못하여 아에 기술하나이다.
하늘과 땅의 자리가 베풀어짐에 성인이 예법을 세울 때 '부모를 섬기되 능갈기력(能竭其力)하고 군국(君國)을 섬기되 유사무이(有死無二)라 하였으니, 이는 인도의 대륜(大倫)인지라. '공자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 하셨고 맹자는 사생취의(捨生取義)'라 하셨으니, 이러므로써 충의지사는 공적인 일을 자기일보다 더 근심하여 국가의 위기에 목숨을 바치기를 홍모(鴻毛)같이 하나니 이 어찌 장하다 아니하리요? 역사에 찬란한 옛 무장(茂長)에 위대한 네 분 의사의 절행(節行)을 천양(薦揚 천거)하신 유림제현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전(前)을 응(應)하여 후(後)를 도와 천만세에 길이 전하여 이 국가 이 민족의 좋은 본보기가 되기를 빌며 바라나이다.
선배(先輩)는 우뚝한 행실과 높은 절개를 들쳐 천추(千秋)에 전함은 후진(後進)으로 하여금 미풍양속을 권장함이니 그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리요? 그러나 입언(立言)을 할 때 적합한 사람이 아니면 족히 후인에게 믿음을 얻지 못하나니 부덕한 사람으로 감히 이 책임을 감당하리오마는 세도(世道)는 날로 어둑어둑하여가는 이때에 선열의 우뚝하고 높은 절개와 행실을 듣고야 참지 못하여 아에 기술하나이다.
하늘과 땅의 자리가 베풀어짐에 성인이 예법을 세울 때 '부모를 섬기되 능갈기력(能竭其力)하고 군국(君國)을 섬기되 유사무이(有死無二)라 하였으니, 이는 인도의 대륜(大倫)인지라. '공자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 하셨고 맹자는 사생취의(捨生取義)'라 하셨으니, 이러므로써 충의지사는 공적인 일을 자기일보다 더 근심하여 국가의 위기에 목숨을 바치기를 홍모(鴻毛)같이 하나니 이 어찌 장하다 아니하리요? 역사에 찬란한 옛 무장(茂長)에 위대한 네 분 의사의 절행(節行)을 천양(薦揚 천거)하신 유림제현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전(前)을 응(應)하여 후(後)를 도와 천만세에 길이 전하여 이 국가 이 민족의 좋은 본보기가 되기를 빌며 바라나이다.
무장 사의사 사행략기(茂長四義士事行略記)
일광(一狂) 정시해(鄭時海)
의사 정공(鄭公)의 휘는 시해(時海)이니 망국의 한을 개탄하여 자호(自號)를 일광(一狂)이라 하다. 진주인(晉州人) 충장공(忠莊公) 황(璜)의 후손이라. 성송면 삼태(三台)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문하에서 종사하여 부모를 효로써 섬기고 앞뒤 양장(襄藏 장례)에 6년간 시묘를 살고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을 따라 용호남 각지에서 동지를 규합하여 적과 싸우다 고종 병오년(1906) 4월 20일 순창(淳昌)에서 전사하니 면암이 관 위에 '조선의사정공(朝鮮義士鄭公)'이라 특별히 썼다.
참봉(參奉) 김재화(金在華)
의사 김공(金公)의 휘는 재화(在華)이고, 관직은 참봉(參奉)이니 안동인(安東人) 현무재(賢武齋)의 후손으로 상하면 비봉정(飛鳳亭) 출생이다. 지방의 뜻있는 선비들과 더불어 흥덕(興德), 정읍(井邑), 고부(古阜), 부안(扶安) 등에서 왜적 20여 명을 살해하고 순종(純宗) 무신년(1908() 9월 26일 줄포(茁浦) 충련암(忠蓮岩)에서 전사하다.
강재(剛齋) 오장환(吳壯煥)
의사 오공(吳公)의 휘는 장환(壯煥)이고, 호는 강재(剛齋)이니 함양인(咸陽人) 임진년 창의공신 정랑(正郞) 익창(益昌)의 후손이다. 아산면 남산(南山) 출생으로 모든 의사와 더불어 영호남 각처에 누차 참전하다가 순종(純宗) 기유년(1909) 6월 10일에 전사하다.
