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송천리 산96-4
- 탐방로그
- 이석영 선생의 양부인 귤산 이유원(李裕元, 1814~1888)과 이유원의 조부이신 이석규(李錫奎)의 묘소가 모셔진 선산이다. 애국지사 이석영 선생의 유해는 중국 상해에서 찾지 못하였다. 현재 서울 현충원에 위패를 모셔둔 상태이다(48판 8면 위패번호 133) 다만 이석영 선생의 유해를 찾았다면 이 곳 선산에 모셨을 것이다. 처음 선산은 임하려 뒤쪽에 있었지만 남양주시 수동면 송천리 산 96-4 이곳으로 퇴방(이장)한 것이라고 후손께서 알려주셨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이유원 선생의 묘소 아래쪽은 비어 있었다.
鍾자 항렬인 것으로 봐서 이석영 선생 기준으로 손자뻘에 해당되시는 분의 묘소로 보인다.
(좌)이귤산(유원)수장비(李橘山壽藏碑) (우)효정이공(석규)묘비
효정이공묘비 - 영의정 충문공 귤산 이유원(李裕元)의 할아버지인 이조판서 효정공 이석규(李錫奎)의 묘비로 비제를 이유원이 지었다.
이귤산 수장비(李橘山壽藏碑) - ‘수장(壽藏)’이란 살아있을 때 자신이 묻힐 무덤을 미리 만들어 놓는 것을 말한다. 이유원 묘는 철종 11년(1860)년 수장지표(壽藏之表)와 함께 조성하였고, 묘하에 있는 이귤산수장비는 8명이 쓴 글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이석영 선생의 선산은 임하려 뒤쪽에 있었지만 남양주시 수동면 송천리 산 96-4 이곳으로 퇴방(이장)하였다고 한다.
제일 위쪽은 이유원(李裕元: 이석영 선생의 양부)의 조부이신 이석규(李錫奎) 묘소가 있었다.
- 이석규(1758~1839), 자는 치성(穉成), 호는 동강(東江), 시호는 효정, 순조 7년(1807)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 예조판서, 의정부우참찬 등을 역임하였고, 배위 양주조씨와 합폄되어 있다. 비신의 뒷면에는 본인이 쓴 묘지명과 이계조(李啓朝)가 짓고, 이유원(李裕元)이 쓴 비문이 있다.
- 이석규(1758~1839), 자는 치성(穉成), 호는 동강(東江), 시호는 효정, 순조 7년(1807)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 예조판서, 의정부우참찬 등을 역임하였고, 배위 양주조씨와 합폄되어 있다. 비신의 뒷면에는 본인이 쓴 묘지명과 이계조(李啓朝)가 짓고, 이유원(李裕元)이 쓴 비문이 있다.
朝鮮大冢宰李公錫奎之墓 贈貞夫人楊州趙氏祔左(조선대총재 이공석규지묘/증 정부인 양주조씨부좌)
大冢宰(대총재)는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예스럽게 이르던 말이라고 한다.
大冢宰(대총재)는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예스럽게 이르던 말이라고 한다.
가곡리 간좌원 건립으로 되어있다. 어르신이 가곡리에 있다가 이장되었다는 말씀이 확인되었다.
그 아래에 이석영 선생의 양부이신 영의정 이유원 선생의 묘소가 있었다.
이유원(李裕元) 수장지표(壽藏之表)
‘수장(壽藏)’이란 살아있을 때 자신이 묻힐 무덤을 미리 만들어 놓는 것을 말한다.
朝鮮翰林春秋館文院待制南床典經起居
注鳳閣舍人藝文館直學士 奎章閣直學
士同國子事都御史籌司槐院提擧 賜級
八座李橘山裕元壽藏之表
配萊來鄭夫人
‘수장(壽藏)’이란 살아있을 때 자신이 묻힐 무덤을 미리 만들어 놓는 것을 말한다.
朝鮮翰林春秋館文院待制南床典經起居
注鳳閣舍人藝文館直學士 奎章閣直學
士同國子事都御史籌司槐院提擧 賜級
八座李橘山裕元壽藏之表
配萊來鄭夫人
이유원 선생이 스스로 찬하신 묘지명
領議政致仕奉朝賀忠文李公裕元之藏 貞敬夫人萊來鄭氏祔(영의정 치사 봉조하 충문 이공유원 지장 정경부인 동래정씨 부)
領議政致仕奉朝賀忠文李公裕元之藏 貞敬夫人萊來鄭氏祔(영의정 치사 봉조하 충문 이공유원 지장 정경부인 동래정씨 부)