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남도 영광군 대마면 화평리 679-1
- 탐방로그
- 전남 영광군 대마면 화평리 수촌마을 경당 옆 상산김씨 삼강문 내에 있다. 같은 장소에 아버지인 김용구 선생의 충절비가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義士小坡起鳳忠節碑(의사 소파 김공 기봉 충절비)
의사 소파 성산김공 기봉 충절비명
소파 김기봉 스물하나 꽃다운 목숨을 아버지와 나라에 바친 이 젊은이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사내의 길은 무엇인가? 아들의 도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본관은 상산 1887년 정해년 12월 27일 구한말 의병장 후은 김용구와 함양박씨의 외아들로 전라도 영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명하고 강직하였다. 부모에 효도하면서 뜻을 품고 공부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나라는
소파 김기봉 스물하나 꽃다운 목숨을 아버지와 나라에 바친 이 젊은이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사내의 길은 무엇인가? 아들의 도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본관은 상산 1887년 정해년 12월 27일 구한말 의병장 후은 김용구와 함양박씨의 외아들로 전라도 영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명하고 강직하였다. 부모에 효도하면서 뜻을 품고 공부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나라는
이미 기울고 있었다. 김기봉은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1905년 을사년 11월 일제는 을사늑약으로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았다. 김기봉은 부친이 성재 기삼연 등과 일으킨 의병운동에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너는 나이도 어리고 외아들이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하였다. 기삼연도 너는 김씨집안의 외아들이니 집으로 돌아가 후사를 잇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김기봉은 아버님께서 진중에 계시는데 아들이 혼자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라며 듣지 아니하고 각지에서 수백명의 의병과 많은 군량을 모아 왜적토벌을 지원하였다. 1907년 정미년 8월 일제는 정미7조약을 강요하여 한국군대를 해산하였다. 김기봉은 그해 9월 수련산에서 부친이 기삼연 등과 설치한 호남창의회맹소 회합에 동참하여 함께 피를 뿌리며 하늘에 맹세하고 왜병소탕에 몸을 불살랐다. 왜병은 한국의 무고한 양민을 괴롭히고 살림을 불태우는등 만행을 서슴치 않았다. 김기봉은 부친을 따라 영광, 무장, 고창, 법성포, 장성, 함평 등지에서 병량을 모으로 적정을 탐지하며 왜병과 싸우고 또 싸웠다. 그러기를 몇 달 김기봉은 고창, 흥덕, 안현 전투에서 아버지를 호위하며 선두에서 분전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1907년 12월 13일 나라를 되찾겠다는 큰 뜻을 펴지 못하고 아버지를 지키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다 이루지 못한 채 김기봉은 스물하나의 짧은 생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을 온 세상이 애도하며 칭송하였다. 왜병의 기록
에도 그는 대장이라 불리었다. 사림의 천거로 각 향교에는 그에 대한 찬양문이 내려졌다. 훗날 아버지마저 고종 승하에 비분하여 음독절사하자 아버지의 스승 송사 기우만은 아버지는 충에 죽고, 아들은 효에 죽었으니 그 부충자효는 천고에 다시 없을 것이로다 하고 크게 상찬하였다. 정부는 김기봉의 공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상산김씨 삼강문
항일의병장 후은 김용구 일가의 충(忠)․효(孝)․열(烈)을 기리기 위해 후은 선생의 생가가 있는 수촌마을에 건립한 것이다.
항일의병장 후은 김용구 일가의 충(忠)․효(孝)․열(烈)을 기리기 위해 후은 선생의 생가가 있는 수촌마을에 건립한 것이다.
삼강려기
백두대간의 정기어린 노령산맥의 끝자락 서기내린 태청산하에 물도 멈춘다는 수말골은 상산김씨 문중이 터를 잡아 하늘이 내린 충,효,열이 살아 숨쉬는 명문대가로 가히 만천하에 큰 교훈을 남겼도다. 자고리 어진 어버이는 어진 아들을 낳고, 어진 아들은 어버이를 공경하여 효를 다한다. 이는 물고기가 물없이 살수없듯이 사람은 삼강을 모르면 죽은 목숨과 같다는 만고의 이치를 뜻하는 바 아버지는 나라에 충함이요 아들은 부모에 효로써 도리를 다하며 며느리는 부도로써 수절함이니 이분들의 삶이 바로 인간지도가 아니고 그 무엇이랴. 이 성스러운 삼강려는 부충, 자효, 부열을 되새겨 만인들에게 큰 귀감이 될수 있도록 하기위해 영광군 김봉열군수님의 특별한 관심과 유림및 후손들의 성원과 정성으로 근수되었는바 이는 우리 옥당골의 자랑이요 나아가 참된 충효교육의 장으로 만고일월과 함께 영원하리라.
백두대간의 정기어린 노령산맥의 끝자락 서기내린 태청산하에 물도 멈춘다는 수말골은 상산김씨 문중이 터를 잡아 하늘이 내린 충,효,열이 살아 숨쉬는 명문대가로 가히 만천하에 큰 교훈을 남겼도다. 자고리 어진 어버이는 어진 아들을 낳고, 어진 아들은 어버이를 공경하여 효를 다한다. 이는 물고기가 물없이 살수없듯이 사람은 삼강을 모르면 죽은 목숨과 같다는 만고의 이치를 뜻하는 바 아버지는 나라에 충함이요 아들은 부모에 효로써 도리를 다하며 며느리는 부도로써 수절함이니 이분들의 삶이 바로 인간지도가 아니고 그 무엇이랴. 이 성스러운 삼강려는 부충, 자효, 부열을 되새겨 만인들에게 큰 귀감이 될수 있도록 하기위해 영광군 김봉열군수님의 특별한 관심과 유림및 후손들의 성원과 정성으로 근수되었는바 이는 우리 옥당골의 자랑이요 나아가 참된 충효교육의 장으로 만고일월과 함께 영원하리라.
삼강문이란, 삼강(三綱)에 해당하는 충신, 효자, 열녀가 모두 배출된 집안임을 나타내는 정문(旌門) 또는 여문(閭門)을 말한다.
삼강려(三綱閭)’라는 현판 아래 후은 김용구 선생의 충(忠), 후은의 아들 소파 김기봉(小坡 金起鳳) 선생의 효(孝),
소파의 부인 청송 심씨의 열(烈)을 기록한 3개의 비석이 나란히 서있다.
소파의 부인 청송 심씨의 열(烈)을 기록한 3개의 비석이 나란히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