입신재(立身齋) 유경구(庾敬求)
의사 유(庾公)의 휘는 경구(敬求)이고, 호는 입신재(立身齋)이니 무송인(茂松人) 충절공(忠節公) 녹숭(祿崇)의 후손이다. 공읍면 송산(松山) 출생으로 간재(艮齋) 전우(田愚) 문하에서 종사하다. 부모를 효로써 섬기고 앞뒤로 6년간 시묘를 살고 동지와 더불어 의로운 거사로 적과 대적타가 한일합병되자 영광(靈光) 구수산(九峀山)에 들어가 무오년(1918) 12월 21일에 고종황제 빈천(賓天 천자의 죽음)하심을 통분하여 절립이사(絶粒而死)하니, 바로 기미년(1919) 정월 7일이다.
대한광복 19년 계묘(1963) 9월 일 고창군수 신상우(申祥雨)는 삼가 서문을 쓴다. 청도 김상용(金相容)은 삼가 기술한다. 진주 정익환(鄭益煥)은 삼가 쓴다.
일광(一狂) 정시해(鄭時海)
의사 정공(鄭公)의 휘는 시해(時海)이니 망국의 한을 개탄하여 자호(自號)를 일광(一狂)이라 하다. 진주인(晉州人) 충장공(忠莊公) 황(璜)의 후손이라. 성송면 삼태(三台)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문하에서 종사하여 부모를 효로써 섬기고 앞뒤 양장(襄藏 장례)에 6년간 시묘를 살고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을 따라 용호남 각지에서 동지를 규합하여 적과 싸우다 고종 병오년(1906) 4월 20일 순창(淳昌)에서 전사하니 면암이 관 위에 '조선의사정공(朝鮮義士鄭公)'이라 특별히 썼다.
참봉(參奉) 김재화(金在華)
의사 김공(金公)의 휘는 재화(在華)이고, 관직은 참봉(參奉)이니 안동인(安東人) 현무재(賢武齋)의 후손으로 상하면 비봉정(飛鳳亭) 출생이다. 지방의 뜻있는 선비들과 더불어 흥덕(興德), 정읍(井邑), 고부(古阜), 부안(扶安) 등에서 왜적 20여 명을 살해하고 순종(純宗) 무신년(1908() 9월 26일 줄포(茁浦) 충련암(忠蓮岩)에서 전사하다.
강재(剛齋) 오장환(吳壯煥)
의사 오공(吳公)의 휘는 장환(壯煥)이고, 호는 강재(剛齋)이니 함양인(咸陽人) 임진년 창의공신 정랑(正郞) 익창(益昌)의 후손이다. 아산면 남산(南山) 출생으로 모든 의사와 더불어 영호남 각처에 누차 참전하다가 순종(純宗) 기유년(1909) 6월 10일에 전사하다.
입신재(立身齋) 유경구(庾敬求)
의사 유(庾公)의 휘는 경구(敬求)이고, 호는 입신재(立身齋)이니 무송인(茂松人) 충절공(忠節公) 녹숭(祿崇)의 후손이다. 공읍면 송산(松山) 출생으로 간재(艮齋) 전우(田愚) 문하에서 종사하다. 부모를 효로써 섬기고 앞뒤로 6년간 시묘를 살고 동지와 더불어 의로운 거사로 적과 대적타가 한일합병되자 영광(靈光) 구수산(九峀山)에 들어가 무오년(1918) 12월 21일에 고종황제 빈천(賓天 천자의 죽음)하심을 통분하여 절립이사(絶粒而死)하니, 바로 기미년(1919) 정월 7일이다.
대한광복 19년 계묘(1963) 9월 일 고창군수 신상우(申祥雨)는 삼가 서문을 쓴다. 청도 김상용(金相容)은 삼가 기술한다. 진주 정익환(鄭益煥)은 삼가 쓴다.
유한의사추모비 일광 정시해, 강재 오장환, 입신 유경구, 참봉 김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